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스 투 줄리엣>의 시에나,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로마 위드 러브>의 로마까지. 이국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는 그 어떤 사랑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포장돼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게다가 여행의 묘미까지 선사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렇듯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한 한국 영화가 나왔다. 90% 이상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된 박흥식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두 번째 스물>이 그 주인공이다.

신세영 기자 syshin@

올 가을 단 하나의 고품격 로맨스가 관객들을 찾아온다. 10월 17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진행된 영화 <두 번째 스물> 기자간담회에는 박흥식 감독과 주연배우 김승우, 이태란이 참석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1년여 만에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흥식 감독은 “이 가을, 이렇게 관객분들에게 영화를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두 번째 스물>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공감에 대한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40대의 리턴 로맨스를 연기한 김승우는 “나이에 맞는 감성으로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첫 스크린 로맨스 주연을 맡은 이태란은 “진짜 ‘두 번째 스물’에 로맨스 주연을 맡아 기뻤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 관객들께서 로맨스의 감성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고 개봉 소감을 밝혔다. <두 번째 스물>은 20대 뜨거운 사랑이었던 두 남녀가 40대에 운명적으로 재회한 뒤 일주일간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사랑은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40대 남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과 질문을 선사하는 영화로, 11월 3일 개봉한다.

이탈리아에서 예술과 사랑, 삶의 삼중주에 흠뻑
피자, 파스타 등 음식부터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고대 로마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최고급 명품 브랜드까지.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의 뇌리 속에 낭만적으로 각인된 것들이 있다. 바로 영화 속 사랑하고 싶은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들이다. 가보았든, 가보지 못했든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탈리아의 도시는 남녀노소 불문 마음에 품어 두는 여행지 중 하나다. 영화 <두 번째 스물>은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국내에 알려진 이탈리아 북부의 대도시 토리노부터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과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무대가 된 전원도시 만토바까지, 이탈리아 북부 잘 알려지지 않은 곳곳의 숨은 도시들의 매력적인 풍광을 유려하면서도 촘촘하게 담아냈다. 13년 만에 재회한 민구(김승우)와 민하(이태란)가 서로에게 다시 첫인사를 건넨 토리노, 기차를 타고 가던 중 풍경에 이끌려 내린 지중해 남쪽 리구리아 바닷가에 위치한 제노바와 베르나차, 단테의 생가와 아르노 강변이 있는 피렌체. 민하가 브루넬로 와인을 구입한 몬탈치노. 민구의 친구 부부를 만난 시에나. 민구와 민하의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 도시인 만토바까지. 운명처럼 다시 만난 민구와 민하의 로맨틱한 여정을 따르다 보면 관객들은 마치 그들과 함께 일주일간 이탈리아를 여행한 듯한 감상에 젖을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스물>을 통해 이탈리아 곳곳의 작은 도시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폭행, 살인, 도피, 투옥 등 지극히 속된 삶을 살았으면서도 끊임없이 종교적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작품 활동을 펼친 이중성의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 <두 번째 스물>의 민구와 민하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좇아 이탈리아 곳곳의 미술관을 여행하며 그의 작품을 매개로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두 번째 스물’은 마흔 살을 뜻하는 말. 흔히 마흔을 표현하는 ‘불혹’이라는 단어 대신 ‘두 번째 스물’이라는 말을 곱씹는 주인공들은 삶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 40대인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며 카라바조의 그림을 바라보고 읽어낸다. 그리고 선명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예술과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사랑, 앞으로도 지속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박흥식 감독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영화학과 석사과정 수료 및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 영화제작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9년 단편영화 <하루>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주목받았다. 2005년<역전의 명수>가 장편 데뷔작이다.

Q. <두 번째 스물>은 40대 주인공들의 로맨스다. 중년의 로맨스를 그린 이유가 있다면?
-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서 4, 50대는 되어야 죽음을 생각하고 지난 삶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사랑이 진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사랑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었다는 것도, 일본의 <실낙원>처럼 외국의 경우 중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흥행한 경우가 많은 것도 용기를 내게 한 것 같다.

Q. 영화 속 배경을 이탈리아로 설정한 이유는?
- 단편 영화 <하루>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탈리아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토리노국제영화제 관계자로부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아서 처음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되었다.

Q. 크랭크인 전 이탈리아 답사 과정과 실제 촬영은 어땠는지?
- 2011년 4월부터 한 달 정도 혼자 답사여행을 했다. 혹시 몰라 시칠리아며 베네치아 위쪽 우디네 등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이탈리아는 예전에 영화제와 여행으로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2013년 11월 공동제작사를 구하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면서 한 차례 더 여행했다. 2014년 12월 공동제작사의 계약을 위해 피디 3명과 로마를 방문했다가 주요 촬영 예정지를 확정하였다. 2015년 2월 10일 크랭크인하여 국내 장면 7회차 분량을 먼저 다 찍었다. 인천공항에 가는 장면과 민구와 민하가 3월에 이태리를 여행하고 9개월 후인 12월에 다시 만나는 엔딩 장면을 먼저 다 찍은 것이다. 메인 스태프는 2015년 3월 일주일 정도 먼저 이탈리아에 가서 촬영예정지를 미리 돌았다. 현지 스태프가 차로 우리를 태우고 다녔는데 답사 막바지에 밀라노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에 돌아와 보니 도둑이 차의 유리를 깨고 문을 열어 우리의 캐리어를 10개 정도 털어간 상태였다. 조감독과 나는 여권만 빼고 모든 것을 잃었다. 당장 속옷부터 모든 것을 사야했다. TV드라마는 이런 일이 생길 경우 대박이 난다고 각색에도 참여한 방송작가가 놀라며 좋아한 적이 있다. 우리 영화의 경우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좋겠다. 이때 스틸 카메라가 없어져서 스틸도 찍지 못했다. 2015년 3월 9일 이탈리아 촬영을 시작했다. 4주 동안 23회차에 걸쳐 촬영이 끝났다. 예비로 잡은 회차는 쓰지 않았다. 강행군임에도 열심히 임해준 배우와 스태프들 덕분이었다.  

Q. 배우 김승우, 이태란을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김승우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민구 역에 딱 맞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이태란 배우는 당차고 지적인 느낌을 가진 배우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태란 배우 역시 민하 역에 적합한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부분을 실제로는 제일 처음 촬영했다. 배우들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들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Q.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 평균 수명이 길어진 시대이지만, 40대가 되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비로소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 40대 주인공들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Q. 극중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영화감독이어서 혹시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닌지?
- 남자 주인공 민구의 직업이 영화감독인 이유는 이 영화의 시작이 토리노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리노는 흔히 관광을 가는 도시는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토리노에서 만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업이 영화감독이 되고, 영화제 방문으로 토리노에 가게 된다는 설정을 하게 됐다. 덧붙여 극 중 여자 주인공 민하의 직업이 안과의사인 이유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답사를 가기 전 실제로 내가 라식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노안으로 수술을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다시 만날 핑계를 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여자 주인공의 직업은 안과 의사가 되었다.

Q. 두 주인공이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러 다닌다. 주요 소재로 왜 ‘카라바조’를 선택했나?
- 주인공들이 그림을 보러 다니는 이유는 영화가 혹시 관광영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지역을 이동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 대화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중 카라바조를 선택한 이유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빛의 화가’이면서도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이중성의 화가이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용서와 구원을 원했던 그의 작품에 드러난 정서가 인물들의 마음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민감할 수 있는 있는데, 인물들의 사랑이 불륜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데…
- (이전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영화를 보시고 이 영화가 소재 면에서는 불륜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륜 영화가 아니라는 말씀을 해주신 분들이 있어 고마웠다. 만약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를 살인 영화라고 할 수 없듯이, 우리 영화도 불륜 영화가 아닌 사랑 영화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