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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직불금제도, 태생부터 결함
실용정부의 칼날은 어디로
2008년 12월 13일 (토) 16:43:10 이종현 기자 jh@

쌀 직불금이란 정부가 쌀 재배 농가의 소득을 일정 수준 보장해 주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쌀 산지가격이 목표가격보다 낮으면 그 차액의 85%를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이종현 기자 jh@

요 근래 시끄러운 쌀 직불금 수령 문제를 제대로 풀어 보면 ‘타서는 안 될 사람이 직불금을 수령했다’이다. 자격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파렴치한 행동을 소위 높으신 분들이 하신 것이다. 다시 청계천에 촛불이 일었고, 정부는 부랴부랴 ‘쌀 판매 증명 같은 것이 있어야 자격을 인정한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자격 요건을 명확히 하지 않았는지 석연치 않다. 감사원이 지난해 7월 자격 규정 등의 허점을 지적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보강한 ‘쌀 소득 등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12월 입법 예고했다. 정상적이라면 올 초에 새 법이 시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법 개정은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근 10개월을 표류하다 올 7월에야 법제처가 개정안을 받아 심사를 시작했다. 이미 쌀 직불금은 지불된 상태며 한동안 법안은 증발했던 것이다. 직불금제를 놓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 고위공직자의 쌀직불금 부정수령

쌀 직불금 수령, 무엇이 문제인가
감사원이 2006년 쌀 직불금을 받은 99만8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 비경작자 28만 명이 총 1683억 원의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17만 명, 직업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영농기록이 없어 실경작자가 아닌 자로 추정되는 자가 11만 명이라는 것이다.
상당한 수입원을 가진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왜 고정직불금 기준으로 1ha(약 3025평)당 70만원에 불과한 쌀 직불금을 신청한 것일까?

감사원이 10월 14일 ‘쌀 소득보전 직불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전격 공개함에 따라, 공직사회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서울·과천 거주 공무원 520명이 쌀 직불금을 받는 등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가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여론이 악화되자 직불금을 부당하게 타낸 공무원들을 징계하기 위한 법률검토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에 따라 ‘도덕을 상실한 무개념 공무원’들의 무더기 중징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이 같은 사실은 정해걸(한나라당)·강기갑(민노당) 의원 등이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서도 확인됐다. 2006년의 경우 공무원 4만421명, 공기업 종사자 6213명이 직불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서울·과천의 직불금 수령자 4662명을 대상으로 한 실측조사를 보면 공무원 520명, 공기업 임직원 177명이 포함됐다. 더구나 조사대상의 97%인 4520명이 벼를 수확·수매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들 공무원의 경우 대부분 실제 자경한 적이 없는 부정수령자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작 농민들은 쌀 직불금을 받지 못했으며 농가소득 보전의 당초 취지는 무색화 됐다. 2006년 실경작 농가 53만명 중 7만1000농가(13.4%)가 직불금 1068억원을 수령하지 못하고, 대부분 부재지주들이 대신 받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 이봉화 보건복지부차관 자진사퇴

‘쌀 직불금’ 부정수령이 이번 국감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양도세 회피나 농지 위장취득의 은폐를 위해 발생한 고위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농지의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해선 8년 동안 자경(조세특례제한법)해야 하는 데 부재지주들이 이를 교묘히 이용, 농지를 위장 취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봉화 차관이 농지 편법소유 논란을 피하려 직불금을 신청하고, 그 사실이 드러나 공직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로까지 비화된 현 상황이 이를 여실히 말해준다. 여야를 불문하고 철저한 조사와 단죄를 다짐했고, 청와대도 이미 정부 차원의 조사를 진행 중이며 해당자에 대한 ‘인책’ 방침을 시사했다. 공직사회 전체에 거센 ‘사정’과 ‘징계’ 회오리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여권의 이러한 대응은 이 문제가 ‘강부자 내각’ 파문처럼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감사원이 발표한 10월 14일 오전부터 해당 공무원의 부도덕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 대리경작을 하면서 직불금을 타 갔다면 형법상 사기죄”라며 국회 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의 뜻을 밝혔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도 이날 오전 <불교방송>에 출연해 “(공무원의 직불금 수령이) 적절하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나름 조사를 하고 그에 따라 조치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여야 정치권은 이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치쟁점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홍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 때 감사원에서 한 쌀 직불금 관련 감사를 살펴보니 이를 타 간 공무원이 엄청나게 많았고 공사 직원도 수천명이었다”며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가 극치에 달한 직불금 문제가 왜 은폐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권이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신청 문제를 노무현 정부 고위공직자의 도덕 불감증과 사건 은폐 의혹 쪽으로 역공을 취한 것이다.
민주당도 기세에서 눌리지 않았다. 백원우·최영희 등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이 차관 등 농지를 소유한 고위 공직자 7명이 주소지를 둔 서초구청을 방문해 이들의 쌀 직불금 신청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등 논밭을 소유한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28명의 쌀 직불금 신청 실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 차관 외의 인물을 찾아내면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여야는 감사원이 10월 14일 저녁 쌀 직불금 수령 공무원 현황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미묘한 시각 차이를 나타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공무원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로, 참여정부 시절 감사원이 이런 현황을 포착했는데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며 참여정부 책임론을 거듭 제기했다. 반면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감자료를 감추던 정부가 신속하게 현황을 발표한 것은 의아한 일”이라며 “명단을 밝히지 않는 것은 전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국면전환용”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현 정부 들어 쌀 직불금을 신청한 공무원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의심을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징계 어떻게 진행되나

현행 공무원징계령 등에는 행정부 소속 국가공무원 가운데 5급 이상의 징계는 국무총리 소속 중앙징계위가, 6급 이하는 부처별 징계위에서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광역·기초자치단체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은 단체나 기업별 인사위에서 징계를 결정한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5급 이상에 대한 징계는 소속 장관이 중앙징계위에, 6급 이하는 소속 기관장이나 상급기관의 장이 관할 징계위에 먼저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징계절차가 개시된다.
지방공무원은 임용권자인 단체장이 징계 의결 요구권을 갖고 있다.
감사원이나 수사기관은 자체 조사나 수사 결과, 다른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에 대해 징계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무원징계처분요구서나 범죄처분결과통보서 등을 첨부해 해당 기관장에게 통보함으로써 사실상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명에 의한 각종 감사 결과에 징계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국무총리가 직접 관할징계위에 징계의결요구서를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중앙부처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공직자들이 망라된 이번 사안의 경우 총리가 각 징계위원회에 일괄적으로 직불금 부당수령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행안부 관계자는 총리의 지시를 받은 해당 부처 장관이나 지자체장 등의 요구에 따라 중앙징계위나 부처별 징계위, 지자체 인사위가 사안 별로 징계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징계위는 징계의결요구서를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중앙징계위원회는 60일) 이내에 해당 공무원의 진술이나 증인 심문 등을 거쳐 징계에 관한 의결을 해야 한다.
징계위는 징계를 결정하면 지체 없이 징계요구자에게 이를 통고하고, 각 기관장은 징계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징계를 집행해야 한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 양형은 각 징계위가 대상자의 비위 유형과 정도, 과실 여부를 참작해 결정하게 된다.
현재 공무원의 징계대상 비위 유형으로는 성실의무, 복종의무, 직장이탈 금지, 친절·공정의무, 비밀엄수의무, 청렴의무, 품위유지의무, 영리업무 및 겸직금지의무, 집단행위 금지 위반 등 9가지가 규정돼 있다.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공무원은 이들 비위 유형 중 ‘성실의무’나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징계 수위는 비위의 정도와 고의성 여부, 중과실 여부 등에 따라 파면, 해임, 정직 같은 중징계나 감봉·견책 등의 경징계로 결정난다.
이번 쌀 직불금 수령을 한 공무원의 경우 과실로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징계가 내려진다면 경징계보다는 중징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쌀 직불금은 단순히 ‘농사를 짓는다’는 통·이장의 확인서 한 장이면 수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재지주가 손에 흙 한 톨 묻히지 않고도 손쉽게 쌀 직불금을 수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편법은 부재지주가 ‘농지 위장 취득’을 감추기 위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4년 말 직불금 관련법을 만들면서 누구도 자격 규정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국회의 법안 심의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논농업 직불금’을 운영하면서 같은 규정을 적용했으나 별 탈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논농업 직불금은 논 1만㎡(약 3000평)당 40만원의 보조금을 주는 것.

증발됐던 개정안 왜 이제야...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4일 입법 예고된 뒤 어디선가 잠자고 있었다. 올 7월에야 법제처가 심사를 했고, 이달 7일 국회에 제출됐다. 농식품부 측은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올 5월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기 때문에 18대 국회를 기다린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다른 관계자는 “대선·정권교체·총선이 이어진 데다 올봄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밀려 7월에야 법제처에 개정안을 냈다”고 말해 어디가 진실인지 그 의심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더 의아한 일은 법을 만들 때부터 부당 수령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7일 개정안을 내면서 개정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로 ‘부당 신청에 대한 벌칙이 없어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개정안 자체에도 처벌 조항이 없다. 농식품부 측은 “과징금은 농촌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농촌 정서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속사정은 지자체장의 반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지자체의 과징금의 경우 통상 시장이나 군수와 같은 지자체장이 처벌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지역 농민에게서 과징금을 징수하게 되면 선거 때 자신의 표가 떨어져 나갈까 봐 걱정해 처벌 조항에 반대한다는 설명이다.
전국농민회 총연합 부경연맹 정철균 조직국장은 “부당하게 지급받은 직불금을 양심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면 농민들이 봉기할 것”이라며 “직불금이 경작농민에게 정확하게 돌아가게 하려면 수령을 위한 등록절차를 강화하고 실제 경작 여부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를 거친 뒤 수매실적과 연동해 자격을 조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전북도연맹 김영재 사무처장은 “이번 계기를 통해 포상금제도 시행과 농민 토지 실소유제도 등 실제 경작자 위주의 토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은 10월 28일 전국 동시다발 공공비축미 1차 적재투쟁에 이어 11월 10일 2차 적재투쟁을 예고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관계자는 14일 “이번 직불금 편법수령 사태는 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농촌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그들의 모럴 해저드가 가뜩이나 텅 빈 농민 가슴에 결사투쟁의 이유를 분명히 제시했다”고 밝혔다. 총연맹 박민웅 부의장은 “그간 정부는 농업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할 것은 다해왔다고 공언해 왔는데 다수의 고위공직자가 불법을 스스로 저질렀다는 것은 농정의 사기이며 변죽만 울렸음을 시사한다”면서 “직불금 수령자 명단 공개와 함께 반농정책에 항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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