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상화는 우리의 중요한 문화 요소로 정착되어 왔다. 과거 인물과 각 시대 세대들과의 정신적 교감과 동질성 공유의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해왔던 것이 초상화이다. 때문에 초상화는 한 가문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범주의 공동체가 보존할 공공 문화재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황태일 기자 hti@

▲ 국내 사실주의적 인물화의 대가이자, 초상화의 대표작가인 오동희 작가

역사적으로 어떤 거장도 대표작을 꼽는 데 있어 초상화가 빠지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초상화의 문화적 의의가 적지 않다. 한 작가에게 있어 초상화가 중요한 비중을 갖는 것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당대의 인물과 작가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가치가 있지만, 한 작가의 예술적 경험이 집적된 아우라가 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인물의 정신까지 옮겨 담는 초상화 그리다
“초상화를 그려온 것이 올해로 40년이 되어 갑니다. 긴 세월 수많은 얼굴을 그려왔지요. 그림은 내게 즐거움이고 보람입니다. 또 때로는 고통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선택한 삶 아니겠어요?” 작가 오동희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사실주의적 인물화의 대가이자, 초상화의 대표작가인 작가는 그간 한국을 빛낸 역사적인 위인들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 문화예술 및 정·재계인사 들의 초상화를 작업하며 화제가 되었다. 작가 오동희의 초기 작품은 전통 초상화가 주를 이룬다. 40여 년 전에는 옛 사진을 복원 작업하는 정도의 ‘단순 초상화’가 주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 형태도 바뀌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전통 초상화의 개념을 과감히 벗어나 캔버스에 이미지를 담아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樂天 南九萬 조선시대 문인의 초상, 天台宗 總本山 상월 대조사님 영정 500호 등 단순히 인물의 대상만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정신을 옮겨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탄생한 작가 오동희의 작품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예민한 감각들이 인물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인물화의 주된 요소인 신체의 비례, 얼굴 표정, 자세뿐 아니라 대상의 성격과 향기까지 담아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터치로 이미지화하여 감상자들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지난해 10월 작가는 (재)바보의 나눔에 故 김수환 추기경의 초상화를 전달했다. 이번에 전달된 김수환 추기경의 초상화는 서울대교구의 승인을 받아 선종 당시 사용된 영정사진을 그린 초상화 1점과 자신의 작품전에 전시했던 생전 추기경의 따뜻한 모습을 그린 초상화 2점 등 총 3점이다. 작가는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김수환 추기경님을 존경했고 그의 미소를 좋아해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영정사진 외에 초상화가 없으신 것 같아 그려보았는데 존경하는 분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어 오히려 제가 영광”이라고 전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한국의 대표 초상화 작가 되다
현재 캐나다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사우디 국왕을 비롯해 마더 데레사, 김구, 최규하 등 여러 분야를 초월한 사실주의적 인물화를 그려온 작가 오동희. 경북 영주 태생인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탁월한 예술적 소질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특히 데생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원하던 미대 대신 제약회사에 입사해야 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주말이면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감상하곤 했던 작가는 유독 인물화에 감흥을 얻었다고. 작가 오동희는 “그날도 미술관을 다니면서 명화들을 감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초상화 작품이 눈에 들어왔죠.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라며 “그때부터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부터 초상화에 주력한다면 장차 대한민국 초상화의 1인자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고 회고했다. 그때로부터 40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 환갑을 넘은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초상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초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인체의 골격과 근육에 대한 공부를 위해 누드 크로키를 하면서 선의 개념을 익혔고,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60세가 되던 해 만학도로 홍대 미술대학원 서양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회화에 대한 해석과 독자적인 표현기법을 연구하며 쉼 없이 전진해온 집념의 작가 오동희.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히 느낍니다”며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흐르는 것 같아 더욱 조급해지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60세가 되어 대학원 석사과정을 끝낸 용기와 열정으로 앞으로도 소신을 지키며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고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