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국면에 접어들었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부동산 시장에서 하우스푸어(집을 보유한 가난한 사람), 렌트푸어(급증하는 전세금을 감당하기 위해 여유 없이 사는 사람), 깡통주택(집을 팔더라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주택) 등의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종서 기자 jslee@

정부는 주택 시장의 안정을 위해 연일 세부담 경감과 유동성 공급, 각종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여전히 집값은 장기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대책이 발표되면 잠시 반짝 효과가 나타나지만 이후 집값이 다시 하락가는 등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년 봄철 전세난 가중될 듯

▲ 금융당국과 금융연구원이 한국은행ㆍ통계청이 실시한 가계금융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가계부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는 집값이 20% 하락하면 깡통주택은 현재보다 4만6000가구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월세 재계약이 집중되는 내년 봄철에 시장의 전세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써브가 2011년 주택임대차 실거래량을 집계해 2013년 재계약 만기 대기건수를 예측한 결과, 2013년 전세재계약이 도래하는 물량은 총 132만1200여건이었다. 이 가운데 내년 상반기 전월세 계약물량은 68만8900여건(52%)을 차지해 하반기보다 5만6500건, 약 8.9%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분기(1~3월)가 35만1000여건(26.56%)으로 전월세 계약이 가장 많아 봄철 전세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내년 3월의 전월세 계약은 전국적으로 14만1600건(10.7%)에 달해 올해 12만6800건 보다 11.6%가 많은 수치로 평년수준보다 월등하고, 2013년 월별 재계약 예정물량 중 가장 많다. 1분기 전월세 거래량은 3분기보다 12.9% 많은 수준으로 여름 전인 2분기까지 가격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분기는 33만8000건의 임대차재계약 가구가 출회될 예정이라 2013년 상반기가 연내 임차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소가 될 전망이다. 상반기, 특히 3월에 재계약이 집중된 상황은 서울과 지방 모두 비슷하다. 서울은 4만7000여건으로 강북 2만2100건, 강남 2만 5000건 모두 3월에 몰렸고, 인천 8400건, 경기도 4만30여건 역시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부산(7700건), 대구(4500건), 광주(2780건), 대전(4500건), 울산(1900건) 등 지방광역시도 총 2만1,549건으로 3월 거래량이 가장 많다. 신정부의 임대주택 정책과 신혼부부 결혼수요 등 2013년 전월세시장의 돌발변수는 다양하다. 도래할 전세재계약 물량의 상반기 쏠림 현상도 내년 임차시장 향방을 가늠할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11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세자금 보증은 집 없는 서민이 별도의 담보나 연대보증 없이 은행에서 손쉽게 전세 자금(월세보증금 포함)을 빌릴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해 주는 제도로, 지난 2월 처음 1조원을 돌파한 뒤 8개월 만에 또다시 1조607억원이 공급됐다. 이는 지난 2009년 전세대란 이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10월 한달 동안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무주택 서민에게 지원한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이 1조607억원, 공급건수 3만2541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올해 10월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은 전월보다 21.3%, 공급건수 24.7% 늘었다. 전세대란이 있었던 2009년 동월(2958억원, 36만8197건) 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중 신규공급액은 13.8%(6474억원→7366억원) 증가해 소폭 늘어난 반면, 재계약 등에 따른 기한연장 공급액도 42.6%(2273억원→3241억원) 증가해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컸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보증공급액은 18.9% 증가했고, 공급건수도 11.5% 늘었다. 이중 신규 공급액은 11.6%, 재계약 등에 따른 기한연장 공급액은 39.5% 늘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보증부 조성교 팀장은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전세 재계약이 많이 늘어났다”며 “전세 사는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고 주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취득세 감면·양도세 면제 효과 미미

▲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깡통주택 등의 신조어도 등장했다

가을 이사철 성수기와 함께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했던 9.11대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10월 부동산시장 소비심리지수가 4개월 연속 상승했으나 상승폭은 점차 낮아졌다. 이는 올 연말까지만 적용되는 취득세 감면과 양도세 면제 효과가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1월 국토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10월 전국 부동산시장(주택+토지) 소비심리지수는 9월 109.0보다 2.3포인트 상승한 111.3을 기록했다. 하지만 상승폭은 8월 4.5포인트에서 9월 3.6포인트, 10월에는 2.3포인트로 점차 낮아지는 양상이다. 부동산시장 소비심리지수는 0~200의 값 중에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월에 비해 시장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란 응답자가 많음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수도권 소비심리지수는 9월 105.9 대비 2.1포인트 상승한 108.0, 지방은 9월 112.9보다 2.5포인트 상승한 115.4를 기록했다. 10월 전국 주택시장 소비심리지수는 9월 111.5보다 2.4포인트 상승한 113.9를 기록했다. 매매의 경우 9월 105.6보다 2.0포인트 상승한 107.6으로 나타났으며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9월 97.5에서 10월 100.6로, 지방이 9월 115.8에서 10월 116.4로 모두 상승했다. 전세는 120.2로 9월 117.3보다 2.9포인트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9월 119.1에서 10월 120.5, 지방은 9월 114.9에서 10월 119.7로 모두 상승했다. 한편 취득세 감면 종료 시점이 바짝 다가오면서 수요가 막판에 몰리는 ‘막달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의 경우 취득세 감면 기간이 3개월에 불과했고 대선을 앞두고 있어 부동산 정책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막달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감면안이 적용된 9월 거래량의 경우에도 2만6165건으로 1년 전 동기(5만260건)에 비해 반 토막 수준에 그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있어 감면안 적용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도 큰 변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깡통매물 등장할 정도로 가계부채 심각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주거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전·월세가격과 수도, 광열비 등을 포함한 주거비 부담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해 최고치(10.15%)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집값 하락 현상이 계속되면서 집을 팔아도 빚조차 다 갚지 못하는 깡통 매물이 등장할 정도로 가계 부채가 더욱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서도 대출금과 전세금이 집값의 70%가 넘는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약 34만 가구다. 특히 최근 경매 낙찰가율(감정가대비 낙찰가 비율)이 70%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전문가들이 집주인이 대출금을 못 갚아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세입자가 전세금을 모두 회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담보인정비율(LTV) 한도(시세의 60%)를 넘어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기 어려워질 것으로 추산되는 가구는 약 39만5000가구로, 시중 은행권에서만 48조원(전체 주택담보대출의 16.9%) 규모에 달한다. 정확한 규모가 집계되지 않는 제2금융권까지 감안하면 LTV 한도 초과대출 규모는 이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당국과 금융연구원이 한국은행·통계청이 실시한 가계금융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가계부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는 집값이 20% 하락하면 깡통주택은 현재보다 4만6000가구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가계소득이 20% 줄어도 3만5000가구가 새로 깡통주택이 되고, 집값과 소득이 함께 20%씩 줄어들면 깡통주택은 9만6000가구나 늘어난다. 이 경우 금융권의 부실은 현재 10조7000억원에서 17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최근 모든 금융권을 대상으로 ‘깡통전세’ 실태파악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선 대출 후 전세계약을 맺은 주택에 대한 전방위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현재 제대로 된 데이터조차 없지만, 문제가 생기면 세입자들의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전세계약을 맺은 후에 대출을 받은 경우는 전세금이 담보가치인정비율(LTV))에 포함돼 당국의 관리가 가능하지만 선 대출 후 전세계약을 맺은 경우는 전세금이 LTV에 반영되지 않아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금융권 역시 자신들이 변제 선순위이기 때문에 세입자들의 전세금 수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때문에 금융당국은 집 주인이 먼저 집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집에 전세계약을 맺고 들어가 살고 있는 가구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집값에서 대출금과 전셋값이 차지하는 평균값을 구한 후 대출이 있는 집에 평균 전셋값 비중을 더해 현재 집값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의 핵심은 선 대출 후 전세계약을 한 경우의 LTV로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추정치는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깡통 주택’의 규모는 72조원 수준
현재 한국의 가계 부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금융권의 부실과 국가 전체의 부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현재 집값보다 대출금이 높은 주택 이른바 ‘깡통 주택’의 규모는 72조원 수준에 달하며, 이는 전체 주택 대출의 1/5을 차지하는 규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집값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바닥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미 주택 공급에서는 미분양, 건설업체 위기 상황을 통해 공급과잉이 나타나고 있으며 수요 측면에서도 하우스 푸어,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가시화 되면서 가계부채가 최고한도에 이르고 있다는 것. 아울러 외부적으로 국내 수출경제가 더딘 속도로 개선되고 있어 향후에도 주택 가격의 하락은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집값과 전세값이 반대로 움직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전세값과 집값이 연동해서 움직여 왔던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세값의 상승은 주택 매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손해를 보면서 집을 매수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이 또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임대 시장이 확장됨으로써 집값 하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의 주택관련 정책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빈부 격차로 이어져 온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주택 거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소유 위주가 아닌 거주 위주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주택 정책의 중심을 서민 주거 안정화에 두고 그에 합당한 제도와 정책을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주택 거래 시장의 마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주택수급 조절 및 거래 활성화 대책을 통해 부동산시장의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수기반 강화를 통해 가계소득을 확충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