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부터 시작된 한류 열풍은 단순히 연예인들의 인기몰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외국인을 국내로 불러들이며 우리의 문화를 전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황태일 기자 hti@

▲ 김정옥 대표는 “스스로 선택한 도예가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고, 그동안 외국 문화로 범벅되었던 모습들에서 우리의 진정한 전통문화의 명맥을 발견하고, 이를 보존시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가문의 대를 이어 조선 도예의 전통 지키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명장, 영남요의 김정옥 대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인 김정옥 대표는 7대 도예가문의 수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사기장으로는 최초로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인물이다.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 ‘정호다완’ 등 그의 작품은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 대신, 투박하지만 고고한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 대표가 전기 물레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가마인 망댕이가마로, 그렇게 200여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그릇을 빚어낸 결과다. 망댕이란 흙을 뭉친 덩어리라는 뜻으로 김 대표의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전통가마로, 장작은 자기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적송만을 사용한다. 그는 “가스가마나 전통가마나 언뜻 보면 작품 차이는 별로 없을지 모른다”면서 “가스나 석유 때문에 대기가 나빠지는 반면, 나무를 때면 독성이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독성 없는 불로 그릇을 구워야 한다는 것. 김 대표는 “전통가마로 구워낸 그릇과 가스가마로 구워낸 그릇 중 가스 가마에 꽂아둔 꽃이 먼저 시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도예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태토를 고르고 물레질을 연습했으며, 큰 산 두 개를 넘나들며 장작을 구해 가마에 불을 지폈다. 현재는 찻사발, 찻주전자 등 ‘작품’을 주로 만들지만 그가 도예를 시작했을 초반만 해도 요강이나 화분 등 실생활에 필요한 사기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김 대표는 “선친의 명성을 듣고 때때로 외지에서 고객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값싼 플라스틱이나 양은 그릇이 나오면서 1년에 한두 번 가마에 불을 땔 정도로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회고하기도 했다. 흙을 고르고, 땔감을 고르며 그릇을 빚는 일은 과정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의 일상이다. 그렇게 김 대표가 쉼 없는 작업을 해온지도 61년째. 김 대표는 “우리 가문이 유일하게 조선 도예의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점이 늘 자랑스러웠다”며 자신의 도예인생의 버팀목은 ‘자긍심’이었음을 강조했다.

▲ 최근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뜨거운 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모든 과정을 손수 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7대를 잇는 도자기 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집을 넘어서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두 달에 한 번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 점이 들어가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3~4점이 채 안 된다. 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는 가스가마를 외면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가마를 고집하는 것에 김 대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예부문 초대 명장, 세계에 이름을 떨치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배움으로 도예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김정옥 대표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부터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198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에 다완을 출품해 입선한 이후 그는 전통 도예 부문의 각종 상을 휩쓸면서 독보적인 전통 도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 청화백자팔각소병(靑華白磁八角小甁)

이후 향토문화상, 경북문화상, 전승공예대전특별상 수상을 거쳐 지난 1991년에는 정호다완의 재현으로 도예부문 초대 명장의 자리에 올라섰으며, 1999년 문경대학 초대명예교수에 이어 2000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예를 얻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을 비롯, 캐나다왕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 박물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 등에 작품을 전시했으며,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완 등 4개국 장인전문가회의 한국대표 참석,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근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총 6개로 만들어진 통일항아리는 청와대, 국회, 통일부, 민간단체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각각 한 개씩 전달되고 나머지 두 개는 통일부가 보관하고 있는데, 나머지 통일항아리는 통일준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현재 김정옥 대표는 조선백자의 명맥을 잇기 위해 제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외아들 김경식 씨와 전수 장학생 4명에게 도예기술을 전수하며 참도공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김 대표는 “어려운 시절을 거쳐 왔지만 스스로 선택한 도예가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노력하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