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에서 실종  

1937년 에어하트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 비행에 도전했다가 태평양에서 행방불명된 ‘하늘의 여제(女帝)’ 아멜리아 에어하트(1897~1937)의 흔적을 찾기 위한 탐사작업이 그의 실종 75주년을 맞아 다시 시작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역사적 항공기 회수를 위한 국제그룹’(TIGHAR)은 10일(현지시각) “에어하트가 당시 태평양 상의 한 무인도에 불시착, 얼마 동안 생존하다 사망했다는 가정하에 7월 2일부터 이 무인도를 중심으로 탐사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7월 2일은 이어하트가 실종된 날이다. (조선일보 2012년 6월 12일 16면)

아멜리아 에어하트(1897~1937)는 23세 때인 1920년 12월 28일을 잊지 못한다. 그 날은 캘리포니아의 한 비행장에서 10분 동안 비행기를 타보는 짜릿한 경험을 처음 해 본 날이다. 단지 동승만 한 것이지만 그 10분의 비행은 아멜리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에어하트는 미국 캔자스주의 애치슨에 있던 외가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주의 사립여학교를 졸업했다. 1차대전이 끝날 무렵 간호보조원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경험한 것이 그 날의 첫 비행이었다. 그녀는 1921년 1월부터 비행교습을 받아 그해 연말에는 비행면허를 따고 1922년 10월에는 여성최초로 고도 1만4000피트를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1923년 5월에는 국제항공연합이 발급하는 비행사자격증을 여성으로는 세계에서 16번째로 취득했다.
1924년 컬럼비아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1년 만에 그만두고 1925년 보스턴의 사회복지관에 취업했다. 주말비행을 즐기는 사회복지사로 생을 마쳤을 수도 있는 그녀에게 운명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1928년 4월 어느 날이었다. 출판업자 조지 퍼트넘이 “2명의 남자 조종사와 기관사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인데 당신이 비행에 동행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출판업자는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리처드 버드의 남극 탐사 등을 지원하고 그 체험담을 책으로 출판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스타를 발굴해 그가 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에어하트에게 손짓을 한 것이다. 1919년 6월 영국의 존 앨콕과 아서 브라운이 논스톱으로 대서양 바다 위를 건너고 1927년 5월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논스톱 단독비행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대서양 비행은 여전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모험이었다.
2명의 조종사와 기관사 그리고 에어하트를 태운 비행기가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를 이륙한 것은 1928년 6월 17일이었다. 비행기는 20시간 40분 후 영국의 웨일즈에 도착했다. 단지 동승만 한 것인데도 ‘여성 최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에어하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가 다른 2명의 남성 조종사들에게 공을 돌려도 언론의 조명은 그녀에게만 쏟아졌다. 더구나 린드버그와 놀랄만큼 닮은 외모 덕분에 그녀는 “레이디 린다”로 불리며 신문과 잡지 지면을 장식했다. 출판업자의 기획대로 에어하트는 ‘20시간 40분’ 제목의 책을 썼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에어하트는 그 영광이 왠지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남이 조종하는 비행기에서 겨우 보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싫었던 것이다. 언젠가 본인도 직접 대서양을 횡단해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에어하트는 각종 비행기록을 갈아치웠다. 1928년 9월 뉴욕~로스앤젤레스~뉴욕을 오가는 최초의 미 대륙 왕복횡단 비행기록을 세웠으며 1931년 ‘여성 비행경주’에서 100km 코스 속도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에어하트는 이혼경력이 있는 출판업자 조지 퍼트넘의 끈질긴 구혼을 받아들여 1931년 퍼트넘과 결혼했다. 둘의 결혼은 상대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사랑보다는 공동이익에 기초한 다분히 사업적인 동반관계였다. 에어하트는 결혼을 하고도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성을 그대로 썼다.
에어하트가 록히드 베가호를 타고 그토록 오래 소망해온 대서양 단독 비행에 도전한 것은 1932년 5월 20일이었다.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를 이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거센 바람이 기체를 흔들어대고 날개에 얼음이 얼어붙어 고도가 1000m나 떨어졌다. 연료탱크 마저 새는 어려움 속에서도 에어하트는 14시간 56분만에 3241km나 떨어진 북아일랜드에 당도했다. 세계최초로 여성의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에어하트는 ‘여성 최초’ 말고도 ‘대서양 최단시간 횡단’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미국은 열광하고 세계는 환호했다. 언론은 ‘창공의 여왕’, ‘하늘의 퍼스트레이디’ 등 수많은 애칭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했지만 에어하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35년 1월 세계최초로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에어하트는 새로운 계획에 착수했다. 어머니와 형제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어야 하고 동시에 대중적 스타로서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모험은 필요했다. 그것은 비행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지구의 최장 길이인 2만 9000마일의 적도를 도는 대모험이었다. 단독 비행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항법사 프레드 누넌이 동행했다. 두 사람은 1937년 6월 1일 오전 10시 마이애미에서 록히드의 은빛 엘렉트라 쌍발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먼저 남미 푸에르토리코로 남하한 뒤 곧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프리카와 홍해를 거쳐 파키스탄의 카라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2만 2000마일(3만5000km)의 비행을 성공시킨 두 사람은 1937년 6월 29일 뉴기니의 리에에 도착했다. 이제 7000마일(1만1000km) 정도의 태평양 횡단만 마치면 되었다.
엘렉트라호가 뉴기니를 출발한 것은 7월 2일 0시였다. 다음 기착지는 2556마일(4113km) 떨어진 북태평양의 산호섬 하울랜드 섬이었다. 날짜변경선 부근의 조그만 섬 하울랜드는 찾기가 쉽지 않아 미국 해안경비대 경비선이 배치되어 착륙에 필요한 신호와 안내를 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침 7시41분경 에어하트로부터 “연료가 떨어져 가는데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긴급 소식이 경비선에 전해졌다. 그리고 8시45분경 “동경 157도 남위 33도7분 상공을 날고 있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종 소식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9척의 미 군함과 66대의 비행기가 7월 19일까지 남태평양을 샅샅이 뒤졌으나 기체 파편과 조종사 유체, 그 어떤 유류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

1950년 흥남철수작전

미국 알래스카 주에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전투를 기념하는 지명을 만드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돈 영 연방 하원의원(공화·알래스카)은 7일 한국전쟁 발발 62주년을 앞두고 7일 천연자원위원회에 ‘초신 퓨 산 법안’을 제출했다. 초신 퓨(Chosin few)는 장진에서 살아남은 소수라는 뜻이다. 한국전 당시 미군은 한국이 자체 제작한 지도가 없어 일본이 제작한 지도를 사용해 장진을 ‘초신’이라 불렀다. (동아일보 2012년 6월 18일 10면)

1950년 11월 24일 맥아더 사령부가 6·25전쟁을 끝내기 위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전 부대에 총공세 명령을 내렸다. 그 유명한 ‘종전을 위한 총공세(End the War Offensive)’ 명령이었다. 병사들은 이 명령을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총공격’으로 받아들여 ‘크리스마스 대공세’로 바꿔 불렀다.
총공세 명령이 떨어졌을 때, 서부전선에서는 월톤 워커 중장이 이끄는 미8군이 청천강 부근에 포진하고 있었고, 동부전선에서는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의 10군단이 함흥 북쪽 장진호에까지 진격해 있었다. 10군단 중 1만3500명 정도의 미 해병1사단은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 미 육군 7사단 일부 병력 4500명은 장진호 동쪽에 포진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공군이었다. 11월 25일 깊은 산악지대에 은신하고 있던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양측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11월 27일 밤, 6개사단 7만여명으로 구성된 중공군 9병단이 장진호 주변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밤새도록 전투를 벌이고 맞은 다음날 아침, 미 해병1사단은 포위된 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있었고, 장진호 동쪽의 7사단은 부대원의 반 이상이 전사하는 아비규환을 이뤘다. 미 해병1사단마저 궤멸될 경우 동부전선에 투입된 미 10군단 전체병력 10만여명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11월 29일 맥아더 사령부가 미 해병1사단에 흥남으로 집결해 교두보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해병1사단은 240km에 이르는 거리를 되돌아가야 했다. 유담리 → 하갈우리 → 고토리 → 진흥리 → 흥남으로 이어지는 철수 루트는 해발 1000~2000m의 개마고원 지대였고 기온은 영하 20~40도를 오르내렸다.
12월 1일 해병1사단의 본격적인 철수가 시작되었을 때, 병사들은 쫓아오는 중공군과의 전투로도 쓰러졌지만 혹한에 의한 동상과 설사 등으로도 생사를 넘나들었다. 미국의 신문에 “해병 1사단 전멸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을 장식했으나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로 병사들을 격려하며 철수를 진두지휘했다. 포위망을 뚫고 미 해병1사단이 흥남에 거의 도착했을 때 700여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실종자, 3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10군단 전체로는 3000여명이 사망하고 5000여명이 다쳤다. 중공군 9병단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 미군 측 기록에 따르면 2만5000여명이 사망하고 1만250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진주만 이래 최악의 패배”라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군사상 가장 위대한 후퇴작전 중의 하나”라는 평가도 있다.
미 해병1사단이 흥남에 거의 도착한 12월 11일 맥아더 사령부는 함흥과 흥남에 강력한 교두보를 구축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동부전선에서의 전면철수를 결정했다. 그때부터 미군의 철수행렬 뒤에는 현지 주민들의 피란행렬이 줄을 지었다. 철수를 앞둔 흥남부두는 피란민과 군인이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미군과 국군이 배에 오르며 철수를 서두르는 동안 바다에서는 미주리호를 비롯한 13척의 함정과 함재기들이 중공군 진지와 집결지를 향해 밤낮없이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을 가했다. 그 틈을 타 10만5000여명의 지상군과 1만7500여대의 각종 차량, 35만t에 달하는 군수물자가 미 군함에 실렸다.
문제는 피란민이었다. 당시 10군단의 고문관이면서 고향이 함흥인 현봉학은 “함흥에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공산당이 점령을 하면 이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10군단의 알몬드 소장에게 이들을 데려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알몬드 소장이 군인과 장비 수송 때문에 피란민 수송이 어렵다며 거절했다. 현봉학은 상륙작전 전문가인 에드워드 포니 대령과 긴밀히 협의한 끝에 “철수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적으로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 될 것”이라는 말로 알몬드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알몬드 입에서 “4000~5000명 정도는 데려갈 수 있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봉학은 함흥으로 달려가 “12월 15일 밤 12시까지 기차역으로 나오라”고 주민들에게 알렸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남부여대하여 기차역으로 몰려들었으나 기차는 5000명 정도만 태운 채 새벽녘에 흥남을 향해 달렸다. 기차를 놓친 사람들은 흥남까지 13km 거리를 걸어서 갔다. 날이 밝았을 때 부두는 처참한 모습의 10만명 피란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를 본 알몬드 소장은 수천 명만 태우겠다는 당초의 입장을 바꿔 그들 모두를 자유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12월 19일부터 시작된 피란민들 수송에 동원된 선박은 193척의 군함과 민간 상선이었다. 10여척 상선 중에는 7600t급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도 있었다. 빅토리호의 적정 승선인원은 2000명 정도였으나 12월 22일 밤부터 14시간 동안 승선작업을 끝내고 나니 1만4000여명이나 타고 있었다. 12월 24일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수송선이 떠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흥남철수작전도 막을 내렸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피란민은 9만8000여명이나 되었다. 싣지 못한 탄약과 연료는 항만과 함께 폭파되었다.
오늘날 장진호 전투는 2차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더불어 세계 양대 동계전투로 꼽힌다. 가장 성공적인 철수작전의 사례로 꼽히면서도 세계에 알려진 전투명은 장진호 전투가 아니라 초신호 전투다. 미군이 당시 일본 지도를 갖고 전쟁을 치른 탓에 장진호가 아니라 일본어 표기인 초신호로 불렸기 때문이다. 장진호 전투를 기려 미국은 훗날 새로운 순양함에 ‘Chosin(초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빅토리호의 성과에 대해 미국 해사부는 “바다 역사상 단일 선박이 이룬 가장 위대한 구조작업”으로 격찬했고, 미 의회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배에 주어지는 ‘갤런트십’으로 지정했다. 2004년 영국 기네스본부는 ‘가장 많은 구조작전을 한 배’로 인정했다.

■‘로드니 킹 사건’과 ‘LA 흑인 폭동’

1992년 LA 흑인폭동

1991년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구타 당하고 이듬해 LA 폭동의 중심인물이 됐던 흑인 로드니 킹(47)이 17일 캘리포니아 리알토의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캘리포니아 경찰은 킹의 약혼자가 이날 오전 5시25분 집 수영장에서 킹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킹이 물속에서 아무런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 그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고 오전 6시11분 병원이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의 신체에 부상한 흔적이 없고 사인에 대한 즉각적인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면서 익사 사고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2012년 6월 18일 15면)

야심한 밤에 4명의 백인경찰이 한 흑인의 손에 수갑을 채운 뒤 사정없이 발길질하고 경찰봉으로 내리쳤다. 흑인은 머리뼈가 11군데나 금이 갔고 다리가 부러졌으며 뇌가 손상되고 콩팥이 터졌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1년 3월 3일 0시30분쯤이었다. 바로 전, LA 근교 고속도로 상에서 현대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에게 순찰차가 정지신호를 보냈지만 흑인은 시속 160km로 속도를 높여 달아났다. 흑인은 12km를 달아나다가 차를 세웠다. 흑인 운전자는 자동차에서 내리라는 경찰의 요구를 한동안 거부하다 내렸고, 내릴 때도 자칫 무기를 소지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게 뒷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나왔다. 사건 당시 운전자는 절도죄로 수감되었다가 가석방 중이었다.
경찰 사이렌과 헬리콥터의 소음은 옆 건물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한 남자를 깨웠고 남자는 그 순간을 비디오에 담았다. 발코니에서 비디오가 돌아가기 시작한 3초 후, 백인 경찰들이 흑인 운전자를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81초 동안 촬영된 비디오에는 곤봉으로 56회나 가격하고 발로도 6번 차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장면은 LA-TV 채널5로 넘겨져 미 전역에 방영되었다. 백인경찰들은 3월 14일 기소되었다. 부시 대통령도 “구역질나는 광경”이라고 표현할 만큼 린치 장면이 잔인했기 때문에 누구도 경찰이 무죄방면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재판은 LA 카운티 주지방재판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재판소 변경을 요구하는 변호인측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사건은 11월 말 LA 벤투라 카운티 지방재판소로 이관되었다. 미국의 배심제도는 주민들 가운데서 배심원을 선출한다. 문제는 벤투라 카운티에 88%가 백인이고 흑인은 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변호인 측이 의도한대로 배심원단은 백인 10명에 아시아와 중남미계가 각각 1명씩 12명으로 구성되었고 흑인은 한명도 없었다.
1992년 4월 29일, 4명의 백인 경찰에 대해 벤투라 카운티 지방재판소의 배심원 12명이 평결을 내렸다. “전원 무죄, 한 명은 보류” 20세기 미국 최대의 폭동으로 일컬어지는, 또 한국인의 미주 이민 100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LA 폭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평결이 있기 1년 전부터 백인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TV로 자주 방영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유죄평결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원 무죄라니…. 법정 안에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경찰관의 함박웃음과 법정 밖에서 믿을 수 없다는 흑인들의 분노가 TV 전파를 타고 미 전역에 그대로 중계되었다.
이윽고 잠복되어있던 흑인들의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발화점은 LA 중심가로부터 남쪽으로 10km 떨어진 흑인 거주지역 센트럴 카운티였다. 그곳은 1965년 34명이 죽고 1000여명이 다쳤던 ‘와츠 폭동’의 진원지였고 가난과 실업, 술과 마약, 총기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흑인들 사이에는 극단의 소외감과 불만이 팽배했다. ‘LA 폭동’은 흑인을 구타한 백인 경관들에 대한 무죄 평결이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그 지역에는 ‘주류로부터의 소외감’이라는 시한폭탄이 째각째각 폭발의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배심원의 평결 후, 센트럴 카운티 중심가에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고 적힌 종이를 든 몇 명의 흑인이 나타났다. 주변으로 흑인들이 몰려들더니 곧 병과 돌맹이가 난무하는 혼란상태로 빠져들었다. 해질녘 무렵 폭도로 돌변한 시위대가 곳곳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불태우며 상점을 약탈했다. 그런데 그들의 주요 표적은 백인이 아니라 주변의 한국인 상가였다. 이들의 약탈 장면이 TV로 방영될수록 더많은 흑인들이 몰려들었다. 한인들은 경찰의 도움이 없자 총을 들고 자체 방어에 나섰다. 4월 30일 아침부터 흑인들이 또다시 한인타운 상점가를 습격했다. 가진 자에 대한 분노에, 마치 즐거운 놀이라도 찾은 양 상점을 습격하는 흑인들의 가세로 한인타운 주변은 집단광란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5월 1일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6000여명의 주방위군과 1000여명의 연방군이 투입되고서야 사태는 겨우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일 동안 계속된 폭동으로 LA는 쑥대밭이 되었고 한인타운은 유린되었다. 폭동은 55명이 죽고 2300여명이 부상하는 인적피해와 7억달러라는 물적 피해를 남겼다. 한국인은 1명이 죽고 40여명이 부상했으며 1600곳의 가게가 습격당했다. 피해액 7억달러 중 4억달러 가까운 손실이 한인타운에서 일어날 정도로 한인들의 피해가 컸다.
폭동의 본질은 백인 주류사회에 대해 흑인들이 내뿜은 증오의 폭발이었다. 그런데도 애꿎은 한인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미 언론이 폭동의 원인으로 한·흑 갈등을 부추기고, 경찰이 얼씬도 않는 가게를 지키려고 총격전을 불사하는 한인들을 클로즈업시킨 게 사태를 키우긴 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1965년 와츠폭동 후,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유대인들이 모두 떠난 빈 자리를 메운 것은 한인들이었다. 낯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정착이 용이한 흑인 밀집지역의 상권을 파고들었다. 흑인상권 공략은 한인들에게 경제적인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이 때문에 1980년대 들어 한해 평균 5~6건 정도의 한·흑 간 시비가 일어났다. 상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흑인들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충돌이었다. 흑인들은 “한인들이 흑인 사회에서 돈을 벌면서 재투자는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흑인 종업원의 채용에 인색하며 아주 불친절하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히도 1991년 3월 로드니 킹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만에 한인이 쏜 총에 2명의 흑인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3월 16일 한국계 식료품점에서 15세의 흑인 소녀가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여주인의 총에 맞아 죽었고, 같은 해 6월 4일에도 한국계 술집에서 총을 잡고 있는 포즈를 취하며 강도행각을 벌이던 흑인 남자가 역시 한인 주인의 총에 맞아 사살되는 일이 있었다. 두 사건은 각각 집행유예와 정당방위로 마무리되었으나 흑인들은 속으로 분을 삭였다. 그리고 1년 후 백인 경찰에 대한 무죄평결이 있자 한국계 상점에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눈부시게 성장한 그리고 눈앞에서 매일 목격하는 한인사회만큼 분풀이 상대로 좋은 것은 없었다. 한인들은 그렇게 당했다.
그러나 한인들은 역시 강하고 억척스러웠다. 쓰러진 그곳에서 바로 일어선 것이다. ‘LA 폭동’이 있고 1년이 지난 1993년 4월 17일, 미 연방민권법원 배심원은 백인경찰 4명 중 2명에게는 유죄를, 2명에게는 무죄를 평결했다. 흑인들은 반겼고 더 이상의 ‘LA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드니 킹은 폭행경찰들을 고소해 380만달러(약 50억원)의 보상금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후 삶은 평탄치 못했다. 두통에 시달리고 다리를 저는 등 폭행 후유증으로 고생했고 보상금도 변론비용과 사업실패로 대부분 탕진했다. 두 번의 결혼도 실패로 끝나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정 폭력과 음주 운전, 과속 운전 등으로 11차례나 경찰에 체포되었다 풀려나기를 반복했으며 마약재활원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2012년 6월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