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의 신작 <아수라>는 불교의 6도에서 인간계(人間界)와 축생(畜生) 사이에 위치하는,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전쟁을 일삼는 지옥인 ‘아수라도’에서 제목을 따왔다. 무엇보다 함께 했을 때 가장 빛났던 배우 정우성과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이후 네 번째로 조우한 작품. <아수라>는 정우성과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 연기파 배우들이 리얼리티 그 이상으로 실감나게 펼치는 악인열전과 핏빛 액션으로 더 독해지고 강렬해진 그의 작품 세계의 새로운 장을 약속한다.

신세영 기자 syshin@

김성수 감독이 본격 범죄액션 영화 <아수라>로 돌아온다. 권력과 돈을 거머쥔 자들이 더욱 탐욕스럽게 목표를 향해 치닫는 <아수라>의 세계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큰 구도 안에서 움직였던 한국 범죄액션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의 구분은 <아수라>의 세계에서 의미가 없다. 진정한 악인은 도처에 널려 있고, 악덕 시장과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의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며 악인의 길로 들어선 비리 형사, 그에 대한 의리로 시장의 수하로 들어갔다가 악이 보여주는 신기루 같은 야망에 물들어가는 젊은 형사, 시장을 수사하는 검사와 검찰수사관. 이들은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거침없이 악행을 저지른다. 성찰이나 반성은 없다. 이들이 자행하는 악의 세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가차없이 짓밟는, 정글 속 맹수들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물고 물리는 악인들의 지옥도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수라>는 9월 28일 관객들을 악인 열전의 한가운데로 초대할 예정이다.

스크린에 생생하게 살아난 ‘악인열전’
<아수라>(阿修羅)가 9월 21일 CGV왕십리에서 뜨거운 취재 열기 속에 언론시사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자리에는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과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이 참석했다. 정우성은 “데뷔하고 오랜만에 굉장히 초조하고 설렜다. 보여드리고 나니 마음은 후련하다”라며 <아수라>를 처음 선보인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한도경’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따라 들어가보자고 생각했다. 연기나 리액션에 대한 계산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았다”며 ‘한도경’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노력했음을 덧붙였다. ‘절대악’을 실감나게 묘사한 황정민은 “‘박성배’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사는 사회나 모든 세태들이 대단히 이기적이다. ‘박성배’ 역시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악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악인 역할이지만 편안하게 인물에 몰입하려 했다”고 밝혔다. 4명의 배우와 모두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주지훈은 “관객으로서, 후배로서 존경해온 선배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처음부터 신이 났다. 마치 제가 가지고 있는 버킷리스트 몇 개를 한꺼번에 달성한 느낌이었다. 선배님들과 한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신이 나서 매일 소풍 가기 전에 잠 못 자는 기분으로 촬영을 했다. 재미있었고 굉장히 많이 배웠다”며 설레었던 촬영 당시의 기분을 털어놨다. 전작의 캐릭터와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곽도원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다른 전문직 캐릭터들은 권력을 쓰는 모습에 중점을 두었다면, <아수라>의 ‘김차인’은 권력을 잃었을 때, 사람이 가장 강할 때와 나약할 때, 인간의 내면이 작품에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표현하기에 굉장히 달콤한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라며 영화 속 그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정우성과의 액션 장면에 대한 질문에 정만식은 “정우성 씨를 앉혀놓고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국보를 대하듯, 고려청자를 대하듯 그렇게 여겼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황정민은 “여기 모든 다섯 명의 배우들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미친 듯이 열심히 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똘똘 뭉쳤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줬다. 촬영하면서 이렇게 행복하게 작업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며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 김성수 감독의 범죄액션 장르 귀환
김성수 감독의 데뷔작인 <런어웨이>는 단편 느와르 <비명도시>의 모티브를 장편으로 확장시킨 영화로 당시 한국 영화계에 전무하다시피 한 느와르 장르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다. 그 직후, 배우 정우성을 한국 관객이 사랑하는 스타로 쏘아 올린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희망 없는 ‘청춘’과 ‘액션’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스타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은 정우성과 또 한 번 손을 잡고, 중국 올 로케이션을 감행한 <무사>는 도심의 어두움 속을 방황하는 청춘 군상을 주로 묘사하던 그가 고려 시대로 눈을 돌린 작품. 길고 매서운 창을 휘두르며 전 분량 스턴트 없이 직접 액션을 소화한 정우성의 액션은 비주얼의 스케일, 남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스타일과 맞물려 액션 연출에 남다른 역량을 지닌 그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한국을 덮친 메르스 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한국 최초로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의 공포를 다룬 재난영화 <감기> 또한 극단적 상황을 돌파해가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직접 느끼게 하는 큰 스케일의 사실감 넘치는 비주얼이 돋보였다.

Q. 정우성과 <무사> 이후 15년 만에 작품을 함께했다.
- <아수라>는 <무사> 이래로 처음으로 제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이다.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뒀던 영화고, 굉장히 하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함께하자고 얘기했다. 정우성씨는 시나리오도 보기 전에 출연하겠다고 했고, 정우성씨를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

Q. 정우성의 잘생기고 착한 얼굴의 어디에서 악함을 찾아내고 매료돼서 캐스팅 했나?
- 정우성씨는 제가 잘 아는데, 정말 신사다. 착하고, 욕도 안하고,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의 내에도 어두운 면이 있고, 또 그런 배우가 이 역할을 해줘야 이 ‘아수라’의 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간의 본성인 악함을 표현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우성씨가 맡은 악인은 여기 있는 사람과는 다른 악인이다. 악의 세계에 현실처럼 민주주의가 있지 않잖아요. 더 큰 악, 더 잔혹한 악, 정당함을 가장한 악, 이런 것들에 짓눌리다가 폭발하는 역할인데. 그 역할을 연기하려면 정우성씨의 착한 모습, 근사한 모습이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Q. 처음의 제목은 <아수라>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
- 처음 시나리오를 써서 제목을 '반성'이라고 붙였다. ‘반성’이라는 제목을 써서 영화사 한재덕 대표님께 시나리오를 드렸죠. 그랬더니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냐고, 느와르 영화인데 뭘 반성을 하냐고 하셨다. 반성하는 의미로 열심히 썼다고 했더니, 이런 제목을 하면 아무도 안 본다고 제목을 ‘지옥’으로 짓자고 했다. 그래서 싫다고 했죠. 제목이 이상하잖아요. 서로 이렇게 ‘지옥’으로 하자, ‘반성’으로 하자고 하다가, 황정민씨가 시나리오를 읽고 '아수라 판이네'라고 하더라. 그 말이 귀에 남아서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아수라의 뜻을 알게 됐죠. 너무 알려져서 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수라가 굉장히 용맹하고 지혜로운 존재이지만, 매일매일 싸우고 남을 시기하고, 하루 3번씩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보다 더 열등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인간과 축생 사이에 있는 의미가 ‘우리 영화 속 인물과 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 인물들이 아수라 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짓게 됐다.

Q. <아수라>만의 사실적인, 날 것의 싸움에 가까운 액션을 선보였는데…
- 액션 영화가 주는 근사하고 멋진 싸움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액션의 통쾌함보다는 액션의 통렬함을 전하고 싶었다.

Q. 영화에 다섯 캐릭터가 기억이 날 정도로 살아 움직인다. 이 다섯 캐릭터가 영화에 나와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지?
-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이 한꺼번에 나오실 줄은 몰랐다. 제가 정우성씨랑 친하니까 친분으로 꼭 좀 해달라고 했다. 아마 이렇게 다섯 분과 같이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게, 한 사람의 영화 감독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호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런 기회를 저 자신도 그렇고 다른 감독들도 쉽게 얻지 못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캐스팅 되었을 때 정말 좋았지만 굉장히 부담도 됐다. 같이 일하는 동안 현장에서 이 분들이 굉장히 성실하게 해주셨다. 특히 황정민씨, 곽도원씨. 두 분 다 천재적인 연기 능력이 있어서 굉장히 즉흥적으로 연기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지독한 연습 벌레였다.

Q. 오랜만에 범죄액션 장르를 만들었는데, 뭘 가장 신경 썼나?
- 사실 <아수라>는 필름 느와르의 어두운 세계를 상상한 가상 세계이다. 거기서 시시한, 별 볼 일없는 악당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한 상황을 따라가는 범죄액션 극인데. 만약 사악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쥐고, 그 자를 응징해야 하는 정의도 악에 물들게 되면, 힘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지만, 남자들이 중년이 되면 더 이상 내 꿈에 내가 다가갈 수 없다는 걸 느끼니까 어떻게든 현재에서 생존하려고 하지않나. 그 생존하려는 현실이 악이 난무하는 세계라고 영화적으로 설정을 해서. 그렇게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세계가 펼쳐지게 되면, 어떤 유명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힘없고 평범한 악당들은 더 거대한 악에 희생물이 되고 이용당하고. 그런 고통의 아수라장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줄기를 만들어놓고 관객들이 볼 때, 이 영화 속의 공간들이 우리가 어디선가 봤음직한. 한국의 어디인 듯한 느낌. 그래서 공간을 찾아냈고. 공간들을 찾을 때 원칙이 최소 40년 된 공간만 찾았다. 그런 어두운 이야기, 이런 인물들이 활보하고 다닐 법 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Q. 정글 속 맹수들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악인들의 팽팽한 대결을 그려낸 이유가 있나?
- 밟히면 밟히는 게 인간이지만 또 계속 밟히면 고개를 치켜드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액션영화에서의 선악 구도나 정의가 이기는 이야기보다는 온전히 악인들만 등장하는, 악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