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전통문화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내려온 국가적 자산이자 현대문화의 창조적 원천임을 알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많은 전통공예품 장인들은 열악한 환경과 전승의 어려움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실정이다.

윤담 기자 hyd@

전통지화(傳統紙花)는 전승공예의 한 분야로 불교의례, 무속의례, 생활의례 속에서 우리문화를 대변하는 꽃이지만 현재 문화재적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다. 때문에 전승문화로서 명칭이나 종목이 지정되지 않아 전승하려는 후계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다만 영산재나 수륙재의 생전예수재 장엄으로만 소속돼 존재하고 있다.

한국 전통지화의 명맥을 계승하다

▲ 석용스님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장엄(전통지화) 이수자인 석용스님은 묵묵히 전통지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지화는 전통공예의 종이꽃이자 불가에서는 만드는 과정에 기도가 담긴 수행의 꽃이다. 지화(紙花)는 생명력이 짧은 생화에 비해 오랜 기간 장식을 할 수 있으며, 자연의 꽃이 없는 계절에 꽃의 수요에 대처하고, 크기와 색깔이 다양하다.

그 종류도 모란, 작약, 국화, 연화, 칠경화(우담바라화) 등 다양한 지화는 불교의식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장엄하는 꽃으로 사용되는 한편, 혼례, 상례, 궁궐 대소사에 쓰였으며, 관혼상제와 같은 우리의 전통의례와 삶 속에 늘 함께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과정이 고되고 지루해 전수 받으려 하는 이들이 거의 없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불교 전통지화의 맥은 현 천태종 총무원장인 춘광스님이 1971년 인간문화재 범패 전승자인 故 권수근 스님으로부터 지화 제작 방법을 사사하며 시작되었다. 1982년 출가 이후 춘광스님에게 지화 제작 방법을 사사받은 석용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의 장엄 분야 보유자인 태고종 장벽응·정지광 스님에게 지화 제작법을 사사 하였으며 현재 천태종 스님들과 재가자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석용스님은 “불교의식에는 많은 꽃이 사용되는데 장엄을 위해 꽃을 꺾는 것도 살생이라 불가에서는 여겼기에 꽃 한 송이에 깃들어 있는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화 대신 지화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면서 “지화(紙花)는 의식 때 사용하고 다 태워버리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료가 남지 않기에 옛 문헌이나 감로탱화(甘露幀畵)에 남아있는 것을 토대(土臺)로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다
전통한지로 만들어지는 지화는 지금은 재료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은 귀한 예술품이지만 과거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공예품이다. 이러한 지화 한 송이를 만들기 위해 석용스님이 들이는 노력과 정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지화를 피우는 것은 수행의 시간”이라는 석용스님의 말에는 이것이 잘 드러나 있다. 한지에 천연 염색을 입히고 숙성 과정을 거치며, 일일이 주름을 잡고, 꽃 모양을 재단하고, 대나무살을 준비해 꽃을 만드는 과정은 6개월 정도가 소요되기에 극도의 자기인내를 거쳐야 한 송이의 지화가 피어난다. 석용스님은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일이 불가의 수행이라 생각하며 인내한다”면서 “전통 한지에 천연염색의 색을 입혀 말린 뒤 손으로 꽃잎 하나하나를 접는 인내를 이겨내야만 비로소 피울 수 있는 값진 꽃이다. 천연염색으로는 홍화, 쪽, 치자, 소목, 지초, 머루 등의 여러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자연의 색을 만들어서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화가 완성되기까지 옛 문헌과 사료에 기록된 전통기법을 재현해 내고자 작업준비, 재료 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최소 4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량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지화는 철저한 고증으로 원형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용스님은 “전통지화는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성이 높지만 무엇보다 사명감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라면서 “영산재행사 장엄의 경우 5일 행사를 위하여 1년 반을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투철한 종교관과 예술적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석용스님은 이러한 지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천년을 이어갈 수 있는 지화의 아름다움이 후대에 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우리 전통지화가 세계 속에 가치 있는 예술로 승화(昇華)될 수 있도록 석용스님은 매년 전시회와 강좌를 열어 전통지화 계승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01년부터 덴마크에 문화행사를 진행했던 그는 2005년 고광사 주지를 하면서 해외 입양인들의 한국적 뿌리를 알게 하고자 노력하면서 전통지화를 알리는 데에도 앞장서왔다.

한미문화예술재단USA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2014년에는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지화전시회를 개최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제작 시연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매릴랜드 찰스카운티에서 열린 제24회 찰스카운티 문화축전에 참가해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전통지화를 선보이고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전통지화 제작 시연과 지화 제작 체험시간을 가지면서 현지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지원센터 상반기 12주, 하반기 12주간 강의와 부산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학부학생들에게 하반기 12주간 강의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진행되기도 했다.  석용스님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중요하다”면서 “전통지화 장인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종이 꽃 문화와 불교의 전통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듭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