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고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해리 김형근 화백의 <쇼쇼쇼>1호가 무려 8천만 원에 낙찰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역대 생존 작가 중에서 최고 작품가를 기록한 것이었다.

▲ 해리 김형근 화백

최근 해리 김형근 화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은백색의 화가라 불리는 그의 작품은 은백색의 바탕 위에 수놓아져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 동물, 사물 등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백색 영감으로 독자적인 작품 탄생
193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해리 김형근 화백에 대해 ‘미술계의 반란자’, ‘한국화단의 혁명가’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제도권 내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김형근 화백은 초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일본 동경 어린이 미술대회에 그림을 출품하여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화가가 환쟁이로 멸시받던 시절, 집안의 반대를 뒤로 하고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불굴의 도전 끝에 원근법이 탈피된 이색적 기법의 작품 <과녁>으로 국전 대통령상과 장관상을 휩쓸며 한국 화단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림에 대한 끈질긴 노력과 열정으로 공간과 거리, 구도를 무시한 자신만의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국전에 16작품을 출품하는 고집스러운 집념으로 국전 최다 출품 작가로 알려진 후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아메리칸 아트스쿨에 입학, 처음으로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았던 그는 미국 화단에서 대한민국 대표 화가로서 유수 화랑들과도 전속계약을 맺어 통영의 미는 물론,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당당히 정착시켰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순간에 깨달았던 은백색 영감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아 2004년 미국 뉴저지주는 4월 김형근 화백의 달로 제정, 해마다 4월이면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미국 현지 예술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미술행사를 펼치고 있다. 학연, 지연 등의 계파를 떠나, 그가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된 예술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고결함마저 자아내는 은회색의 시작점은 곧 김형근 화백의 내면이다. 은회색은 다름 아닌 생명의 불꽃이 사라진 어둠 직전 공명의 색이다. 김형근 화백은 “군 복무시절 주사쇼크로 20시간이 넘도록 죽음에 대한 경험을 했다”면서 “잠시 죽었던 그 순간은 영혼마저 이탈된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온 천지가 회백색이면서 편안한 분위기였던 그곳에서, 잊혀진 옛 친구들을 만나고 정처 없이 무명의 바닷가를 달려가 보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 보게 된 은백색의 환영은 지금까지도 김 화백의 영혼과 예술혼을 감싸는 장막이 되고 있다.

▲ 영산(백두산)

  모교 찾아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 심어주다

▲ 영원의 장

지난해 11월 산양초등학교에서는 김형근 화백의 그림교실이 열렸다. 산양읍지편찬위원회와 초중학교총동창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 행사는 본교 1회 졸업생인 해리 김형근 화백이 모교 후배들에게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산양초 재학생 후배들의 꽃다발 증정, 화백 소개, 예술특강, 그림지도 등의 순서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김형근 화백은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이 그림의 시작이었다”며 “어떤 상황에서든 주저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회상했다. 이번 행사에서 김 화백은 대한민국국전 대상과 문화공보부장고나상, 대통령상, 제1회 통영시 문화상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옥같은 작품 <가을의 사랑> 판화 10호를 후배들을 위해 모교에 기증했다. 경상남도 제2회 문화상, 제17회 국전 특선, 제18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 제19회 국전 대통령상, 서울시 문화상, 통영시 제1회 문화상,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인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그는 “절대 똑같은 작품은 두 번 그리지 않는다”는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키며 회화적인 요소에만 집착하지 않고 한국의 토속적인 소재가 지니고 있는 전통성을 잘 살려 캔버스에 녹여내고 있다. 토기나 백자, 청동합, 과일, 놋그릇, 꽃, 독수리, 봉황 등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로 화면에 공간의 제약을 두지 않고 자유자재로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낸다. “우주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화제이고 소재”라며 “특히 고향 통영은 엄청난 에너지와 예술적 모티브를 제공한다. 뜻 있는 예술생활과 새로운 회화창출로 내 작품이 100년, 1000년 후에도 좋은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