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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 붓질로 장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담다
권기동 작가
2013년 03월 05일 (화) 10:37:21 김대수 기자 kds@newsmaker.or.kr

현대 도시를 심리학적 혹은 더 나아가 병리학적 해석으로 바라본다면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시각적 정서는 매우 피곤하다. 이 피곤함은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풍경 때문이다. 경험상, 도시는 거의 시침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예술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미적 반응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기본적으로 질문이고 발언이다. 아울러 그것은 작가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서울의 낮과 밤 풍경을 그린 작가 권기동의 그림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게 해준다.
   
▲ 작가 권기동은 도시를 소요하고 그 현실 풍경을 통해 만난 불편하고 기이하고 낯설음을 그림으로 드러내고 있다. ‘거대하고 제도화된 폭력 앞에 무력하고 일상에 지친 피곤한 눈을 가진 한 개인의 비판적 상상력, 환각’이 그의 그림이 되었다.

사실적 재현에 유사하지만 마음으로 각색된 회화
주목받는 작가 권기동은 현재 한국 사회의 공공장소를 사실적/표현적 붓질과 생경한 색으로 드러낸다. 일상적이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장소이자 도시의 흔한 장면을 그렸다. 이른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는 자동차의 행렬,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다소 비정한 기계들의 굉음만이 들릴 것 같은 고속도로 풍경이나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돌변하는 도시의 상가들, 외국 브랜드의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으로 채워지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데미안 허스트의 거대한 조형물이 놓인 천안 고속터미널 앞의 풍경 같은 기이한 음산함이 감도는 현실 등을 재현했다. 그 같은 풍경은 거친 표면 효과와 단호하게 밀어낸 붓질, 짙은 그림자의 단호한 윤곽선, 보색간의 강렬한 충돌, 채도 높은 색들이 모여 매우 회화적인 맛을 풍기면서도 어딘지 상화나 조악한 간판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 권기동은 도시를 소요하고 그 현실 풍경을 통해 만난 불편하고 기이하고 낯설음을 그림으로 드러내고 있다. ‘거대하고 제도화된 폭력 앞에 무력하고 일상에 지친 피곤한 눈을 가진 한 개인의 비판적 상상력, 환각’이 그의 그림이 되었다. 그래서 그 그림은 분명 사실적인 재현에 유사하지만 기실 그만의 환각이자 몽상이고 마음으로 각색된 그림이다. 풍경을 이상적으로 재현한 결과도 아니고 즉물적으로 재현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비현실적이거나 관념적인 풍경도 아니다. 사실과 추상, 재현과 비재현의 사이, 혹은 대상과 주체,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문제가 그의 그림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가 포착한 이곳 한국의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인 도시 공간이자 매우 비근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복합적인 상황성이랄까, 징후를 촉각적으로, 후각적으로 혹은 통감각적으로 접하게 한다. 작가 권기동의 그림은 대상 안에 잠겨진, 은닉된 것들을 표면으로 밀어 올리는 편이다. 따라서 그 그림은 일종의 정신적, 심리적 상황성의 스펙터클이자 외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분명 그의 풍경은 일종의 정치적 풍경화이자 심리적 풍경화다. 지루한 도시의 일상과 소비문화와 천박하고 폭력적인 공공장소의 조형물이 자아내는 기이한 미술 취향의 위계가 공존하고 있는 이곳의 장소성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올려져 있다. 작가는 바로 한국 사회가 빚어내고 주물로 떠낸 도시 풍경, 초상을 심리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재현한 풍경은 평범한 풍경이지만 어딘지 의심스럽고 불길하며 심지어 초현실적이다. 현실 풍경에 내재한 불길한 기운이나 심리적 공포나 권태로움, 혹은 낯설게 다가오는 감각, 감수성이 재현되고 있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 풍경을 조감하고 채집하는 이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그 위에 상상력, 심리가 얹혀진다. 작가는 역사와 사회 속에 숨겨진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 시선을 보여준다.

시니컬한 시선으로 숨겨진 폭력을 그리다
작가 권기동의 최근작에서는 변화의 양상도 동시에 읽혀진다. 과거 피곤한 현실에 폭력적인 시선을 보냈다면 이제 그 시선은 시니컬해졌다. 시선의 폭력성이 누그러진 것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곤두선 신경은 여전하고, 그 언사 또한 신랄하다. 그에게 서정성이나 비극성 따위는 사치스러운 것처럼 치부될 수 있겠다. 작가 권기동 회화의 중심에는 전통적인 방식의 유화로 그리기가 있다. 단견에 이발소 그림이나 영화간판을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색 대비나 명암대비 혹은 생뚱맞은 선명함과 과도한 스푸마토와 같은 것들이 작가의 작품을 싸구려로 보이게 할 것 같다.
   
▲ From Nowhere 2,130x194cm, oil on canvas, 2012

하지만 이 싸구려로 보이기가 작가가 근사한 시물라크르에 대한 전략적 그리기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작법의 가벼움은 한순간에 해소된다. 또한 그가 유화의 그리기 방식에 천착하면서 그 표면을 구성한 것을 본다면, 또한 그 표면이 작가가 사유한 시간만큼의 두께로 쌓여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면, 작가의 회화는 단순하고 값싼 하이퍼 리얼리즘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때문에 작가 권기동의 회화는 그 표면에 남겨진 작업의 역사와 의미를 읽어내야만, 그려진 테마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권기동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9, 2012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 표현 활동 지원 작가, 2013 Vermont Studio Center 입주 작가, 2006, 2007, 2011 Sovereign Asian Art Prize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다. 지금까지 1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KIAF, Korean Art Today 등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외교통상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 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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