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원대의 매출로 국내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던 웅진그룹이 창립 32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웅진홀딩스는 지난 9월 26일 자회사 극동건설과 함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극동건설은 9월 25일 도래한 150억원의 기업어음(CP)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낸 뒤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1조 839억원의 연대보증을 선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도 연쇄 부도를 우려해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모럴해저드 논란

▲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두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도덕적 해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두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도덕적 해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워크아웃보다 채무 탕감 면에서 유리한 법정관리를 선택해 문어발식 확장 경영에 대한 책임에서 도피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것. 특히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신청 전날인 9월 25일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 등 계열사 두 곳에서 빌린 530억 원을 모두 갚아 모럴 해저드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웅진홀딩스는 당초 이 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려고 이틀 정도 초단기 자금으로 빌리려고 했으나 이를 공시하면 자금난에 대해 시장의 오해를 받을 수 있어 만기를 9월 28일로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웅진홀딩스의 한 관계자는 “본래 짧게 쓰려던 자금이었기 때문에 (9월) 28일 이전에 갚은 것을 조기 상환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채권·채무 관계가 동결되기 때문에 웅진홀딩스가 서둘러 돈을 갚아 계열사가 손해 보는 것을 막은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윤석금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 씨가 계열사인 극동건설 부도로 웅진그룹의 상장 계열사 주가가 큰 폭으로 내리기 전 이틀 동안 보유한 웅진씽크빅 주식 44,000주를 모두 판 것도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신광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가 9월 27일 내부자 거래는 아니라고 설명했으나 결국 김 씨는 주가가 폭락하기 전에 주식을 처분해 법정관리 신청 당일 처분 시와 비교해 5천만 원 가까이 손실을 회피한 셈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법정관리 신청으로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투자자, 채권단, 하도급 업체가 2조5천억 원을 떼일 수도 있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어 상황이 점점 악화하자 웅진그룹 관련주는 줄줄이 급락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소송 가능성도 조금씩 흘러나오는 모양새다.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웅진코웨이와의 매각 작업이 중단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도 법적 대응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의 한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MBK파트너스는 약속한 (9월) 28일에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 납부를 종결하려고 모든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면서 “그러나 웅진홀딩스가 사전 논의 없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야 이를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8월 웅진홀딩스와 인수 계약을 맺으면서 지급한 계약금 590억 원은 담보권을 보유해 법정관리가 개시하더라도 되돌려 받는 데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법정관리 신청과정서 부당행위 점검
금융당국은 모럴해저드 논란이 거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동반 법정관리에 대해 법정관리 신청과정에서의 부당행위의 일제 점검에 나섰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28일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금융기관 부실방지 대책 마련과 기업 회생절차 신청과정에서의 부당행위를 일제히 점검,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권혁세 원장은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계열사 차입금 만기 전 조기 상환, 대주주 특수관계인의 주식처분 등 웅진 계열의 부당행위가 있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금융기관과 일반투자자 등의 피해규모가 최소 2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만큼 금융기관 부실 방지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 각 금융기관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금융회사 부실화 방지를 위해 적절한 대응과 조치를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웅진 계열 관련 하도급업체 등이 자금 애로를 겪지 않게 금융회사에 협조를 요청하고, 아래 사항을 중점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이 협력업체에 금융기관 채무를 일정 기간(1년 등) 상환을 유예하고, 정상적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만기연장 거부, 한도축소, 추가담보 요구 등을 금지했다. 협력업체에는 신속지원(패스트트랙) 프로그램 우선 적용하는 한편 기업회생계획안에 따라 협력사의 회수 가능 예상금액을 산출해 이를 담보로 운영자금 지원 등을 하라고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웅진그룹 외에도 주채무계열(대기업집단) 2곳가량의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감독원은 주채권은행이 대기업집단 전체의 경영상황과 재무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점검해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도록 이끌 방침이다.

채권은행의 대손충당금 4,600억 원 규모
채권은행들이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동반 법정관리 여파로 모두 4600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지난 2분기 은행 전체 당기순이익(2조2000억 원)의 20%를 넘어서는 규모로, 당장 3분기부터 은행 수익성에 큰 타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10월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채권 금융회사들이 웅진그룹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와 충당금 부담액을 재산정한 결과 웅진 채권은행들이 3분기부터 쌓아야 할 충당금이 46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중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충당금 추정액은 8500억 원에 달한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웅진그룹에 대한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액은 3조원이다. 이번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홀딩스(3700억 원)와 극동건설(3300억 원), 극동건설 PF대출(5600억 원), 디폴트(부도) 위기에 처한 웅진폴리실리콘(3200억 원) 등 3개사에 대한 신용공여 규모가 1조6000억 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이들 3개사에 대한 은행권 신용공여액은 8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들은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할 가능성에 따라 웅진 관련 여신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해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충당금은 순익 산정에서 제외되므로 적립액이 커질수록 순익은 줄어든다. 은행들이 부담해야 하는 충당금 규모는 총여신의 절반을 웃도는 4600억 원 수준이다. 극동건설 여신의 경우 무담보채권이 많아 대부분 '추정손실'로 분류해 100%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담보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웅진홀딩스는 총 여신액의 20%가 추정손실, 80%는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주단에 신디케이트론을 연체 중인 웅진폴리실리콘 대출도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해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은행권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웅진홀딩스 주채권은행이자 그룹 익스포저가 가장 큰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의 웅진그룹 신용공여액은 4886억 원으로 4분기에 1000억 원 규모의 충당금을 적립하기로 했다. 극동건설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익스포저 3022억 원)도 당장 3분기에 500~700억 원의 충당금을 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의 웅진 익스포저도 2898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담보채권이 많아 충당금 적립액은 상대적으로 적을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을 비롯해 웅진에 신용공여를 한 금융회사들이 평균적으로 여신액의 절반 가량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며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 후 다른 계열사들의 운명에 따라 충당금 부담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저금리 상황과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웅진 사태가 터져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의 동시 훼손이 불가피해 졌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웅진 그룹 간 ‘웅진코웨이 매각’ 수싸움
10월 11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에 대한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웅진코웨이 매각 문제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앞서 법원은 채권단의 반대에도 기존 신광수 대표이사를 사실상 웅진홀딩스의 단독 관리인으로 지명함에 따라 웅진그룹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채권단은 지난 9월 말 공동 관리인 선임을 주장하면서 웅진코웨이 조기매각을 법원에 건의했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웅진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핵심 기업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것이 대여금 회수 가능성을 높여주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금융시장에서도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 매각만이 웅진그룹을 살리는 대안이라고 판단하는 시각이 많다. 현실적으로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 외에는 웅진그룹이 당장 유동성을 확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 투자자들은 웅진코웨이만 놓고 봐도 경영난 타개가 쉽지 않은 그룹에서 분리해 새 주인을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웅진코웨이는 매각 불발 우려에 따라 주가가 등락하는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이에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은 “웅진그룹이 전체 주식의 30%를 보유한 대주주지만 웅진코웨이는 별개 회사”라며 “매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 그룹과 온도차를 보였다. 웅진코웨이를 1조2천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던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도 법정관리 신청으로 중단된 매각 절차가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법원에 당초 매각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라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는 이미 계약금 600억원을 지불한 상태다. 하지만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 지분 70%를 보유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웅진그룹 측은 웅진코웨이 매각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영실패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웅진코웨이 매각을 재추진하는 데 드러내놓고 반대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내심은 알짜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웅진홀딩스가 지난 9월 26일 법원에 제출한 기업회생절차 신청서에는 MBK파트너스와 체결한 웅진코웨이 매각계약을 해지하고 2014년에 매각을 재추진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신사업으로 추진하던 건설, 태양광 사업에서의 완전 철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룹 내 현금창출력 1위로 ‘수익창출원’ 역할을 해온 웅진코웨이마저 포기할 경우 그룹 내에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만한 사업이 남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채권단은 올해 초 그룹 경영난 타개를 위해 웅진코웨이 매각을 코앞에 두고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자체를 웅진코웨이를 내놓지 않으려는 ‘미리 계획된 꼼수’로 보고 있다.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웅진코웨이 매각에 대해 “지금은 결정권이 없어 채권단과 법원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신 대표가 단독 관리인으로 선임돼 경영권을 유지한 이상 이후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웅진코웨이에 강한 애착을 가진 윤 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웅진코웨이의 매각을 둘러싼 채권단과 웅진그룹 간의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