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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으로 얼룩진 문화계
연이은 폭로에 드러난 민낯 “구조적 갑을 관계 탓”
2016년 11월 06일 (일) 00:10:12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문단에서 소설가 박범신(70), 시인 박진성(38)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명 사립미술관 큐레이터 함영준의 성추행까지 새로운 폭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예술계 대학에서 캠퍼스 내 성추문에 대한 사례를 공개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신세영 기자 syshin@

   
▲ 미술계 성폭력
최근 문화계 인사들의 성추문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발단은 한 시인의 제안이었다. 김현 시인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자는 글을 올렸고, 이후 SNS에 특정 주제를 알리는 표시(#)가 공유되면서 실명 폭로가 잇따르고 있는 것. 예컨대,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성폭력’ 등 문화계 다양한 분야에서 폭로가 봇물 터지듯 터지고 있다. 현재 의혹이 불거진 문화계 인사는 20여 명을 넘어섰다. 김현 시인은 ‘21세기문학’ 가을호에 “걸레 같은 X, 남자에게 몸 팔아 시 쓰는 X 등 성적 비하발언을 듣거나, 어떤 남자 시인들이 젊은 여자 후배 시인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꼴리는’ 순으로, ‘따먹고 싶은’ 순으로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는 기고문을 실어 문단의 성추행 사건들을 고발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분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하겠다”라며 피해자들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범신 작가, 김고은에 성 경험 물어봤다”
   
▲ 박범신
10월 21일 전직 출판사 편집자였던 한 여성은 자신의 트위터에 영화 ‘은교’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박범신의 성희롱, 성폭행과 관련한 글을 올렸다. 이 여성은 “(박범신 작가가) 김고은이 어리고 경험도 없어 보여 ‘고은 씨는 경험이 있나? 이 은교라는 캐릭터는 말이야 남자에 대해서 모르면 해석하기가 곤란해’라고 물어봤다고 했다”며 “옆에 있던 배우 박해일 씨가 당황해서 ‘에이 선생님 왜 그러세요’하고 넘어갔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범신 작가가 편집자 팀, 여성팬, 방송작가 등 7명의 여성을 ‘늙은 은교’, ‘젊은 은교’라 부르며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그중 1명은 박범신 작가의 바로 옆에서 어깨, 허리, 허벅지를 3시간 내내 터치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고 다른 출판사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은교라는 이름만 봐도 토악질이 난다”며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이에 박범신 작가는 이날 밤 늦게 자신의 트위터에 “스탕달이 그랬듯 ‘살았고 썼고 사랑하고’ 살았어요.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 죄일지도…누군가 맘 상처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라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이후 “스탕달이 그랬듯 ‘살았고 썼고 사랑하고’ 살았어요. 나로 인해. 누군가 맘 상처받았다면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라고 수정했다가 이 글 역시 비난이 이어지자 해당 전체를 삭제했다. 박 작가는 사과문을 삭제한 이틀만인 23일 “내 일로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하고 싶다. 인생, 사람에 대한 지난 과오가 얼마나 많았을까. 아픈 회한이 날 사로잡고 있는 나날이다. 더 이상의 논란으로 또 다른 분이 상처받는 일이 없길 바란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사랑해준 독자에 대해서도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최근 온라인으로 연재를 마친 신작 장편소설 ‘유리’의 출간을 무기한 연기했다.

시인 준비생 “박진성, 신체 사진 요구·강제 성관계”
   
▲ 박진성
시집 ‘식물의 밤’, ‘목숨’ 등을 발표한 박진성 시인이 시 강좌 수강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한 여성이 10월 19일 SNS에 “지난해 미성년자인 저는 저보다 나이가 20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폭로하자 다수의 피해자가 연이어 고발했다. 시인 지망생이던 여성 A씨는 “시 배울 사람을 구한다는 글에 연락을 취했더니 박진성 시인이 자신에게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라’ 등의 성적인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여성은 “박진성이 자살을 하겠다고 연락해 새벽 기차를 타고, 그가 거주하는 대전에 내려갔다. 술을 마시고 있던 박진성 시인이 ‘너는 색기가 도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이후 박진성과 노래방에 가서 ‘자의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했다”는 글을 올려 충격을 안겼다. 논란이 거세지자 박진성 시인은 22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께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 저의 부적절한 언행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올해 예정되어 있던 산문집과 내후년에 출간 계획으로 작업하고 있는 시집 모두를 철회하겠다. 저의 모든 SNS 계정을 닫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국작가회의 “성추문 박범신과 박진성, 소명 뒤 조치”
한국작가회의는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우리 회원과 조직 이름이 성추문과 한데 묶여 거명되는 사태를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할 말을 잃어 마땅하겠습니다만 가까스로 몇 말씀 추슬러 올린다”며 박범신 작가와 박진성 시인에 대한 성명서를 냈다. 이어 “정관을 위배하거나 품위를 현저히 손상시킨 회원은 소명절차를 거쳐 이사회 결의로써 자격 정지 또는 제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속하게 해당회원들의 소명을 청취하여 절차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작가회의는 “간난 속에서도 높은 자부심으로 문학에 정진하시는 회원들께 참으로 죄송스럽지만, 차제에 우리 모두 반구(反求)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옷매무새와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주시길 삼가 당부 드린다”고 했다. 박범신 작가와 박진성 시인은 모두 작가회의 소속 회원이다.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 ‘상습’ 성추행
서울 일민미술관의 책임 큐레이터 함영준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 21일 자신을 21세 예술대 학생으로 소개한 온라인 필명 ‘소마-킴(Soma-Kim)’의 폭로글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소마 킴은 트위터에 “지난해 11월부터 약 한달간 함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가 작업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해 만난 뒤 차 안에서 손을 잡고 다리, 어깨 등을 만지고 성적인 언급을 계속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함씨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생길 것 같아 어렵게 글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글이 공개되자 SNS 등에는 “대학 술자리 때 그가 속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는 등의 여러 성추행 내용들과 “함씨가 신문에 페미니스트라고 기고했을 때 기가 찼다”는 증언이 잇따라다. 성추행 논란이 온라인에서 확산되자 함영준은 페이스북을 통해 “미술계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엄밀히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작가를 만나는 일에 있어 부주의했음을 인정한다”면서 “신체 접촉이 이뤄진 부분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고 입을 열었다. 아울러 자신이 가진 모든 직위를 정리하고,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정리한 뒤 그만두겠다고 했다. 함씨가 동인으로 관여해온 비정기 독립문화잡지 <도미노>도 23일 편집동인 일동의 사과문을 내고 모든 공식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한예종에서도 성추문? 학생들 증언 파문
문화예술계 대학으로는 국내 최정상급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사회적 문제로 커진 성추문 논란에 휩싸였다. 학생들이 과별로 만든 SNS 계정에 캠퍼스에서 벌어진 성추문과 여성혐오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SNS에는 “육감적이지 않고 못 생긴 게 그림까지 못 그리면 어떡하냐고 했다”, “교수님 옆에 돌아가며 앉아 술을 따르게 했다”, “전공 교수가 어린 여자가 섹시하다는 말을 했다”는 등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학교 측에서는 “(트위터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 아이들 의견 수렴해서…. 저희도 자정과 쇄신의 기회로 삼자고 논의했다”며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이를 고쳐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화계 구조상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등단이나 전시를 하려면 유명 작가와 큐레이터 지원이 필수적인데, 성폭력 피해가 알려질 경우 기회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또, 일부 유명 작가의 책 출판 등을 위해선 부당한 횡포에 항의하기도 어렵다. 한 현직 작가는 “출판사에서 일할 당시 언어적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일상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면서 “갑을관계가 강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제가 이 작가의 심기를 거스를 때 회사의 큰 손해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계 성추문 논란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문화 권력자에 의한 폭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그런 권력관계 내에서 성폭력이라든가 성추행이라든가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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