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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
교전 8일 만에 불안한 휴전
2012년 12월 05일 (수) 13:26:52 안상호 기자 press83@newsmaker.or.kr

지난 11월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지도부에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안상호 기자 press83@

이스라엘 대내정보국인 신베트는 가자지구 공습 다음날인 11월 1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하마스 군 최고사령관의 제거는 하마스 관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계속 시도한다면 다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500여 곳 포격, 147명 사망
이스라엘의 이번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습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포탄이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계속해서 떨어지자 이스라엘이 하마스 측에 여러 차례 경고를 한 뒤 나온 것이다. 앞서 10월 25일 가자지구 무장 단체가 발사한 로켓 포탄 70여발이 이스라엘 남부 도시에 떨어져 3명이 부상당했으며, 11월 11일에는 이스라엘 지프가 국경지대를 순찰할 때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 포탄에 맞아 당시 이스라엘 군인 4명이 중경상을 입은 바 있다. 이스라엘은 11월 14일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가자지구에 20여 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공습으로 하마스 군사조직의 리더인 아흐마드 알 자바리가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또 하마스의 군사 훈련 시설과 무기고 등 여러 곳을 목표물로 삼아 정밀 타격을 가했다. 이에 이번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자바리 암살에 대해 “오늘 우리는 하마스와 테러그룹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확전의 준비가 되어있다”며 전쟁 의사를 천명했다. 이에 대해 하마스 측은 즉각적인 보복을 다짐했다. 2004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집권당으로 부상한 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설립자인 야신을 포함해 수십명의 고위관리를 표적암살해왔다. 하마스 군사조직의 리더였던 아흐마드 알 자바리 또한 과거 4번 이상의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바 있다. 이번 팔레스타인 공습에서 이스라엘군은 대변인 트위터를 통해 “테러사이트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작전 중 #가자지구에서, 그들 중 우두머리인 #하마스&이슬라믹 지하드 타깃”이라고 올렸으며 전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으며, 그 폭격 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을 공유하는 등,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공습을 시작한 11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 내 1500여 곳을 포격했으며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1천여 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 포격전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147명이 사망했으며 희생자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5명으로 파악됐다.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는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남서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이 약 50㎞, 폭 5∼8㎞에 걸쳐 가늘고 길게 뻗은 지역이다. 총면적은 약 362㎢의 가자지구는 서쪽 끝은 시나이반도로 이어지며, 이 구역 내에 있는 최대의 도시 가자시(Gaza市)의 이름을 따서 이와 같이 불리게 되었는데, 그 밖에 한유니스(KhanYunis)·라파(Rafa) 등의 도시가 있다. 인구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인으로 오랫동안 대이스라엘 저항세력의 중요한 거점이 돼왔고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정착민이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가자시는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로 ‘구약성서’의 삼손이 활동하고 체포된 고사(故事)와 관계가 깊다. 또 이집트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로의 요지(要地)로서 예로부터 그리스·로마·아랍·오스만투르크 등의 여러 세력에 의해 되풀이되어 정복되어 왔다. 가자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가 제1차 중동전쟁(1948∼49)의 결과, 이집트가 점령하였다. 그러다 1956년 수에즈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였으나 1957년 다시 이집트의 영토가 되었고, 1967년 중동전쟁에서 다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와 함께 점령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이곳에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해 가자지구 정착촌에는 7천-8천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 점거’라며 철수를 요구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2005년 8월 15일부터 1967년부터 점령해온 가자지구에서 철수를 단행하고 있다. 이어 2005년 9월 정착민 보호를 위해 배치한 군 병력까지 완전 철수했다. 그러나 2006년 다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 중동지역 평화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점령지 잠정자치원칙에 합의해 1994년 5월부터 이 지역의 67%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가 시작되었다. 인구 과밀과 급증, 물·하수처리시설·전기의 부족, 매우 높은 실업률 등의 요인으로 이곳의 생활조건은 열악하다. 이곳 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산업은 농업으로 전체 지역의 3/4 가량이 경작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
기원전 15세기 경 팔레스타인지역에 들어온 유대인은 BC 997년 다윗왕에 의해 처음 국가를 성립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외세에 의해 망하고 유대인들은 식민치하에 들어가고, 기원전 100년 무렵엔 로마의 속령이 되어 지배를 받게 된다.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제1차 유대전쟁을 일으켰으나 AD70년 로마에 패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당했으며 신전도 소실되었다. 135년 제2차 유대전쟁에서도 패하여 유대지역은 황폐해졌고 유대인은 세계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디아스포라(이산)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지역은 637년 이슬람교 아래 단결한 아랍인들이 로마를 격파한 이후 16∼20세기 초에는 오스만제국이 점령하였는데 주로 이슬람교도의 지배가 지속되었으며 이후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에는 예로부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함께 있는 복잡한 종교적 지역이 되었다. 터키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터키가 패하면서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들어 국가건설을 위해 투쟁하던 유대인은 국가건설의 예정지를 성서에서 약속한 땅 팔레스타인으로 정했으며, 팔레스타인의 시온산은 그들 국가건설의 상징이었으므로 시온산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하며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시오니즘에 의한 유대인의 이주가 계속 증가하자 아랍인의 유대인 배격운동이 격화되었다. 1차 대전 중이었던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벨푸어선언’을 했다. 이것은 미국 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1차 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맥마흔 선언을 통해 1차 대전에서 독일편에 서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한 바 있다. 지킬 수 없는 두 가지 약속을 하고,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이다. 1930년대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이 증가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유대인 이주자가 팔레스타인 인구의 31%,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의 5.67%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급증하게 되었다. 이 결과 1947년 UN에서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 가결했으며 이스라엘 성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시오니즘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민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주민을 쫓아내어 오직 유대교도만으로 나라를 이루려는 유대인들의 건국운동이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 아랍주민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이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었고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와 동시에 이를 거부하고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제1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유대인은 본래 UN분할지역보다 50%가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1974년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이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 90여만명이 집단 탈출을 시도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난민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국가에서 떠돌이 신세로 지내게 되었다. 분쟁이 끝이지 않던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협정’ 체결로 숨을 돌리게 된다. 1979년 카터 미대통령의 중재 속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 간에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체결,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있던 골란고원의 반환을 거부해 불화가 더욱 심화됐다.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1964년 결성된 비밀저항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세계 곳곳에서 테러 등으로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하고 이스라엘도 1982년 레바논 PLO 본부를 습격하는 등 60년대 이후 양측의 ‘피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1987년12월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인 반이스라엘 투쟁인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이후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평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9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 팔레스타인자치국 건설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94년 7월 1일에는 아라파트 PLO 의장이 가자 자치지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7월 5일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 그러나 1997년 3월 팔레스타인에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측도 과격 이슬람단체들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잇달아 감행, 협상은 위기국면에 다시 빠졌었다. 그 후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중재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간에 평화협상이 이루어졌다. 1998년 10월 23일 ‘영토와 평화의 교환’ 협정의 마지막 쟁점들을 해소하고 최종 협정문안을 작성했다.(와이리버 협정) 그러나 동예루살렘의 주권을 서로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양측의 대립이 결정적 걸림돌이 돼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고 지난 2000년 9월28일 아리엘 샤론 리쿠드당 당수의 동예루살렘 내 이슬람성지 방문 사건이 돌출, 평화협상은 피의 파국을 맞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유혈 충돌이 최고조에 달했던 양측은 이후 휴전협상과 재충돌, 암살과 자살테러 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2003년 4월 미국과 유엔,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중동평화 로드맵’을 마련한 바 있다.

이-팔 사이에 선 이집트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정파)가 격렬히 충돌하면서 이집트 정부가 ‘고통스러운 시험대’에 섰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포격전으로 이 지역 긴장감이 연일 고조되면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이스라엘 독립 이후 아랍국가의 맹주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1979년 평화협정을 기준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가 ‘전쟁의 시기’였다면 후반부는 평화, 엄밀히 말하면 ‘긴장 속의 평화(cold peace)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그 전반부를 책임진 인물은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한 가말 압델 나세르였다. 나세르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3차례의 전쟁을 일으켰다. 나세르의 후임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지만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의 길을 열었다. 그 결과는 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인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기초해 79년 3월26일 미국 백악관에서 체결됐다. 주인공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네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었다. 이로써 이집트는 아랍국가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국가가 됐다. 이집트는 반대급부로 이스라엘로부터 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고 미국으로부터 매년 20억달러의 원조를 받게 됐지만 다른 아랍국가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평화협정의 당사자인 사다트는 81년 10월 6일 암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지난해 민주혁명 초기에 무바라크가 축출 위기에 처했을 때도 미국이 쉽게 무바라크를 포기하지 못하고 민주시위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던 나사르와 사다트 등 전임자들과 달리, 무바라크는 독재자이지만 이스라엘과 평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집트 대통령인 무르시 대통령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이집트 정부와 국민 모두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살상을 막고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주재 이집트 대사를 불러들이고 하마스에 대한 연대의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헤샴 칸딜 총리를 11월 16일 가자지구에 파견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부상한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해 이집트 국경과 병원을 개방했으며 이들을 후송할 수 있는 군용 헬기도 제공했다. 이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맺은 역사적인 평화조약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외교상의 모든 제스처를 다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집트 국민 역시 지난 20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묵인했던 전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는 달리 무르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더욱 단호한 자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르시 대통령으로서는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고 서방의 지원을 계속 얻어내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평화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

오바마 “이스라엘의 자위권 당연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지지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는 단계적 확대 공세가 사망자를 늘리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첫 방문국인 태국을 방문해 잉락 친나왓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자국의 영토로 날아드는 미사일 위협을 제거할 자위권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 자위권을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행동들 확대하지 않고 행사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는 가자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이스라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습 중단을 압박함과 동시에 미국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자위권 지지를 명확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이 거주지를 포함해 자국 영토에 날아오는 수많은 미사일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경 너머에서 국민 머리 위로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용납할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계속하는 한,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받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체결할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의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은 ABC 방송에서 “하마스가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어떤 나라든 자위를 위한 방법을 스스로 결정한다”면서 이스라엘의 반격을 옹호했다. 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계속 공격한다면 중동에서 지지를 잃을 것이라는 점을 아랍권이 보여주는 조취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피터 킹 하원 국토안보위원장도 같은 방송에서 “이스라엘은 자위권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지지 입장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미국의 전폭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의 뒤에는 AIPAC으로 대표되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로비가 있고, 또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1월 18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즉시 휴전하고 이집트가 주도하고 있는 평화협상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반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에게 가자 지구에 대한 폭격을 중지하고 하마스에게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로켓포 공격을 중지하라는 유엔의 요구가 거부되자 이같이 성명을 발표하고 이 이상의 확전은 민간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역설했다. 중국도 11월 1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한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 행동을 계속하는 데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면서 “무력 남용 및 무고한 민간인 사상결과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화 대변인은 이어 “우리는 유관 세력, 특히 이스라엘이 최대한의 절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즉각 전투 행위를 멈추고 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자제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교전 8일 만에 이-팔 휴전 합의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이 휴전합의를 맺었다. 이집트의 무함마드 카멜 아무르 외무장관은 지난 11월 21일(현지시간) 오후 카이로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가 8일째 계속돼온 교전을 멈추기로 합의했다”면서 “휴전 합의는 이날 오후 9시(한국시간 22일 오전 4시)를 기해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휴전 합의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각각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적대행위를 중단한다”고 적혔다. 특히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모든 팔레스타인 분파들이 로켓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양측은 또 “국경을 열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며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의 제한을 삼간다”고 약속하고 휴전 합의가 발효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후에 이를 위한 이행 절차들을 다룬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하마스가 요구해온 가자 지구 봉쇄 해제에 대해 휴전 발효 24시간 후 이행 절차를 다룬다는 원칙적 수준에서 합의돼 휴전 합의가 지켜질지 관심이다. 이와 관련, 하마스 고위 관리인 뭇사 아부 무르쥬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24시간의 냉각기간 후에 새로운 국경선 조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르 장관은 “합의 이행을 감시하고, 합의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한 모든 약속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정의와 평화 지속을 대체할 것은 없다”며 “미국과 이집트는 다음 단계(평화 협상 재개)를 지원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안보를 제공하고 가자 지구 주민들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조금 전 대화를 했다”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집트가 제안한 휴전안에 기회를 주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권고에 동의했다”며 휴전 합의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가자 지구 휴전 합의 소식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휴전 협정 중재안을 받아들인 네타냐후 총리의 결단을 치하하고,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도 휴전 협상을 중재한 이집트 무르시 대통령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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