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은 말을 내려놓는다.
 
“사는 게 재미없어”
그 한마디 말과 그 말에 침묵의 동의.
 

▲ 박목수 전시전(11.14~27) 인사동 갤러리M에서

사는 재미란 거
 
그게 뭘까
한 움큼 손에 쥐어진 바람 같은 거 아닐까.
 
오랜 시간 나무를 만지면서 가장먼저 배운 것이
한 움큼 손에 쥔 바람을 놓는 일 이었다.
 
나는 내 모든 작업에 있어
영졸무교(寧拙 毋巧) 영박무화(寧樸毋華)를 희망으로 삼기 때문에
값비싼 재료, 정밀한 기교, 화사한 마감에 있지 아니하다.
 
동네 예저기 도린곁이나 길섶에나 버려져있을 법한 나무들을
아버지가 딸에게 만들어주는 투박함으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선과 목리들을 순하게 살려 주는데 있다.
 
사실 세상의 어떤 나무든 몹쓸 나무는 없어 보이며
단지 그 나무의 쓰임새를 좋게 찾아주지 못함에 있을 뿐 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 스케치를 먼저하고 작업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지며
하늘이 만들어놓은 그 선과 목리들을 어떻게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세상에 존재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결과물들은
선택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이 조화이며 그 다음이 기교이다.
 
작업의 시작, 그 맨 앞에서
그것을 나에게 맞추려는 무모함 보다는
그것에 나를 맞추어가려는 무방함이
세상을 보다 순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작업을 하고
 
그 작업.
 

▲ 소설가 이외수씨는 “정갈한 감성을 불러들이는 책상, 고귀한 음식을 불러들이는 밥상, 운치 있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찻상, 이 세 가지 보물만 있으면 이 세상 어느 갑부도 부럽지 않다. 특히 그 세 가지 보물에 박 목수의 이름만 붙어 있다면 어떤 보물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1無 2不을 통해 내 말을 하려한다.
 
1無 2不 
 
무 형태. 불균형. 부 조화 
 
형태를 갖추지 아니하며
균형을 이루어서는 아니 되고
매사에 조화로워 완벽함을 이루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 세 가지 단어들이 서로 다른듯하나
내 작업 안에서는 하나로 귀결된다.
 
멈춤이다.

적절한. 
 
여기서의 적절한 멈춤이란
좌절이거나 포기와는 다르다.
 
여기까지만 이라는 의미로
지극히 자의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작업을 함에 있어서도 앞뒤 안 가리고
단 한 점.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는 쉽다.
 
작업을 시작함 보다는
작업에서 손을 떼기가 더 어렵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말이다.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에
무릎 아래 낮은 상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네 집 안을 들여다보면.
거실에 길게 소파가 놓여 있고
작던 크던 탁자가 있으며
저만치 티비가 있다.
마주앉아 서로를 바라 볼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혹, 가족이 모인다해도
티비를 향해 나란히 앉아
어른아이 없이 소파를 중심으로 널브러질 밖에 없으며
마주보지 않고 널브러졌으니 그 오갈 수 있는 대화는
두 줄, 행간을 이루지 못하고
“밥줘” “돈줘” 수준의 단어 조합에 머문다.
 
조건을 바꾸어 본다.
 
소파가 사라지고 탁자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작은 무릎 아래 상하나
무릎이 드러나는 낮은 상 앞에서는
자신이 다 드러나 있다는 느낌 때문에
허리를 곧추세워 바로 앉을 밖에 없다.
 
물론 불편하다
그 불편한 것이 도덕과 윤리라는 것 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도덕과 윤리는 우리네 삶 가운데서 불편한 존재가 되 버렸다.
 
놀다. 와 쉬다. 를 구별치 못하고
사람의 눈과 사람의 눈이 서로를 피하며
문장조차 이루지 못하는 낱말들을 허공에 뿌려대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꿀 보다는 꿀을 빙자한
나무 보다는 나무를 닮은 물질들에 익숙해서
가공하지 않은 진짜 나무가 들어 설 곳이 없어져 버렸다.
 
편한 것이 아름다움은 아니다
 
인간 삶의 질 향상이
널브러짐에 있지 아니 하다면
아빠가 딸에게 만들어 주는 투박함으로
만든 박 목수의 작은 상 하나가
어느 자리에 놓이던
때로는 오롯이
때로는 여럿이 마주앉아
즐기는 차 한 잔의 향에 실려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고 또 오면
 
그 때
 
내 작업은 비로소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