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30초, 길어야 3분. 그 만큼이면 족하다. 주워진 시간이 짧을수록 긴장감과 몰입감 은 높아진다.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지라도 그 시간을 헛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순간의 예술, 크로키. 신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품 ‘인체’를 그려나가는 누드크로키에는 특별함이 있다.

▲ 누드크로키를 할 때마다 만나는 누드 모델들에게 늘 감사하다는 김아원 작가

크로키는 자유로우나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원하는 선 하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짧은 시간에 승부하다보니 선이나 인체묘사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이 요구된다. 또한 순간의 포인트를 잡아내기 위해 직관으로 작업한다. 모델을 보고 원하는 장면을 바로 화폭에 옮기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훈련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내공을 쌓아가는 자신과의 싸움이 되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을 찰나의 수치로 나누다
실내 장식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인간의 생활 즉 인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공간에 주안점을 두어 미와 공학적 요소가 합쳐진 아름다운 공간을 추구하는 일을 해온 작가 김아원은 “디자인의 영역은 인간 생활 어디에도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미적인 것과 더불어 기능성, 편리성이 날이 갈수록 진화된다”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기는 살면서 주어지는 자연발생적인 환경, 또는 전공을 행하는 중 옆 동네를 기웃거리다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거나 만드는 것은 일상의 또 다른 연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림의 한 장르인 누드 크로키에 비중을 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정된 관념을 벗어나 자유롭고 당당한 표현방식으로 누드크로키를 한다. 크로키는 속도감이 생명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같은 모델, 같은 장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하여 쓸 수 있다. 한 포즈에 1~3분이 대부분이다. 3분이 넘으면 이미 크로키가 아닌 다른 드로잉이 된다. 그림을 표현하는 재료는 매우 다양한데 이는 작가의 역량으로 누가 정해주지도 또 강요하지도 않는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까지 3분을 넘긴 적이 없다. 그 중에는 1분 안에 완성된 것도 있고, 2~3분 안에 완성된 것들도 있다.

주어진 시간을 찰나적인 수치로 나누는 것도 크로키 작업의 분업과정이라 말하는 그는 속필로 속도감을 나타내며, 때로는 한 호흡을 건너 쉬며 나오는 필(筆)맛으로 선의 강약을 조절한다. 그렇게 윤곽이 이루어지며 형성된 여백의 구도는 아름답고 멋있는 채색으로 다이내믹한 느낌이 든다. 때로는 강렬한 먹 자체의 색깔과 희석된 중후한 배경색이 뜻밖의 유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회화성을, 혹은 역동성을, 때론 리듬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단순해 보이는 크로키의 세계는 무한하다. 자신이 선호하는, 모델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것 같은, 그 날 그 때의 기분에 따라서도 다양하고 엉뚱한 재료를 선택해 맘껏 화면에 그어대는 붓 끝에서는 그 세계가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크로키, 그 속필의 매력에 빠지다
김아원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많이 웃고 한켠으로는 갸우뚱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을 자세히 관찰한다. 이는 아마도 벗은 인체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더불어 호기심을 종이에 솔직하게 풀어보는 상대의 내면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과 공감을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모방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모방을 위한 준비단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크로키로 표현되는 작품에서 감(感)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동일한 작품은 나올 수 없다. 모델이라는 피사체에서 우리 인간의 신경에 충격 메시지로 도달하는 속도는 시속 300km로 그 속도의 감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크로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속필(速筆)이 맛인 탓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 짧은 시간에 인간의 머리에 저장되어 있는 훈련된 많은 정보를 순간 정리하여 지각할 수 있다는 것에 매번 감탄을 하곤 한다. 작품의 결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인간이 가진 무한대의 경이로움 속에 속해 있다는 행복감, 뿌듯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존의 관념이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참되지만 이상해 보이는 것보다 거짓되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서 “작품의 결과물에서도 창의(創意)는 그러한 아이러니함에서 갈등하며 탄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 고 작가는 반문한다. 현재 ‘대한민국 아트 미래 국제전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 아트 미래 국제전회’는 ‘일본 아트 미래 국제 공모전회’가 계기가 되어 매년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국제 공모전에 한국대표 작가로 참여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김아원은 “단체에게 주어지는 경제성이나 사회에서 주어지는 그 어떠한 등급은 없지만 작가들의 국제전 참여 자체가 훌륭한 작품을 향해 가는 길목이 될 것”이라며 “많은 작가가 참여해 안이한 사고로부터 탈출한 멋진 작가들과 친분을  쌓는 것이 이 모임을 이끌어 가는 조그마한 보람이다”라고 한다. 이화여대 장식미술과 및 홍대 환경대학원 실내장식과를 졸업한 김아원은 지금까지 3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을 오가며 국내외 유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을 통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제17회 일본 아트미래국제 공모전 특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현재 한국미술협회원, 한국크로키회원, 일본 아트미래국제 공모전 회원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아트미래국제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누드크로키를 할 때마다 만나는 누드 모델들에게 작가는 늘 감사한다. “그대들이 있어 행복하게, 자유롭게, 그릴 수 있고 새로운 느낌에 도전할 수 있으니 그보다 신명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