건축은 은신처의 필요에 의해 탄생해 재료와 에너지의 과학적 관계에 의해 연마되었고, 창의적이고 의미를 찾으려하는 우리의 본능에 의해 예술로 승화됐다. 인간의 실질적 혹은 상상된 수요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건축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게 됐다.

▲ 문화재의 예술 양식을 승화시키며 한국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전통 건축의 표상을 잇는 김범식 원장

건축은 우리 삶과 결속돼 있다. 좋은 디자인은 때로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갖가지 행위들을 촉발시킨다. 건축물은 당대의 문화와 철학, 그리고 사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에 건축물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예술작품을 살펴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 선정 건축목공예 부문 최고의 장인
김범식 한국전통건축연구원장은 경상북도가 선정한 건축목공예 부문 최고의 장인이다. 전통 건축물을 복원하고 수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도편수(대목장)인 그는 5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김천 직지사 극락전, 청도 운문사 관음전 등 전국 130여 개의 문화재와 건축물을 수리 ‘복원’ 신축하며 ‘민족의 인문과 과학의 결정체’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화재의 예술 양식을 승화시키며 한국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전통 건축의 표상을 잇는 김범식 원장은 이 시대의 독보적인 장인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정제된 조형미와 절제된 선, 건축물의 양감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부자재와 단청의 아름다움을 살린 전통건축에서 우러나는 오랜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복원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 동래읍성 동장대 서장대를 비롯하여 김천 직지사 종각 요사채, 청도 운문사 회성당 문경 봉암사 극락전, 합천 해인사 조사전, 강화 전등사 극락전, 무안 미륵사 대웅전, 수원 봉녕사 향하당, 대구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등 전국의 유명 전통건축물들이 김범식 원장의 손길을 거쳐 새로이 태어났다. 이렇듯 장인 정신으로 퇴락해 가는 전통건축물을 되살려내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범식 원장은 건설환경근장을 비롯하여 한국건축가협회상, 문화재청 공로상,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훈했다. 또 대한명인회에서는 김범식 원장을 명인으로 추대하였으며, 지난 2008년에는 한국인물연구원이 선정한 ‘한국현대인물열전 33인’에 포함되었다.

▲ 김범식 원장은 건설환경근장을 비롯하여 한국건축가협회상, 문화재청 공로상,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훈했다

한편 지난 10여 년간 전통건축물 모형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김범식 원장은 국보 18호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308호 풍남문, 국보 5호 봉정사 극락전,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고문, 보물 819호 덕수궁 중화전, 보물 1563호 동화사 대웅전 등의 모형을 제작해왔다. 지난 2011년에는 국보 1호 숭례문과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을 정교하게 축소한 모형 18점을 ‘2011경주세계문화엑스포 도편수 김범식의 우리모형전’을 통해 선보여 큰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각국의 대사들, 외신들이 다녀가 위상을 높인 바 있다. 김범식 원장은 “비록 모형이지만 문화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좋은 수단도 된다”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국보와 보물을 찾아다니면서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를 모형으로 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우리 문화재를 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후진 양성 통해 진정한 전통 건축의 명맥 잇다

▲ 숭례문 모형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소목장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에 먹고 살기 위해 목수일을 시작했던 김범식 원장. 이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최기영, 전흥수 대목장의 스승이었던 김덕희 선생과 김윤원 선생의 문하로 입문해 전통건축분야에서 실력을 받은 그는 1960년 말 당대 최고의 대목장으로 손꼽혔던 조원재 선생을 만나 다시 한 번 전통건축에 눈을 떠 도편수가 되기 위한 기술과 경력을 차근차근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건축목공예 부문 국내 최고의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건축물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김범식 원장은 후진 양성을 통해 진정한 전통 건축의 명맥을 잇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쉬운 방법만 찾는 오늘날, 느리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전통 건축일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김범식 원장은 “일반 기술자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며 기술을 가르치지만 정작 전통 문화재를 위해 일하는 기술자들에게 그런 것이 없다”며 “문화재 공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반 건물을 짓는 것과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힘이 더 많이 드는 전통 건축 현장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초심으로 기초부터 튼튼하게 지어 나가는 것이 우리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며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