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갤러리 라메르에서 송보영 작가의 <미각> 전이 열렸다.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치만을 선보인 전시였다. 보기만 해도 침샘이 자극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김치를 통해 미각이 지닌 감각 그 이상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신선영 기자 ssy@

김치

▲ 송보영 작가.

배추김치, 파김치, 양파김치, 달래김치, 동치미, 깍두기... 그야말로 김치 향연이었다. 단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빨간 양념에서 느껴지는 매콤 알싸한 풍미와 목젖까지 시원해지는 탄산이 관람자들의 마른 침을 삼키게 했다.

“저희 어머니께서 종갓집 종부셨어요. 그래서 김치도 종류별로 다 담그셨고 김장도 거의 300포기씩 담그셨어요. 그 모습이 잊히지 않더라고요. 그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찾다가 김치를 그리게 됐어요.”

그가 떠올리는 김치는 그 옛날 마당에서 펌프 물 퍼 올려 담근 김치였다. 시린 손 불어가며 어머니, 형제들과 담근 김치였으니 잊힐 리 만무했다. 여기에 늘 한결같은 어머니의 손맛과 땅 속의 깊은 맛까지 더해지니 그 김치 맛은 아마 평생이 그리울 터다.

“특히 <깍두기>는 제가 가장 힘들 때 그린 그림이었어요. 어머니를 떠올릴수록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져서 그 자리에서 제대로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해 주는 걸 보고 작품에 대한 순수한 마음, 순수한 몰입이 그 어떤 기법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꾹꾹 눌러 담은 김치는 우리 모두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재료를 아끼지 않아 붉은 기 가득한 김치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김치였기 때문이다. 맛있게 담가 예쁜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아주셨던 그 김치였다.

“좋은 재료만의 맛깔스런 색감과 아삭한 식감은 눈이 먼저 알아봐요. 하지만 알아본다는 건 결국 톡 쏘는 발효된 맛이 아닐까요. 김치가 버무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수일의 발효를 거친 뒤에야 진정한 참맛을 느낄 수 있죠.”

▲ 각독기, 53.0x40.9cm, Watercolor on paper, 2016.

유산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김치의 참맛을 결정해주는 것, 바로 유산균이다. 작가는 이 유산균을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커다랗게 그려서 김치에 내재된 은유된 내용들을 회화적으로 풀어냈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무채색이 아닌 따뜻한 색채로써 말이다.

“어느 날 유산균이 눈에 들어왔어요. 유산균이 김치를 무르익게 하듯이, 어머니의 자양분이 우리를 성장시킨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유산균 안에 그린 보쌈김치는 저희 일곱 남매인데, 건강하고 복되게 키우고자 한 어머니의 바람이 깃들어 있어요.”

▲ 파김치, 53.0x40.9cm, Watercolor on paper, 2016.

그래서 작가가 그린 유산균은 어머니 품속처럼 따뜻한 모성으로 가득 차있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감각의 산물로써 유산처럼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김치는 병든 마음을 치유해주고 삶에 면역력을 높여주는 소울 푸드가 된다.

“제가 오이소박이를 정말 좋아해요. 아무리 아파도 오이소박이만 있으면 곧장 일어나 밥을 다 먹을 정도에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늘 담가주셨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언니가 해주고 있어요. 언제부턴가는 언니가 만든 김치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 양파김치, 53.0x45.5cm, Watercolor on paper, 2016.

어머니에게서 언니로, 그리고 내 아이에게로 전해지던 김치를 대중에게 선보인 지난 첫 개인전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미술 학원과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이십 오년 간 수업만 하던 그에게 어찌 보면 모험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채화만의 물맛이 작품에 큰 역할을 했어요. 사실 수채화가 그림 값도 안 나가고 그리기도 까다롭다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 작품만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서 익숙한 아크릴과 유화를 대신 수채화를 선택했어요. 늦은 나이지만 학원도 다시 다니면서 물과 종이부터 알아갔죠.”

▲ 저(菹), 53.0x45.5cm, Watercolor on paper, 2016.

작가가 사용한 종이는 아르쉬로 수채화 전용지다. 이 용지는 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수채화 특유의 흐르고, 번지고, 맺는 효과가 용이하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김치를 담그듯 물과 물감을 흡수시켜 나갔다. 이 작품들은 지난 첫 개인전에 이어 2월 23일부터 4월 19일까지 논산 제일치과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개인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초대전을 제안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논산이더라고요. 논산은 저희 어머니 고향이라서 어릴 적 손잡고 다닌 추억이 깃들어 있거든요. 마치 친정 가는 기분이 들어서 전시 제목도 <친정 가는 길>로 정했어요. 앞으로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각 고장의 김치를 그리려고 해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더 깊은 맛으로 우러나게요.”

▲ 보쌈+유산균, 53.0x40.9cm(x2), Watercolor on paper, 2016.

송보영 작가는 목원대학교 산업미술과를 졸업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20여회의 단체전에 참가했고 3회의 초대전과 지난 2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충청국제미술대전, 인사아트미술대전, 대전시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외 다수 수상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대전구상작가회, 대전사생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