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그동안 발목을 잡아온 역사관 논란에서 한결 가벼워졌다. 박 후보는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회견을 열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둘러싼 반응은 엇갈리지만, 적어도 박 후보의 대통합 행보를 재개할 명분만큼은 확보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달라진 모습’을 어필하는데 집중하는 동시에 캠프 측도 전열을 재정비하고 국민대통합 행보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방침이다.

국민 요구 반영해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 열어
과거사 문제는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최대 걸림돌로 평가돼 왔던 만큼 여론의 반응이 판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과거사로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 9월 10일 ‘인혁당 두개의 판결’ 발언이 나온 이후 하향곡선을 그렸고 두 야당 후보에게 역전까지 허용했다. KBS-미디어 리서치 9월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의 양자대결에선 박 후보(41.2%)가 안 후보(49.9%)에게 오차범위를 벗어나 8.7%포인트 뒤졌다. 이에 캠프 내 위기의식이 퍼졌다. 추석 전까지는 반전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에 측근들의 건의를 박 후보가 수용함으로써 과거사 사과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번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발언에 민주당 측도 “기존 입장에서 진전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기자회견이라고 평가한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한편 박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최근 당 소속 의원과 캠프 관계자 등 주변 인사들에게 긴장감을 갖고 일해 줄 것을 강하게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의 핵심 측근은 “후보는 캠프 뿐 아니라 당 소속 의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최근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들이 발생한 건 사실이고 그렇게 해서는 본선 승리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나 당협위원장, 당원들 모두 12월 대선 승리를 위해 좀 더 열심히 해줘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안살아나고 있다는데 후보가 아쉬움을 갖고 있다”며 당부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빠른 인사 교체 단행도 박 후보의 이러한 의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호 공보단장이 임명 한 달도 안돼 전격 교체된 데 이어 김재원 의원이 ‘취중 막말 논란’으로 대변인에 내정된 지 하루 만에 물러났다. 한 공보위원은 “박 후보가 최근 인사를 통해 문제가 될 사안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있는데 주목해야 한다”며 “후보가 주변 인사들에게 국민 앞에 좀 더 겸손하고 긴장감을 갖기를 요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통합 행보 위한 진정성 있는 방법론 고심
그동안 당 행사나 민생 행보에 주력해 온 박 후보는 지난 9월 25일 강원도 양구군의 국군 유해 발굴현장을 방문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국군의 날(10월1일)을 맞아 방문한 그는 국군 장병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는 이어 21사단 소속 여군 장교, 여군 부사관 등 20여 명과 오찬을 갖고, 여군 관계자들의 고충 등을 경청했다. 박 후보가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PK(부산 경남)을 찾은 것도 남다른 의지를 드러낸 행보로 보인다. 최근 지지율이 하락세인 박 후보에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박근혜 후보가 오전에 과거사 기자회견을 한 뒤,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간 것을 놓고 PK의 중요성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부산에 간 박 후보가 최근 세계적으로 열풍을 몰고 있는 싸이의 말춤을 추는 모습도 화젯거리였다. 일부에서는 ‘박 후보가 노력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후보의 측근들은 “후보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면모를 많이 보여주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사진보고 깜짝 놀랐다. 카메라 앞에서 파이팅도 잘 외치지 않던 분인데 많이 노력하신 것 같다”고 반응했다. 새누리당과 캠프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그동안 잡음만 냈던 공보라인을 강화, 박 후보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공보단장은 취재진과의 스킨십 강화를 위해 매일 브리핑을 갖겠다고 밝히는 등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과거사 논란의 짐을 일부 덜어낸 캠프 측은 추후 박 후보의 대통합 행보에만 매진할 방침이다. 캠프의 한 참모는 “어떻게 박정희 시대의 상처를 보듬을지, 모든 피해 입으신 분들을 아울러서 통합할지 진정성 있는 방법론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