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문에서 촉발한 통합진보당의 갈등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난 5월 12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는 급기야 폭력 사태까지 일어났다. 선거부정을 조사하기 위한 특위 구성이 결정되고 강기갑 의원의 중재안이 나오는 등 중앙위원회 개최 전만 해도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에 통합진보당의 존폐여부가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의 비례대표 부정 선거 파문 그리고 사태 발생 후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편파적, 종파주의적 행보 때문이다. 특히 도덕성이 생명이라는 진보 진영의 간판들이기에 부정 선거 논란은 파문을 넘어 충격 그 자체다.

비례대표 경선 당시 순위조작 있어

▲ 야권연대 찬반여부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은 총선 직후 당 내부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총선 직전 비례대표 당내 경선 때 순위 조작이 있었다는 게 폭로의 핵심이다. 지난 3월 14~18일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노항래(국민참여당 출신) 후보를 10번으로 하고, 대신 윤금순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이석기 전 민중의 소리 이사를 각각 1, 2번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순위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이청호 부산 금정구 지역위원장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 민주노동당 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해온 전산관리업체가 비례대표 선거 실무를 맡았으며,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의 지시로 투표가 진행되는 도중 온라인 투표 내용을 알 수 있는 ‘소스 코드’를 3차례 열람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내용의 폭로가 이어지자 당은 지난 4월 12일 조준호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조 대표는 지난 5월 2일 “총선 당시 당내 비례대표 경선 현장투표가 진행된 7곳의 투표소에서 부정선거가 벌어졌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비당권파인 윤 당선자는 비례대표에서 사퇴했지만, 당권파인 이석기 당선자는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당선자는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10여 년간 수배 및 수감 생활을 하다 2003년에 석방됐고, 이후 ‘민중의 소리’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당권파의 숨은 실세로 불렸다. 이 대표는 지난 5월 8일 “조작 의혹만 있을 뿐 조작이 자행됐다는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못했다”며 온라인 투표 조작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일IP 투표는 공동생활을 하는 노동 현장의 관행에 따른 현상인데도 이석기 당선자만 집중적으로 조사해 마치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의혹을 부풀렸다”며 비당권파와 진상조사위원회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조준호 위원장은 지난 5월 9일에도 “현장 투표의 부정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 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효로 인정한 4,525표 가운데 24.2%인 1,095표가 규정상 무효 처리 대상이었다”면서 “이를 반영하지 않은 중앙선관위 발표는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중앙위원회 회의서 폭력사태까지 발생
통합진보당이 5월 12일 4.11총선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 수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최악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두고 ‘낡은 진보의 몰락’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투표 부정을 저지른 데 이어 폭력까지 동원해 입장을 관철하려는 당권파의 패권적 행태가 진보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 이와 함께 “진보가 대수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폭력 사태는 지난 5월 12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회의 도중 당권파가 경쟁 부문 비례대표 후보자 총사퇴와 비상대책위 구성 등 수습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공동대표인 심상정 중앙위 의장이 강령개정안을 통과시킨 직후 당권파 중앙위원과 당원 등 100여명이 몰려나가 단상을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조준호 공동대표는 머리채와 멱살을 잡히는 등 집단 폭행을 당했고, 유시민 공동대표도 폭행을 당했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공동 대변인은 “조 대표가 많이 맞았고 옷이 찢어졌다”면서 “유시민 대표도 조금 맞았고 옷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탈진한 조 대표는 5월 13일 입원해 목과 허리 정밀 검진을 받았다. 양측의 충돌이 예상됐지만 이정희 공동대표는 회의 직전 “화합해서 당을 다시 세워달라”며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가 폭력 사태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회의가 시작된 뒤 나머지 공동대표들도 사퇴를 선언했다. 중앙위가 폭력 사태로 얼룩진 채 정회된 가운데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각기 지도부 구성을 추진하고 나서 통합진보당은 ‘이중 권력’ 상황에 직면해 있다. 비당권파는 5월 13일 저녁8시부터 전자회의 형태로 중앙위를 속개해 비대위 구성 방안 등 미처리 안건에 대한 표결에 나섰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5월 14일 강기갑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강기갑 비대위원장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 비대위는 뼈아픈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국민 앞에 진보정치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권파 측은 전날 전자투표를 통한 중앙위 의결 절차를 두고 ‘무효’라고 반발했지만, 구체적인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당권파 내에서는 중앙위 의결 무효를 주장하는 강경 입장과, 비대위에 참여해 상황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온건 입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론이 힘을 얻을 경우 당권파가 김선동 의원(재선)을 원내대표로 뽑아 원내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에 맞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심상정·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 사임

▲ 통합진보당 당권파 의정활동

부정 경선 파문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의 총사퇴안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5월 14일 의결했다. 지난 5월 12일 중앙위원회가 당권파 당원들의 폭력 사태로 중단되면서 전날 오후 8시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진행된 전자표결 결과에 따른 것이다. 중앙위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순위 비례후보의 총사퇴 내용을 담은 ‘당 혁신 결의안’이 재석 545명 가운데 찬성 541명, 반대 4명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또 강기갑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의 건’도 재석 545명 가운데 찬성 536명, 반대 9명으로 가결됐다고 덧붙였다. 4건의 중앙위 안건 가운데 당헌 개정안도 이날 가결됐으며, 강령 개정안은 앞서 지난 5월 12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중앙위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중앙위의 이번 결정으로 ‘버티기’로 일관하던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비롯해 순위 경선에 참여했던 비례후보 14명 전원은 사퇴해야 한다. 심 대표는 “59.8%의 참여로 의사정족수를 넘겨서 적법한 중앙위였음을 확인드린다”며 “대표단의 권한과 책임을 혁신 비대위에 넘기면서 세 사람은 공동대표직을 사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 안의 음지를 도려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 모든 것을 거짓 없이 드러냈다”며 “이제 진보정치가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저희의 몸부림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며 사임의 변을 밝혔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실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꾸밈과 감춤이 없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질 때”라며 “강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아 혼돈에 빠진 당을 세우고 쓸모 있는 정당으로 갈 수 있게 뜻을 모아달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조준호 공동대표는 “당의 주인은 당원이고,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그대로 보고하고 질책받고 시정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정신”이라며 “드러냄으로써 변화가 있고, 질책이 있고, 애정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퇴를 공식 선언했다. 앞서 대표단은 이날 오전 마지막 회의를 통해 혁신 비대위는 당대표단의 권한과 임무를 승계하고, 사무총장의 당직 임명 권한을 가질 것, 중앙위 의장단 활동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장원섭 사무총장을 즉각 해임할 것 등을 의결했다.

검찰, 압수수색 후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 확보
지난 5월 21일 검찰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수사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당사를 압수수색했다. 이날 검찰과 통합진보당은 오전 8시10분부터 약 18시간 동안 대치와 충돌이 이어졌다. 통합진보당의 반발도 극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박원석 비례대표 당선인과 통합진보당 관계자로 보이는 4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다음날인 5월 22일 오전 풀려났다. 박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근로자, 점원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중앙당사의 경우 18시간 동안 대치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하거나 공권력 행사를 방해한 정황을 확인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버관리업체 엑스인터넷정보의 사장이 보관하던 노트북 하드 4개와 테스트서버는 당 사무총장 오모씨 지시로 빼돌려진 뒤였다. 우여곡절 끝에 서버 3개를 확보한 금천구 가산동 서버임대업체 스마일서브에서는 경찰 400여명과 당직자·당원 등 700여명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 6∼7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한 명은 발목이 부러졌다. 서버 관리업체가 입주한 건물 2층은 엘리베이터와 사무실 공간이 유리문으로 분리돼 있는데, 서버 관리업체 문 앞에는 강기갑 의원 등 50여명이 농성 중이었으며, 유리문 바깥에서도 당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격렬한 몸싸움은 2시간가량 이어졌고, 결국 다음날 새벽 2시35분에야 압수수색은 끝났다. 현장에 투입된 한 경찰 간부는 “정당한 법 집행을 하는데 이렇게 시달릴 줄 몰랐다”며 “세상에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 있느냐”고 탄식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방해와 증거인멸 부분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따로 맡겨 수사하기로 했다. 검찰이 확보한 통합진보당의 당원 명부는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2000년 1월 창당된 뒤로 단 한 번도 외부에 유출된 적이 없다. 때문에 통합진보당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압수된 서버에는 민노당 시절부터 현 통합진보당까지 12년 넘게 축적된 당원 신상정보와 당비 내역 등 핵심 기밀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특히 서버에 백업된 전체 당원 데이터베이스(DB)에는 일반 당원뿐 아니라 7만 5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진성 당원(당비 납부자)과 당내 선거 투표권이 없는 후원 당원 등 20여만명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 신상 정보와 당비 납부 내역이 모두 기록돼 있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중에는 현행법에서 정당 활동이 금지된 교원·공무원 등 민노당 때부터 기밀로 보존해 온 ‘반드시 숨겨야 할’ 당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 활동을 한 공무원들의 실체가 파악되면 대규모 형사처벌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당원 명부가 원천자료라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 실태와 유령 당원, 정치자금 후원 내역 등의 의혹을 풀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비례대표 경선 투표자 명단뿐 아니라 지난 13년여 동안 입·탈당 기록 등 20만명 이상의 당원 명부를 탈취한 것”이라며 “서버는 돌려주겠지만 부 다 복사해 여러 가지 탄압에 이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