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고대의 흔적은 돌에 남아 있다. 녹슬지 않고, 썩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대인들은 돌을 억겁 세월을 버티는 불변의 물질로 봤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주변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돌은 문명과 문화의 동반자로 인류와 함께 살아오고 있다.

▲ 작가 장국보

생활 속 소도구로서, 그리고 거대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 돌은 우리 민족 문화를 담아온 그릇이다. 특히 동양의 여러 나라 가운데 워낙 단단해서 조각재료로는 잘 쓰지 않는 화강암으로 불상을 쪼고 탑을 세운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만큼 뛰어난 돌문화를 일궈왔다.

석조각에 예술혼 불어넣다
최근 조각가 장국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양양여자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인 장국보는 한국현대조각초대전, 제비리초대전, 설악해맞이조각공원초대전, 100인 조각가의 작은 기념비전, 공주국제미술초대전, 강원도 미술협회전 추천 등 국내 유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에 참가하여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올해 현대미술 20인의 시각과 전망전에 참가하였다. 강원미술연구회전 초대상, 한국현대조각초대전 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도 고성군에서 장국보 조각마당 상설전을 열고 있다. 작품의 단면만 주로 감상할 수 있는 회화와는 달리 입체조각은 사방에서 감상하기에 작가의 작업은 작품의 모든 면을 신경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가 장국보는 “조각에서도 특히 석조각은 필요에 따라 붙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어내고, 다시 붙이는 등의 수정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작품 제작에 앞서 완성된 작품의 형상이 작가의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어야 하는 매우 치밀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작가 장국보의 작품구상은 실제 돌을 깎는 제작단계의 고됨을 능가한다. 돌 조각을 한다는 것은 돌과의 씨름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의 경우 우체통 반 정도 크기의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한 달 정도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며 망치질을 20만 번 정도해야 완성이 되고, 높이 250cm에 8톤 정도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려면 20개월 가까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과 몸의 상태를 정비하지 못하였거나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처음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작가는 “석공을 시키거나 온통 현대적 장비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엔 스스로 작가의 혼을 담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촌 두부 모양의 원석에 돌 깨는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구상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여 망치질을 하다가 그 무의미한 돌에서 내가 생각하는 그 형체가 서서히 드러날 때의 그 느낌은 직접 맛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는 그는 그 맛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라 고스란히 여명을 본 것이 여러 번이다. 작가 장국보는 “광산에서 석재를 구입하여 작품이 끝날 때까지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그이기에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며 “그만큼 애착이 커, 모두 자식 같은 느낌이 들기에 자식 시집보내는 만큼이나 작품을 보내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사람 모습 주제로 우리의 정서와 모습 찾다

▲ 햇님달님 2010 송추아트밸리 현대조각초대전 출품작

요즘엔 떠오르는 구상이 있어 금속 작품을 같이하고 있지만 작가 장국보가 주로 다루는 작업재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화강석이다. 작가는 “화강석은 석굴암 석가탑, 집안의 주춧돌 등 건축 재료는 물론 집안의 살림도구인 절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정서와 모습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돌이라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질이 물러 칼이나 끌로 조각할 수 있어 섬세한 표현이 용이한 서양의 대리석에 비하여 화강석은 재질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고 섬세한 표현이 매우 어려운 반면 산성비에 강하여 쉽게 부식되는 대리석과는 달리 눈 비바람을 맞아도 몇 천 년을 버틸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작가 장국보가 주로 사용하는 영주석은 발이 곱고 신선한 푸른 기를 띠며 강도가 매우 강하여 조각하기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작품의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주로 재료를 가지고 와서 시간은 좀 걸리기도 하지만 돌을 들여다보면 그 돌 속에서 형체가 떠오르고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들여다보일 때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과거의 석조각들이 주로 종교적인 작품들이라면 작가 장국보는 사람의 모습을 주제로 만드는데 그것도 우리의 정서와 모습을 찾는데 노력을 한다. 아울러 자연이나 그 원리를 주제로 조형화하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은 화강석의 질감과 성질을 잘 이용하여 그에 어울리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면서 “재료의 특성상 다소 진부한 듯 보이지만 오랜 세월을 이겨내는 재료의 특성으로 볼 때 시대적인 경향은 충분히 극복될 것”이라 말했다. 이어 “이제는 작품 개수가 늘어 개인전을 열고 싶지만 장소와 운반에 문제가 있어 집 주변을 정리하여 조각마당을 확장하여 누구나 지나가다 작품과 작업과정을 볼 수 있는, 그리고 망치질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서 “망치를 들 힘이 있을 때까지 돌과 대화를 하며 조각을 즐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