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는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며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커피를 예찬했다. 커피는 달콤한 맛과 향기의 유혹뿐 아니라 바쁜 일상 속 잠깐의 휴식을 제공해준다. 거리에서 다양한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커피 잔을 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식사 값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커피공화국’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외식문화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커피문화가 형성되면서 커피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커피 수입액은 7억 2천만 달러로 5년 전에 비해 200%이상 늘었다. 우리나라의 커피시장 규모는 최근 5년간 매년 20%가량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AC닐슨에 따르면 우리나라 커피시장 규모는 2007년 1조5580억여 원에서 지난해 4조1300억 원(추정치)으로 2.5배 넘게 커졌다. 성인이 하루 한 잔 이상 커피를 마신다는 통계 수치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1975년 0.1kg에서 시작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1kg을 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2011년 우리 국민이 마신 커피는 하루 평균 300톤으로 에스프레소 3700만잔 분량. 국내 경제활동인구 2400만 명이 하루 한잔 반씩, 연간 5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연간 매출액이 1조2000억 원에 달하는 커피믹스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상황. 커피믹스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솔류블 커피(인스턴트 커피가루 제품)를 누르고 커피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구조조정 태풍으로 비정규직 인력이 대량 실직하고, 여성의 권리가 급신장하면서 ‘커피 타는 심부름’을 할 직원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원두시장이 급속히 커지고는 있지만 커피시장의 주류는 여전히 커피믹스다.

식품업계 별들의 전쟁… 커피믹스 시장 ‘후끈’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의 ‘맥심’과 한국네슬레가 1987년 내놓은 ‘테이스터스 초이스’라는 브랜드가 최근까지 8 대 2의 비율로 시장을 양분해왔다. 하지만 25년 넘게 이어진 이 같은 시장 구도는 지난해 완전히 허물어졌다. 남양유업은 2010년 12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의 판매를 시작하며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진짜 무지방 우유를 넣은 제품”이라며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원두커피 시장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커피믹스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소비자들에게 ‘진짜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가 몸에 좋다’는 남양유업의 광고는 호소력 있게 파고들었다. 남양유업의 공세에 불쾌해하며 침묵을 지키던 동서식품은 결국 시장 분위기에 눌려 지난해 5월 커피믹스에 쓰던 카제인나트륨을 천연 카제인으로 바꾸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연간 1조2000억원 규모이다. 최초로 커피믹스를 출시한 동서식품이 계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남양유업, 롯데칠성, 농심 등 후발주자들이 지속적으로 커피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AC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커피믹스 시장의 업체별 점유율은 동서가 79.6%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양유업이 12.5%, 네슬레가 5.1%,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 1.3%로 뒤를 잇고 있다. 식품업계의 강자 농심이 최근 ‘강글리오 커피’를 내놓고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해 시장 경쟁이 격화할 것을 예고했다. 기능성 제품을 내놓은 농심은 ‘강글리오 커피’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글리오사이드’ 성분을 함유했다고 설명했다. 농심 측은 “강글리오사이드 성분이 커피에 적용된 것은 국내 최초”라며 기능성 커피믹스라는 차별화된 시장을 열어 3년 내 두 자릿수로 시장을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래 커피믹스는 직사각형 포장이 원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믹스’가 우리나라 기업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동서식품은 1976년 12월 커피와 크림, 설탕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일회용으로 포장한 커피믹스를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간편하고 빠른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우리가 맨 처음 마셨던 커피믹스 제품은 사각형 모양이었다. 1976년 동서식품이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로 세계 최초 출시한 커피믹스는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파우치 형태의 포장에 담겨 있었다. 당시 커피와 설탕, 크리머가 봉지 안에 한꺼번에 담겼다. 최근과 같이 길쭉한 막대 형태의 스틱 포장이 도입된 것은 1987년부터다. 디자인을 바꾼 것은 동서가 ‘동결건조’라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며 새로운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주기위한 이유가 컸다. 포장이 변화되고 커피믹스를 마시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커피, 설탕, 크리머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1996년 설탕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한 제품이 나와 기호에 맞게 건강하게 마실 수 있다는 이미지가 더해졌다. 현재 우리가 먹는 스틱형 커피믹스 모양이 완성된 것은 5년 전이다. 2008년에 소비자들이 포장 개봉 시 잘 뜯기지 않아 느끼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낱개 포장을 가로로 쉽게 뜯을 수 있도록 이지컷(Easy-cut) 방식이 마지막으로 도입됐다. 20여년이 넘게 이어져 오던 커피믹스 포장 형태는 최근 인스턴트 커피믹스 시장의 한 부분을 원두커피가 새롭게 차지하며 모양이 크게 변형됐다. 커피, 설탕, 크리머가 들어갔던 기존의 커피믹스와는 달리 원두커피만 들어가기 때문에 줄어든 용량만큼 자연스럽게 길이는 짧아졌다. 또, 기존의 스틱형 커피믹스 포장의 장점은 가져오되 세련된 디자인을 살린 제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커피믹스 고급화, ‘원두 바람’ 거세다
커피믹스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카제인나트륨 논란에 이어 이제는 원두커피로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3배 이상 비싸지는 등 변화의 폭이 자못 크다. 이마트에서 지난달부터 이달까지의 커피믹스 매출 중 원두커피믹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원두커피믹스의 비중이 7.3%였던 것에 비하면 소폭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롯데마트에서의 매출 추이를 보면 원두커피믹스의 신장세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하반기에는 1.6%에 불과했던 원두커피믹스의 비중이 지난해 상반기에는 4.9%로 늘었다. 또 지난해 하반기에는 9.3%로 원두커피믹스 매출 비중이 늘었고 올해는 지난달에 벌써 13.4%나 차지했다. 매출 비중이 꾸준히 느는 것과 더불어 제품군도 다양해지고 있다. 2011년 동서식품의 ‘카누’를 시작으로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에 이어 지난해 남양유업의 ‘루카’까지 원두커피믹스가 커피 업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라인이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두커피에 대한 니즈와 스타마케팅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지난해 동서식품의 카누 매출이 800억원을 달성했다”며 “남양유업의 ‘루카’도 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는 2007년 4월 프리미엄급 원두 캔커피로 처음 출시된 후 6년 만에 국내 대표 커피브랜드로 성장했다. 칸타타 RTD(Ready To Drink) 제품은 출시 5개월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넘겼다. 그리고 연평균 약 40% 이상 빠르게 성장해 2012년 1000억 원 판매를 돌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일까. 오프라인에선 국내업체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선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컨슈머리포트를 통해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인스턴트원두커피의 브랜드별 판매 점유율을 살펴보면 베트남 커피 ‘G7’이 점유율 51%로 1위에 올랐다. 2위는 브라질산 커피 원두를 사용한 ‘이과수(17%)’. 두 제품의 점유율이 무려 68%로 전체 온라인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원두커피믹스의 성장에 대해 업계는 소비자들의 커피 입맛이 고급스러워진 것이 트렌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커피에 익숙해지면서 크리머나 설탕을 넣지 않고 원두 고유의 맛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커피믹스 중국 입맛 사로잡았다
중국에서 한국식 커피의 인기가 날로 뜨겁다. 지난 3월 6일 코트라(KOTRA)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커피는 지난해 중국의 커피 수입시장에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한국 커피는 금액 기준으로 630만 달러(약 69억원)로 말레이시아(약 1600만 달러)에 이어 2위다. 2011년 240만 달러가량 수입한 것에 비해 무려 155% 급증했다. 한국식 커피의 인기를 주도하는 것은 소위 ‘다방커피’로 알려진 커피믹스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믹스가 한국 커피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4(천사)마트 등 중국 현지 유명 한인마트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탄 맥심 커피믹스는 최근 롄화(聯華) 같은 중국 현지의 토종 대형슈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식 커피믹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진하고 달달한 맛 때문이다. 이에 다국적 브랜드의 커피보다 한국산 커피의 단가가 높은데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의 경우 한 봉당 단가가 0.8위안으로 네스카페의 0.68위안에 비해 조금 비싸다. 중국의 연간 커피 시장 규모는 대략 700억 위안(약 12조6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잠재적 시장규모는 1조 위안(약 180조원)에 달한다.

캔커피·커피믹스도 이제 원산지 표시 의무화
카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높아지면서 커피의 원산지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원재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원두커피의 경우 원산지 표시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뿐 아니라 기호를 파악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정보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는 캔커피, 커피믹스 등 커피 제품에도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될 전망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원산지 표시 대상품목을 확대하고, 지도·단속 및 자율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해 생산자와 소비자 보호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캔커피, 커피믹스 등 커피 제품에도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우선 국내 생산은 없지만 최근 품질과 기호를 선호하는 소비자 트렌드(Trend)에 발맞추어 ▲볶은커피 ▲인스턴트커피 ▲조제커피 ▲액상커피 등 커피 4종의 가공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 할 예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김기성 사무관은 “커피의 경우, 현재 대외무역법에 따라 대한민국 통관 기준으로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다”며 “현재 88%의 커피가 생두 상태로 들어와 국내에서 로스팅되며, 6%의 커피만이 로스팅이 된 상태로 들어오는데 대부분 미국, 이탈리아에서 수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외의 커피제품은 완전 가공의 형태로 들어온다. 이에 따라 수입되는 커피의 상태와 종류에 따라 표시되는 원산지도 각각 달라질 예정이다. 다만,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원산지 표시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된다. 커피전문점 커피의 경우 가공식품 원산지 표시가 정착된 다음 시행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소비자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늘어났다는 평이다. 농식품부는 원산지 표시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 요령’을 개정한 뒤, 관계부처 협의와 농수산물품질관리심의회의 심의 등을 거쳐 커피 품목에 대한 원산지 표시를 올 하반기부터 시행할 전망이다. 또, 커피류 등에 대한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을 경우 판매물량에 따라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거짓으로 원산지를 표시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같은 행위는 농식품부 홈페이지 등 온라인으로 공포할 방침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