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임진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 임진성의 작품에서는 펼쳐지는 생명의 기운, 빠르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는 강렬한 채묵의 화면이 분출하는 에너지처럼 거칠면서도 정교함이 묻어난다.

▲ 현대 미술계의 새로운 기법 ‘지두화(指頭畵)’ 시대를 개척한 작가 임진성

작가 임진성은 한국화단에서 모필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기능성을 배제하고 손으로 이를 대신함으로써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기세와 기운을 중시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고 먹을 뿌리듯 퉁겨내고 흩날려 일정한 동세를 설정하고 손가락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이 돋보인다.

생명의 움직임 표현하는 도구로 손 선택
“둔탁한 손바닥 선은 굵직한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죠. 소재에 따라 지법도 다르지만 다듬어지지 않는 원초적 생명의 선을 그릴 수 있다는 것, 그 다음에 미묘한 촉감에 의해 지두화가 완성된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려요. 처음 손가락의 특성상 간결하게 그리고 보니 내용의 깊이가 부족해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서 추상적인 느낌을 더해 내용을 충실히 보강하고 보다 치밀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작업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려요.” 작가 임진성은 손을 먹물에 담그고 손가락이나 손톱 끝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를 ‘지두화(指頭畵)’라고 한다. 지두화는 일반 모필과 비교하여 부드럽고 유려한 선의 맛은 덜하고 상대적으로 둔탁한 것이지만 날카롭고 둔중한 필선은 모필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묘미가 있다. 것이다. 중국의 경우 당(唐)나라 때 이루어졌으며, 청(淸)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고 고기패(高其佩)가 대표적인 지두화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정(沈師正)이나 최북(崔北), 윤제홍(尹濟弘) 등이 그렸다고 하지만 큰 대세를 이루지는 못하였던 이색화풍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두화가 표현의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닌
작품을 생명화시키는 교감체로서의 손과 화선지라는 사물과의 하나 됨 추구

표현 자체의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작가 임진성은 자연의 변화와 생명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도구로 손을 선택했다. 작가는 “이는 흉중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충동을 화선지와 맞닿는 순간의 감흥과 더불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고 자신의 지두화 기법에 대해 설명한다. 이 같은 방법은 작가의 영혼 그리고 육체와 먹물 화선지가 직접적으로 상응하는 논리를 구축하고 있다. 즉 붓을 사용한 필선 위주의 감각적인 것이 아닌 기세와 기운을 중시하며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 임진성의 지두화는 형사(形寫)표현에 유리한 붓보다 거칠고 투박한 면과 둔탁하면서도 일정하지 않은 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매끄럽지 못한 선들이 오히려 정돈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의 활발하게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원초적 생명의 상을 그려내기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만물일체로서의 생명의 신비와 마음의 표현에 있어 지두화가 표현의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닌 작품을 생명화 시키는 교감체로서의 손과 화선지라는 사물과의 하나 됨을 추구하고자 했다.

▲ 生生不息-易, 136x136cm 화선지에 채색. 지두화 2011

전통적인 수묵관의 대척점에 자리한 작품세계
빠르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는 강렬한 채묵의 화면은 작가 임진성(任眞聖)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특징이다. 이는 마치 분출하는 듯한 에너지와 거칠고 투박한 기운이 혼재하는 무겁고 검은 세계이다. 종이와 먹이 어우러지며 이루어내는 발묵과 파묵의 소용돌이는 원초적이라 할 만큼 다듬어지기 이전의 강한 기세를 지니고 있다. 일견 지나치게 분방하고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 작가의 수묵세계는 정교하거나 유려한 전통적인 수묵관과는 분명 일정한 거리가 있다. 둔탁하고 거칠며 빠르고 격정적인 작가의 작업은 오히려 전통적인 수묵관의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이는 그가 구사하고 추구하는 방법과 작업 의지가 분명 남종문인화적인 전통 심미에 일방적으로 함몰되어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두화 특유의 필선에 의한 형상의 재현이 아니라
거대한 기운과 기세의 흐름이 자리잡아

“자연의 움직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적인 것과 뚜렷하게 드러나는 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것을 내적, 외적 움직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인 움직임은 고요한 울림이며, 조용히 뛰고 있는 심장의 맥박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외적인 움직임은 커다란 떨림, 외부의 환경과 더불어 움직여주는 자연스러운 리듬이라 생각한다.”(작가 임진성의 작업노트 中) 작가 임진성의 지두화는 필선 위주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기세와 기운을 중시한다. 먹을 뿌리듯 퉁겨내고 흩날려 일정한 동세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형상을 구축하고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 방식인 셈이다. 때문에 작가의 작업에는 지두화 특유의 필선에 의한 형상의 재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기운과 기세의 흐름이 자리한다. 작가 임진성은 이를 “삶의 리듬”, 혹은 “생명의 움직임”이라 말한다. 지두화라는 작업 특성상 작가는 이러한 떨림, 혹은 울림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접촉하고 다스리며 종이위에 빚어내고 있다. 종이와 먹과 같은 물질의 성질과 그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맥박과 호흡을 함께 느끼고 대자연의 생기를 포착하여 이를 일정한 기운이나 기세로 드러냄이 바로 작가 임진성의 작업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 生生不息, 170x450cm 화선지에 채색. 지두화 2012

새로운 도전으로 지두화의 새 장을 열다
현대 미술계의 새로운 기법 ‘지두화(指頭畵)’ 시대를 개척한 작가 임진성.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서 학·석·박사를 마친 후 모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인 작가 임진성은 작업 초기에 여러 가지 오브제를 사용해 작품을 구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물감 냄새가 역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휘발성이 섞인 여러 가지 안료와 페인팅 재료 등이 후각을 자극해 두통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후 작가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인공적인 재료 대신 고전적인 수묵 재료를 주로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곧 작업의 한계를 느끼게 된 그는 자신의 개성을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작업을 끝내고 손에 묻은 먹물을 닦기 위해 화선지를 문지르게 되었다. 문득 느낌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붓 대신 손으로 그리는 지두화 작업을 고려해 화폭에 옮겼다. 이것이 그가 지두화 작업을 시작한 계기다.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도 생명이다.
조화는 서로 다른 것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것”

지난 2008년 전시회 당시 작가는 먹의 발묵(潑墨)과 파묵(破墨) 그리고 금분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그리고 지난 3월 가졌던 전시회에서는 이전까지 그의 수묵지두화가 가졌던 독특한 필획과 발묵효과를 감소시킨 대신 아크릴과 먹, 수묵과 채색과 같은 이질적 요소들을 화면의 중심요소로 만들었다. 동양의 먹과 서양의 아크릴, 수묵과 채색처럼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공존시키기 위해 작가는 배채법을 사용하였다. 즉 먹을 종이의 뒤편에서 우려 은은한 깊이를 주는 바탕을 만든 후 화면의 앞에서 붉은 아크릴을 손에 묻혀 형상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시각적 효과는 조화보다는 생경하게 충돌하는 선의 흐름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도 생명이다”며 “조화는 서로 다른 것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늘 새로운 도전으로 한국지두화의 새 장을 열고 있는 작가 임진성. 그의 도전이 앞으로 또 어떠한 성과를 가져올 지 사뭇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