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작가 한지선은 오랫동안 ‘길’을 형상화해왔다. 그 길은 늘상 벽과 함께 한 쌍으로 출현했다. 벽은 현실적 삶의 상징이고 길·계단은 그 현실에서 간절하게 추구하는 돌파구, 도피처 혹은 다른 세상으로 가는 출구로 은유된다.

▲ 작가 한지선의 작품은 다소 진부하고 상식적인 비유에 기대면서도 사실 매우 재미있다. 갈수록 단단하고 치밀하게 결구된 구성이나 탄탄한 조형력에서 매력이 넘치고 한정적인 소재인데도 매우 다채롭게, 변화무쌍하게 풀어나가는 힘을 만나기 때문이다.

작가 한지선의 작품은 다소 진부하고 상식적인 비유에 기대면서도 사실 매우 재미있다. 갈수록 단단하고 치밀하게 결구된 구성이나 탄탄한 조형력에서 매력이 넘치고 한정적인 소재인데도 매우 다채롭게, 변화무쌍하게 풀어나가는 힘을 만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A Road’라는 타이틀의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작품에는 보도만 있는 것, 보도와 계단이 공존하는 것, 계단만 있는 것 등이 다양하게 있다.

그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분류한다면 채색 릴리프라고 할 수 있다. 합판을 가공하여 거기에 채색한 반입체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그 반입체적인 작품은 도로나 계단을 원근법적으로 나타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도로나 계단을 원근법적으로 나타낸 이 도상(圖像)은 현실의 어딘가의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상상 속의 풍경이다. 이 풍경에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도, 결국 그것이 상상 속의 풍경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하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 풍경들은 인공적이다. 돌과 콘크리트, 시멘트와 벽돌로 마감된 듯한 건물과 길, 계단은 텅 비어서 마냥 적막하고 오랜 시간의 입김 아래 조금씩 녹아내리는 형국이다.

▲ 40-Road 136x200x8 2008

평면 회화에서 만나는 환영의 극대화와 표면처리에서 보이는 효과적인 질감 표현, 계단 난간과 같은 효과적인 오브제 활용, 뫼비우스의 띠처럼 휘어져 감도는 계단 처리는 작업의 재미를 상승시켜 여러 스타일과 방법론을 식물처럼 무럭무럭 키우는 양상이다. 변형 캔버스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회화와 조각, 저부조의 만남 및 평면과 입체, 설치가 일정한 벽면에서 서식하는 풍부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한지선. 어쩌면 그의 작업들은 회화와 조각 등에 국한되지 않는 이미지의 변화무쌍한 생애를 증명하고 싶다는 바람이자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총체적인 조형행위의 모색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 한지선은 지금까지 총 31회의 개인전 및 ‘꿈속을 걷다’, ‘마술정원전’, ‘과학과 미술의 만남’, ‘KIAF’, ‘구성과 중심전’ 등 국내 유수의 단체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NM
출처- 박영택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