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神)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 “응”)

에로티시즘을 내세우는 시인들 가운데서도 문정희 시인의 에로티시즘은 단연 첫손에 꼽을 만하다. 거침없는 문장으로 핵심을 강하게 찌른다고나 할까. ‘응’이라는 긍정의 언어가 글자마저 상하 대칭으로 ‘눈부신 체위’를 이루고 있음을 언급한다.
내공 있는 시인들의 수사에는 문학적 수사 이상의 통찰이 들어있다. 단지 한 여성과 남성의 수작을 밝히려는 게 아니다. 음과 양의 만남, 서로를 향한 건강한 갈구가 곧 땅위에서 가장 평화롭고 뜨거운, ‘완성’임을 선언하고 있다. 음과 양은 상대적인 관계다. 서로를 향한 갈구가 바로 우주 에너지의 근원이 다. 지향이 강할수록 에너지가 커진다.
음과 양의 성질과 작용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유비는 자석, 지남철이다. 음극과 양극의 속성이 강할수록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힘도 강해진다. 해와 달, 즉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지구의 역동성도 커진다. 일교차가 큰 봄에 생명들은 단단한 씨앗의 껍질을 뚫고 단단한 지표를 열어젖히며 새싹을 밀어올리는 힘을 낸다. 다시 교차가 큰 가을이 오면 식물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빠른 속도로 과실을 숙성시켜 결실을 맺는다.
인간, 동식물 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유(萬有)는 음과 양의 구성이 아닌 것이 없다. 이미 음과 양으로 분류된 최소 단위 속에도 다시 음과 양의 구성이 들어있다. 세포에서 핵, 이온 단위까지 내려가서도 과학자들은 다시 그 안에서 음과 양의 구성이 반복되고 있음을 밝혀낸다.
만물을 역(易; change 또는 rotation)이란 관점에서 풀어낸 고대 동양사상의 원리는 그런 범에서 놀랍게 과학적이다. 어떤 존재의 속성을 단지 음이나 양으로 단정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가지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음과 양의 부단한 변화와 교환작용 가운데서 만유가 생겨났다고 고대인은 설명했다. 주자는 “하늘(양)과 땅(음)의 두 기운이 교감하면서 만물이 생겨났으며, 만물이 또 낳고 낳기를 거듭하니 그 변화는 끝이 없다”(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라고 말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후변화나 생물의 진화, 정신문명의 발달까지 모두 암시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모든 사람이 한 형제요, 모든 사물이 (인간과) 동등한 존재다”(民吾同胞 物吾與也)라는 사해동포 사상까지 이어진다. 이 말은 송나라 때 학자 장재가 덧붙인 말이다.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답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흉이 아니다. 음과 양의 성질이 각기 뚜렷하여 서로 당기는 힘이 강해지면 만물은 더욱 활기를 얻고 세상의 활력도 높아질 것이다. 역의 관점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성 역할의 쇠퇴는 음과 양의 차별이 희박해지는 현상들과 다분히 맞닿아 있는 듯도 하다. 마치 겨울이 겨울답지 못하고 여름이 여름답지 못하듯이, 뜨거운 것도 찬 것도 차이가 모호해지고 옳고 그름의 차이도 모호해지며, 강한 것과 약한 것의 경계, 높은 것과 낮은 것의 경계도 허물어져 간다. 
이러한 변화는 너무나 거대하고 광범해서 좋다 나쁘다는 개념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지구의, 우주의 계절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문자’ ‘눈부신 체위’ 그 아름다운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는 인간관계의 다이나미즘을 이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열정이 식어가는 시대에 그래도 꾸준히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많지 않은 젊은이들의 열정은 차마 기특하다. 그래, 우리는 그래도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권장해야 한다. 지구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더라도. NM

▲ 이은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