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옛 노래의 멜로디가 그 시대의 감성이라면 노랫말은 그 시대의 이성이다.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가 발표한 ‘찔레꽃‘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를 담은 멜로디에 당시 상황, 즉 고향을 잃고 떠도는 국민들의 삶과 질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이후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애창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삶의 지도가 크게 바뀐 국민들에 의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노래로 애창되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수십년 뒤인 지난 2005년 KBS-1TV ‘가요무대’의 20주년 특집방송. 이 가요무대의 20년 간 총 1만5천 여 곡이 방송전파를 탔는데 그중 가장 많이 불리어진 노래로 ‘찔레꽃’이 선정되었다. 20년 간 방송회수는 총 108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노래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라는 또 다른 증명이기도 하다. 그 ‘찔레꽃’의 주인공, 가수 백난아. 그의 삶과 노래를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재조명한다. 그 두 번 째.

백난아 삶과 노래의 재조명 & 재평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당시 연예인들도 모두 ‘군번 없는 용사’로 군예대로 편성되어 전쟁에 동원되는데 백난아 선생 역시  군예대에 소속되며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
부산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는 동시에 작곡가 한복남 선생이 부산에서 설립했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을 취입했고 피난민들을 위한 공연 또한 활발히 펼쳤다. 또한 부산 남포동에서 '뉴파레스'라는 다방을 경영하기도 했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생활력을 발휘했다.

어떠한 고난도 헤쳐 나갈 만큼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적극적인 활동은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휴전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이후 57년 직접 ‘부-케악극단’ 조직한다. 아울러 이 ‘부-케악극단’은 본인의 가수 생활 1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타이틀로 쇼 활동을 시작했던 단체다. 당시 창단 광고를 보자.

아래는 부우케악극단 창단 광고에 적혀진 문안이다.

부우케 가극단 탄생!!
과거 국내 명가극단의 운영과 무대예술 면의 진퇴를 검토할 때 주요한 실패 및 발전 없는 원인은 운영의 실패라고 봅니다. 소질과 역량이 풍부한 우리민족의 예술성을 활발하고 건전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보겠다는 각오와 단합 아래 성실하며 상연물의 진취성을 욕구하여 민족문화 향상을 위해 창립하는 바입니다.

제1회 작품
유호…작 이진순…연출,
이재호 ? 손석우…작곡
악극 ‘백설의 비화’
본사 서울시 을지로2가 189
부우케 악극단 대표 백난아

광고 문안에서 보듯 백난아가 직접 창단한 부-케악극단의 창립 공연작품이 비로 유호 작 ‘백설의 비화’다. 백난아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상대역인 박상수역은 가수 현인이 맡았다. ‘가요생활 15주년기념공연’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공연의 대본이다.
이 구성에서 보듯이 백난아는 자신의 연예생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고 또 열정이 남달랐던 인물이었다. 한 시대를 앞서간, 리더십까지 충분히 갖춘 여장부, ‘시대가 낳은 여걸’이기도 했다.
부-케악극단은 이어 작곡가 겸 연주인 손목인 선생의 지휘로 ‘모던 춘향전’을 무대에 올리면서 인기가수 남인수, 진방남, 나애심, 윤복희씨 등과 함께 전국순회공연에 나서는데 이 부-케악극단은 이로부터 약 15년간 지속되었다고 백난아는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흥행쇼단의 운영이라는 것은 여성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뒤따랐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되지만 그럼에도 백난아가 당시 최고가수들과 함께 부-케악극단 공연을 활발히 이끌었다는 것은 매우 높게 평가할 만하다. 또한 당시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용기를 북돋아준 본보기 혹은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으리라.

이 부-케악극단 시절인 60년 7월, 작곡가 이재호 선생 폐결핵으로 타계한다.
‘가요계의 슈베르트’라 불리던 천재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타계한 직후 그의 방에서 발견된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작곡가 이재호 선생의 잠자리, 머리맡 벽면에 붙어 있었던 이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얼마나 애제자, 백난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많은 공연활동과 더불어 한국의 국악인들을 초청, 우리의 판소리를 보급하기도 했다.
이후 80년대 중반 귀국, 서울 충무로에 수도예술학원을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는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는데 이 때 작곡가 형석기, 나화랑 그리고 영화배우 이민 선생 등을 지도교수로 영입, 연예활동 전반에 걸친 종합예술학원을 설립해 후학 지도, 양성에 뜻을 펼쳤다.
‘1인다(多)역’으로 가요계에 헌신했던 선구자 겸 리더 백난아 선생은 1988년, 손석우 작사, 작곡의 노래 ‘미련’, 서영은 작곡의 ‘이별의 술잔’ 취입을 마지막으로 92년, 65세라는 한창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에 타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친근한 목소리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남긴 아름다운 노래들, 그리고 연예활동 전반에 걸친 왕성한 활동은 좀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더욱 크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심포지엄을 준비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선생이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대를 뛰어넘어 펼쳐 보인 활동은 척박한 우리 연예계에 귀감이 됨은 물론 후배들에 의해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더구나 지금처럼 여건이 좋지 않았던 매우 어려운 시대에 펼쳐보였던 백난아 선생의 뜻과 정신이 기려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타계 3년 전, 발행된 ‘백난아 히트애창곡집(현대악보출판사)’에서 선생이 직접 쓴 발간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그리운 세월입니다.
풋 복숭아 같이 보송보송하던 열다섯 살에 태평레코드사 전국 가요콩쿠르에 당선되어 전속가수가 된 뒤로 울고 웃던 무대생활이 어느덧 47년째라니...
생각하면 유리알 같이 눈물이 돌아 번져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청춘이었습니다.
어느 간이역에 피어난 키 큰 해바라기같이 유달리 외로움을 잘 타던 내가, 세상 어려움과 싸우면서 헤쳐 온 나날들이 지나간 꿈결처럼 그립기만 합니다.
‘망향초 사랑’, ‘아리랑 낭랑’, ‘갈매기 쌍쌍’, ‘오동동극단’, 찔레꽃‘, ’직녀성‘, ’무명초 항구‘, 황하다방’, 도라지 낭랑‘, ’아버님 전에‘, 아주까리 선창’, ‘간도선’, ‘인생극장’, ‘금박댕기’, ‘낭랑 십팔 세’...
한 구절 한 구절 외워보는 노래마다 잃어버린 사연들이, 그리운 얼굴들이 이슬처럼 묻어납니다. 미운 사람, 고운 사람이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무작정 그립고 무작정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김교성 성생님, 김영일 선생님, 김용환 선생님, 박시춘 선생님, 손목인 선생님, 이재호 선생님, 이용준 선생님, 반야월 선생님, 유호 선생님...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주시고 사랑해주시던 인정 많은 선생님들을 잠시도 잊지 못합니다.
찬바람 불던 식민 치하의 무대에서, 만세소리 드높던 해방의 무대에서, 포연이 자욱한 6.25의 무대에서 뜨겁게, 뜨겁게 성원해 주시던 팬들의 박수소리,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사랑이 많고 아직도 열정이 많습니다. 아직도 그리움이 많고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팬들이 있고 무대가 있는 한,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노래할 것입니다.
-1988년 12월, 백난아

이 글을 대하다보니 그가 직접 설립해 운영했던 부우케 파티공연에서 열연한 ‘백설 비화’ 줄거리가 떠올랐다. 그 속에는 그의 꿈이 담겨 있다.
아래 내용은  ‘백설 비화’ 제2부, ‘부우케 파-티’ 시놉시스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줄거리…난아를 그리워하는 박상수, 친구 김동식과 함께 공원을 거닌다. 하숙으로 돌아가자는 동식을 뿌리치고 나가려다가 난아을 만난다. 여기서 서로 그리워하던 난아와 상수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노래를 부른다.

얼마나 그리웠나 나의 사랑아 / 얼마나 그리웠나 나의 사랑아 / 꿈엔들 잊으련가 고향의 산천 / 꿈엔들 잊으련가 어린 이 시절 / 산천은 변해도 우리들만은 초목은 변해도/ 우리들만은 변치 않는 순정을 맹세하리다.

◇ 백난아의 노래 ‘갈매기 쌍쌍’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① 아- 동해울산 저 바다 외고동 울고 / 반물치마 내 가슴엔 쌍고동 운다 / 울어라 외고동아 울어라 쌍고동아 / 너도 나도 응응~ 같이 울자.

② 아- 진주논개 돌비석 눈보라 불고 / 청사초롱 내 가슴엔 꽃보라 운다 / 불어라 눈보라야 불어라 눈보라야 / 너도 나도 응응~ 같이 불자.

상수를 기다리는 난아에게 동식이 난아에게서 떠나야 하는 상수의 사정을 전한다.
난아는 운다. 동식은 영자에게 오해 없도록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 백난아의 노래 ‘망향초 사랑’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하 중략)

◇ 백난아의 노래 ‘난아의 노래’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칼피스 향기 속에 좋던 레-지 / 내뿜는 담배연기 밤은 깊어 가는데 / 가슴에 스며든다 빨간 꽃송이

② 조각달 걸려 있는 남대문 거리에 / 풀라탄 그늘 속을 한없이 걸으니 / 첫사랑 속삭이던 안타까운 그날 밤 / 저 달은 흘겨본다. 그리운 그대여.

◇ 동식과 영자 상수를 끌고 들어온다. 그들은 난아를 놀려주려고 상수를 감춰놓고 이번 배편에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숨차게 뛰어온 난아, 이 말에 몹시 실망한다.

(합창) 불러라 노래 가희의 노래 / 그의 이름도 아름다워라 백난아 /
그대를 위하여 순희를 위하여 / 소리를 합쳐서 노래를 불러라.

꽃잎이 날리고 테-푸가 날리고 / 노래 실은 백난아야 행복하여라.(막)

이상이 ‘백설 비화’의 제2부 공연의 시놉시스다. 이 속에 등장하는 백난아의 모습에서 말 그대로 음악에 대한 열정, 무대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백난아가요제’ 제주 한림에서 3회 째 개최,
학술심포지엄과 기록사진전 통해 미공개 자료 60점 공개
‘찔레꽃’, ‘낭랑18세’의 가수 백난아(1927~1992)를 기리는 제1회 백난아가요제가 제주시와 백난아기념사업회(회장 오경욱) 주최로 지난 2007년 7월 26일을 시작으로 제주 한림에 있는 협재해수욕장 인근에서 개최되었다. 이로부터 지난해까지 3회 대회가 개최되었고 필자 역시 심사위원으로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1회 대회 때는 백난아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학술심포지엄과 백난아 기록전시회도 함께 맡았다. 이 행사를 통해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자료 60점도 함께 공개되었다. 이 자료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40년대부터의 친필악보와 발표 당시 음반 전단지와 포스터, 그리고 당시 사진들로 이 자료들은 그동안 상당수 왜곡된 채 전해져온 우리 가요의 제 모습을 되찾고 가요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백난아가 활동을 시작한 건 1940년 11월. 불과 13살 때 ‘오동동극단’과 ‘갈매기쌍쌍’을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주위에서 변성기 이전 목소리라는 우려를 했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우리나라 최연소가수로 당시 태평레코드 전속가수가 된 백난아의 발표곡 대부분이 광복 이전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노래들로 이후 작사가 박영호 등이 월북했던 탓에 발표곡 중 상당수가 월북작가의 곡이라 해서 한동안 금지되었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이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인 채 사장되어 묻혀 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이후 가사 일부와 제목 등을 다른 인물에게 개작시켜 작자표기를 달리함으로써 월북작가의 곡이라는 화살을 교묘히 피해갔다. 사실상 이러한 노래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있기까지 가사가 변형된 채, 또 작가가 바뀐 채 불리어져 온 것. 광복 이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이 노래들은 또한 61년, 5.16 이후 또 한 번의 철퇴를 맞는데 이때는 가요를 ‘퇴폐의 온상’, 혹은 ‘사회악’으로까지 치부되며 노래들을 2절까지 밖에 부르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 노래의 가사들이 일부 훼손된 채 불리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5년 KBS ‘가요무대’ 9백회 특집방송에서 가장 많이 불린 곡으로 선정될 만큼 국민적 애창곡인 백난아의 대표곡 ‘찔레꽃’의 경우 월북작가의 곡이 아님에도 한 때 금지곡으로 묶여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금지 사유는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동무’라는 단어 때문. 1절 끝 부분의 ‘못 잊을 동무야’, 2절에서의 가사 ‘노래하던 세 동무’에서의 ‘동무’가 이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해서 방송 불가판정을 내리는 바람에 별 수 없이 노래가사를 ‘못잊을 사람아’, ‘노래하던 동창생’ 등으로 바꿔 불러야 했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도 이제 모두 지난 과거. 이제금 월북작가의 곡들까지 모두 해금되었다. 아울러 원 노래들의 제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 가요를 제대로 기록하고 재조명하는데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발표 당시 그대로의 친필 악보나 음반 가사지 등의 발굴은 우리 가요의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공개되는 자료들은 지난 92년, 백난아 타계 이후 그의 셋째언니 오귀숙 여사(2008년 미국에서 타계)가 보관해 왔던 것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필자에게 건네준 자료들과 그동안 개인적으로 틈틈이 발품 팔아 소장해온 자료들이다.
친근한 목소리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남긴 아름다운 노래들, ‘찔레꽃’ ‘낭랑18세’ ‘아리랑낭랑’ ‘황하다방’ ‘망향초사랑’ ‘직녀성’ 등과 더불어 ‘1인다역(一人多役)’으로 가요계에 헌신했던 백난아는 광복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따 백난아양재학원을 개원, 운영했고 직접 ‘부-케악극단을 창단해 이후 15년간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한 80년대에는 수도예술학원을 설립해 후학 지도, 양성에 뜻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어려운 시대에 펼쳐 보인 백난아의 시대를 뛰어넘는 활동과 정신이 이제 백난아가요제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