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펙트 스톰’이 다가온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퍼펙트 스톰은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해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일컫는 기상용어로, 2000년 개봉한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동명 영화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기상용어였던 퍼펙트 스톰은 최근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달러화 가치 하락, 유가 및 국제곡물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등이 일시에 발생해 금융·경제 위기현상을 나타내는 경제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퍼펙트 스톰은 몇 가지 경제적 악재가 겹치면서 더 큰 경제적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위기에 봉착한 세계 각국

▲ 국내외 악재가 맞물려 우리 경제도 퍼펙트 스톰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국)에서 신용등급 강등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경제의 양대축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6월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A3’에서 ‘Baa3’로 세 단계 강등했다. 무디스는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정크등급(투자부적격 등급)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디스는 또 키프로스의 신용등급도 ‘Ba1’에서 ‘Ba3’로 강등했다. 유로존 국가들의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에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뜻하는 그렉시트(Grexit)를 비롯해 위기와 관련된 신조어도 출몰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스페인과 혼란을 뜻하는 패닉(panic)을 합성한 스패닉(spanic)에 이어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를 나타내는 ‘퀴탤리(quitaly)’, 핀란드의 이탈을 뜻하는 ‘픽시트(fixit)’라는 단어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마켓워치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경제를 갖춘 핀란드마저 위기를 피하기 위해 독자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마분석했다. 그리스에 대해서는 3차 구제금융설까지 나오고 있다.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정책당국자들의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유로존 안정패키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G2를 구성하는 미국과 중국 경제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2% 줄어 2개월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월가는 2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끌어 내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4%에서 1.9%로 낮췄다. RDQ이코노믹스는 2.75%에서 2.25%로, CIBC월드마켓 역시 2.3%에서 2.0%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중국에서는 경착륙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경제교역센터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를 밑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장률이 8% 밑으로 떨어지면 경착륙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루비니 교수 “퍼펙트 스톰 시나리오는 이미 진행중”
대표적인 시장비관론자인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는 2013년에 미국·중국·유럽·일본 등에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이 극대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5월 스카이브리지 얼터너티브 콘퍼런스(SALT) 개막식에 참석해 미국의 경제 성장 정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붕괴로 인한 유럽의 부채 위기, 이란과의 군사적 갈등 요인,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 둔화를 거론하며 “이 모든 악재가 결합한다면 세계 경제는 재난을 맞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퍼펙트 스톰 시나리오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마저 경제 성장세가 둔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루비니 교수가 올해 초 예상했던 최악의 경제 시나리오가 보다 현실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본 것.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합해지면서 엄청난 재앙으로 돌변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제의 4가지 위험 요인들이 한꺼번에 합해졌을 경우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7월 발표된 중국의 6월 소비자 물가(CPI)는 당초 예상보다 낮은 수준으로, 중국의 경기 둔화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더욱이 최근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 역시 부진함에 따라 미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이미 유럽의 위기는 현실화됐고, 미국 경제 회복 역시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 역시 부진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각각으로도 파괴력 있는 이 사안들이 한데 합해져 퍼펙트 스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현재 상황과 관련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세계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냈던 2008년과 달리, 현재에는 꺼내놓을 카드가 바닥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중앙은행(BOE),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등이 적극적 통화정책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증시는 여전히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루비니 교수는 “경제 상황 자체가 부진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격의 오름세가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 ‘R의 공포’에 직면
4년째 계속되는 유로존의 위기는 세계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유로존의 2/4분기 성장률은 1/4분기 0%에서 마이너스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금까지 유로존 경기를 가까스로 떠받쳐온 독일도 힘에 부치는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 하반기에는 독일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유럽의 몰락은 유럽과 교역관계가 깊은 신흥국 경제의 고공비행을 가로막았다. 중국의 경우 3년 만에 7%대 성장으로 하락했고 올 1~3월 인도의 성장률은 9년 만에 최저인 5.3%까지 떨어졌다. 브라질의 올해 성장률은 민간 예측 기준으로 2%에도 못 미친다. 일각에서는 연말 이후 경기회복을 기대하고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순조로운 성장을 이어가던 이들 브릭스(BRICs)의 고성장 신화가 이대로 막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 경기도 심상치 않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미국 경제가 침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암울한 메시지를 내놓아 시장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미국이 이미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속도가 붙은 유럽의 몰락과 신흥국 경제의 위기, 특히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침체와 중국 경착륙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경제는 믿고 의지할 구원투수 하나 없이 거대한 ‘R의 공포’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입한 유럽을 제외하면 현재 상태에서 미국, 중국·인도 등 각국 경제의 앞날을 침체나 경착륙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특히 중국·인도 정부의 경기부양능력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 대해서도 회복을 예상케 하는 요인들은 분명 존재한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전 세계 이코노미스트들에 대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세계 경제가 올해 유럽 침체의 여파로 힘든 시기를 보내겠지만 내년에는 중국 경기가 회복되는 등 상황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문제는 각국 정부가 뚜렷한 방향성과 리더십을 갖고 경제를 끌고 나가기 어려운 정치적ㆍ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총력을 기울여 침체에 대비할 수도, 낙관적인 청사진으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도 없는 현 상황에서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단결된 부양 의지가 아니라 극심한 불확실성이다. 때문에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경우 정치권의 대립으로 ‘재정절벽(fiscal cliff)’ 우려의 현실화 가능성 여부가 최대 변수다. 민주·공화당이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내년 1월부터 미국 경제는 재정지출의 대규모 삭감과 세금 인상으로 그야말로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지도부 교체가 이뤄지는 중국 역시 계파 간 다툼에 따른 잡음에 더해 당국의 정책방향도 낙관할 수 없다. 부동산 경기 과열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은 가운데 가시화된 경기 경착륙 시그널에 대해 당국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 인도 역시 급강하하는 경기의 배경에 뿌리 깊은 부패와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인도 무역상공단체인 IMC의 아닐 루이아 국제무역위원회 회장은 “인도 경제가 회복되려면 2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며 “특히 관리의 부패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브릭스 국가들은 올 하반기가 본격적인 침체와 회복의 기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변수는 유럽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이탈리아의 구제금융이 현실이 될 경우 거대한 충격파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는 짙은 먹구름이 가랑비를 뿌리는 데 그칠지, 거대한 폭풍우를 몰고 올지는 앞으로 수개월간 각국의 행보에 달려 있다.

한국 ‘L자형’ 장기불황 시작되나
우리나라 역시 퍼펙트 스톰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악재를 어떻게든 버텨오던 우리 경제는 올해 2분기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허약한 내수는 물론 믿었던 수출마저 가라앉으며 올해 3% 성장도 어려워졌다. 일각에서는 ‘L자형’ 장기 불황의 서막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7월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에 따르면 2분기 국내 GDP 성장률은 1분기 대비 0.4%에 그쳤다. 이는 작년 4분기 충격(전기비 0.3% 성장)에서 깜짝 회복세를 보였던 1분기(0.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1년 전과 비교한 성장률 역시 2.4%에 그쳐 2009년 3분기(1.0%) 이후 33개월 만에 가장 낮아진 것이다. 내용상으로도 소비와 투자, 수출 전 분야의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1분기 대비 민간소비(0.5%)만 소폭 플러스였을 뿐, 설비투자(-6.4%)와 수출(-0.6%)이 동반 하락했다.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에 따른 성장 기여도 역시 1분기 0.5%포인트에서 2분기 0%로 흐지부지됐다. 상반기 평균 성장률(전년동기 대비)은 불과 2.6%. 하반기 들어 하방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어 올해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3% 성장을 하려면 하반기 성장률이 3.3% 이상 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국내외 악재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자칫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될 수도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대외악재가 국내 소비·투자 심리까지 위축시키는 ‘자기실현적 기대’가 우려된다”며 “3%대 성장 달성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최근 “유럽·미국·중국·신흥국의 불경기와 이란사태 등이 합쳐져 내년 세계경제에 퍼펙트 스톰을 가져올 것”이라고 다시 강조한 점도 우리 경제엔 적신호다. 정부와 한은은 아직 하반기 경제가 상반기보다 나아질 것(상저하고)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눈치지만,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상저하저’ 흐름은 물론 2분기를 기점으로 L자형의 장기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경기 하락세는 잠시 나빠졌다가도 ‘V자’로 반등하곤 했던 예전과 달리 바닥이 깊고 넓어지는 모양새”라며 “이제 우리 경제의 성장여력이 4~5%대에서 3%까지 구조적으로 낮아졌음을 받아들이고 정책을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