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ECD가 발표한 국가별 갈등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은 연간 300조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국론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우리사회의 불안정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사회의 혼란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일제의 식민지 통치시대와 해방을 맞이하면서 극대화된 좌·우파의 대결과 만나게 된다.

▲ 유영옥(경기대학장)

그 시절의 좌·우파의 갈등이 오늘날 까지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사회의 갈등은 그 뿐만이 아니다. 경제성장 동력의 약화, 빈부격차의 심화, 출산율 저하, 고령화 사회의 도래,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한 글로벌 시대의 인재양성 실패, 결혼이민자와 노동이민자의 증가로 인한 다문화사회로의 변화 등 날로 다양해지는 사회문제로 인해 우리는 더욱 불안정한 상태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북한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과의 국제정세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핵, 미사일 등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북한과의 대치상황은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부담과 역사왜곡을 멈추지 않는 일본과 더불어 우리가 더욱 단결하고 화합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현시켰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현재의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한민족의 역사 상 분명 최대의 혁명이었다. 그것은 한반도에 그 이전에 존재했던 왕조 국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치체제와 제도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또 우리 한국인이 처음으로 근대적 개념의 권리를 지닌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바로 이러한 한국인의 존재론적 변화가 결국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공정책은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러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주요 수단의 하나로서 상징이 크게 이용된다. 독립기념관 건립, 올림픽 개최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정책들은 그 결과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광범위한 국민적 관심을 모을 수 있으며, 노력의 투입 이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유용성과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도 경제개발 일변도의 정책지향을 탈피하여 사회 문화 정책을 중요시 하게 되었고, 경제적 풍요로움 못지않게 정치적 민주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학원자율화, 언론통제 완화, 노동조합 운동 활성화, 평화적 집회·시위의 허용과 같은 각종 상징적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이 왜곡되어 국가의 기본질서까지 혼란스럽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좌편향 되었던 지난 좌파정권의 국정운영과 친북·종북세력의 확산 방조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서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회복과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국가발전은 물론 국가존립까지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한 상징정책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정부가 정치적 의도 하에 상징적 정책을 국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정부의 입장에서 빈번히 사용하게 될 경우 오히려 그 상징은 효용성은 점차 감소되고, 궁극적으로는 효용성이 상실되거나 역효과를 나타내가 쉽다. 6·25전쟁이후 북한 공산주의자와 군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전반적인 면에서 극한의 대립과 긴장관계를 지속해온 상황 속에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설득력을 지녔던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상징이 어떻게 쇠퇴하였는지 그 과정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상징남용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무엇보다도 상징을 꼭 필요한 상황에서 순수한 정책적 차원에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즉 정부는 국가적 이익과 국민의 복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그에 관련된 충분한 취지와 배경설명을 선행해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확이 해야만 한다. 또한 상징적 정책과 더불어 실질적 정책의 역할을 면밀히 검토해 상호 보완적으로 균형 있는 효과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하며, 상징적 정책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 평가의 어려움을 감안해 정부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실제로 상징주의적 공공정책들이 무수히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분석과 설명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모든 공공정책은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통합, 국가안보와 같이 공중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위협을 받을 때에 생기는 공공문제는 정치적·상징적 의미와 심리적 만족 및 윤리적 중요성 등과 같은 비분석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을 보다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이해시켜주는 상징정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많은 점에서 미숙한 부분도 있었지만, 국민 개인이 능력껏 자기 역량을 자유롭게 펴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원칙은 건국 당시부터 보장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우리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최초의 가치였다. 비록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이 삶의 조건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데는 미흡했지만, 적어도 소극적인 면에서의 자유는 보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이를 수호·발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 4·19혁명과 5·16군사혁명은 자랑스럽게 의미를 부여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자유민주주의에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심각한국가정체성의 훼손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오는 2013년부터 적용될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놓고 깊어진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라는 용어와 관련된 논란이다. 지난 2011년 7월 15일 교과부에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역사교육과정 개발정책연구위원회'가 제출한 새 역사교육과정 최종 시안에 사용된 표현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좌파 성향의 사학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혼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국사학계는 지난 8월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을 다시 고시하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변경했는데, 이번에는 좌파 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표현을 강력히 저지 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병용(倂用)해 표기하기로 한 발 물러서 타협을 시도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합의가 이루진 것은 아니다.
미래 한국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관과 왜곡된 국가 정체성이 전해진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만일 현재 시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바르게 확립시키지 못한다면,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이 땅의 역사를 이끌어 갈 때,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 왔던, 그리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우리사회의 심각한 국론분열의 원인과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국민통합의 노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