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현재 속에서 살아남게 된다.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 그대로의 보존은 물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고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영원히 과거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 전통의 현대화에 앞장서 온 김용권 교수

우리나라에는 역사적으로 우수한 문화가 많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수한 문화를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발굴하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발굴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의 마땅한 활용, 응용방안을 찾지 못하여 여전히 과거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 다른 두 개념의 상생 추구를 역설적으로 표현
최근 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정초의 세시 풍습으로 전해오던 전통 민화인 세화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새로운 방법과 개념으로 표현한 세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김용권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가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김용권 교수는 ‘문, 그 문이 열리다’를 테마로 오는 5월 1일부터 7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개최할 제 17회 개인전에서는 복된 기운을 받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긴 신작 150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대부분 문을 통해 시공의 초월적이며 초정신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펼쳐 놓은 것들로, 동시에 우주 만물의 움직임은 음과 양에 의한 것이며 이와 같은 서로 다른 두 개념의 상생 추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김용권 교수는 “문을 경계로 한 하늘과 땅의 대조적인 이미지에는 ‘천생지성(天生地成)’ 즉 하늘은 생명을 낳고 땅은 하늘의 뜻을 받아 창조의 꿈을 완성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우리가 이러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펼쳐 놓은 것들”이라며 “또한 전통과 현대의 대조적인 이미지 작품에는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유물을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적응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역시 그들의 강한 에너지까지 전달받을 수 있도록 펼쳐 놓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김 교수는 어디나 빨리 갈 수 있는 ‘공간 이동의 문’, ‘가상과 현실을 드나들 수 있는 문’, 여행자가 되어 이승의 문을 통과해 저승에 이르는 과정 등을 담아 길흉화복과 삶 그리고 죽음이 한치 앞에 있음을 일깨워주고자 했으며 이를 피할 수 없으니 즐겨보라는 메시지, 동시에 희망과 행복, 장수를 말하고자 했다. 특히 작품의 주요 소재들은 다양한 오브제를 섞은 두툼한 색으로 다시 칠해 이를 긁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시각적으로도 형상도 색채도 모두 흐릿하게 소멸되어 아쉬움을 주지만 그 뒤에 계속되는 수많은 생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또 다른 회화적 깊이감을 준다. 즉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광명현상이 계속적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노크할 수 있는 강한 여운을 남긴 것이다. 또한 실험적으로 캔버스 테두리를 액자화한 동시에 이를 작품 내용과 연결해 표현한 것은 ‘액자의 새로운 변신’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내면과 싸우면서 개성 넘치는 작품 탄생
전통의 현대화에 앞장서 온 김용권 교수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자신의 예술세계와 접목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일관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30년 간 국내 미술계를 이끌어 온 김 교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싸우면서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92년 ‘전통에서 오는 소리’라는 테마로 첫 전시회를 열고 선조들의 외침, 호통, 당부, 기대, 염원, 격려 등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동일 주제로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국내는 물론 프랑스,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지에서 열여섯 번의 개인전을 개최해 찬사를 받았다. 미술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용권 교수는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자과정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민화학회, 한국조형교육학회, 동양예술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TV방송에 출연해 세화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기도 했던 김 교수는 “세화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현대적 어법으로 풀어낸 세화를 실생활에 이용하면 삶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