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도자기는 흙과 불의 예술이라 일컬어진다. 특히 도자기는 좋은 흙과 나무와 유약,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예술혼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 작가 최재훈은 현재 과천시 갈현동, 자신의 요장 뒷산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흙을 직접 채취해 성형함으로써 흙의 성질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귀한 옥과 푸른 가을 하늘빛을 닮은 고려시대의 청자, 청자에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고려 청자의 수준을 끌어올린 상감청자, 흰 백토를 바르고 자유분방한 표현기법을 넣은 조선시대의분청사기, 단단하면서도 빛깔이 희고 깨끗한 조선 백자 등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과거부터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그릇인 동시에 미술품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전통과 현대 아우르는 ‘달항아리’ 선보여
최근 도예가 최재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경인미술관서 10번째 개인전<월광대호(月光大壺)>전을 통해 자신만의 ‘달항아리’를 선보였다. 전시의 주제인 월광대호는 그가 오랜 기간 연구해온 덤벙분청기법으로 제작한 달항아리다. 작가는 “월광대호는 저의 도예작업 과정에서 오랜 기간 연구해온 분청사기 기법의 변형이라 볼 수 있다”며 “월광이라는 달항아리의 명칭은 작품의 모티브가 달의 둥근 형태와 달빛의 은은한 변화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렇게 명명하였다”고 설명했다. 덤벙분청기법으로 제작한 월광대호는 연못 위에 비친 달의 변화무쌍한 형상을 보며, 고요한 만월의 풍만함, 구름과 비바람으로 이지러진 달의 형태, 그리고 달이 지닌 오묘한 빛을 표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작가 최재훈이 “종종 달항아리의 형태는 연못에 비친 달의 모습이 연못의 파장으로 인하여, 마치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듯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오롯이 둥근 달항아리와는 또 다르게 자연스러운 형의 변화가 있는 월광대호는 다양한 형태로 그 얼굴을 달리하는 달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꾸미지 않은 소박한 미를 추구하던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독창성과 개성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보는 현대의 미를 적절히 조합한 것이다. 때문에 작가의 달항아리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고 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작가가 작업에 꾸준히 적용하는 덤벙분청의 매력적인 효과는 ‘크랙(crack)’에 있다. 자연스러운 갈라짐으로 인해 거미줄처럼 엮인 모습이 흡사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완성된 달항아리를 찬찬히 훑어보노라면 삶에 대한 관조가 깊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며 “도예작업을 하면서 항상 선조들의 전통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철저하게 현대를 살고 있는 도공으로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현 시대성이 깃들어진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 도예가로서의 소명이라고 믿는 작가 최재훈은 언제나 잊지 않는 것은 늘 같은 모습으로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전통방식 고집하며 자연미 살아있는 독창적인 찻사발 작품 제작
작가 최재훈은 현재 과천시 갈현동, 자신의 요장 뒷산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흙을 직접 채취해 성형함으로써 흙의 성질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그리고 참나무로 정제한 유약과 덤벙분청기법을 이용하며 전통적인 장작가마만을 고집한다. 과거 우리네 옛 도공의 모습 그대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며 세련미보다는 투박미, 인공미보다는 자연미가 살아있다.
작가는 연염기법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여 사발을 소성하고 있다. 연염(煙炎)기법은 장작가마에서 순수 소나무 장작으로만 소성을 한 후, 직접 제작한 특수 집게를 이용하여 장작가마의 온도가 약 1300℃에 이르렀을 때 기물을 꺼내어 왕겨, 나뭇잎, 톱밥 등의 천연재료를 이용하여 연(煙)을 입히는 기법이다. 흙의 재료나 유약에 따라 매회 연(煙)을 입힐 때마다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는 기법을 말한다.
 전통기법으로 만들기에 똑같은 연(煙)을 입히고, 흙과 백토의 배합이 일정해도 작품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발은 쓸모없고, 어떤 사발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또한, 장작가마에 들어가는 사발은 약 천개에 달하지만, 연염(煙炎)기법의 사발은 칸 불 앞에서만 꺼내야 하는 이유로 인해, 그 많은 사발 중에서  연(煙)을 입힐 수 있는 사발은 고작 30여점이다. 그러한 과정으로 연염(煙炎)기법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완성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꺼내면서 떨어져 깨지거나, 완성도가 떨어져 실패하는 작품을 감안한다면, 한 번의 소성에서 완성되는 작품은 10점 미만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작업의 난이도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건진 10개 중에서도 스스로가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은 드물다고. 작가는 “마음을 비우고, 손이 가는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오랜 세월 사발을 구워온 손이 자신도 모르게 흙을 주무르고, 거기에 물과 불과 바람이 기운을 더해 탄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일대학교 산업공예학과 및 단국대학교 대학원 도예과를 졸업한 작가 최재훈은 현재 신라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자문위원, (사)한국미술협회원, (사)경기도예가협회원, 과천미술인회원, 한국사발학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클레이하우스(과천요)를 운영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