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하락세를 보인 것도 잠깐, 자고 나면 어김없이 기름값이 오르다 보니 소비자들의 체감도도 둔감해져 휘발유 값이 2100원에 가까워져도 석유 소비량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 기름값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투명한 석유제품의 전자상거래와 정유사의 합의에 의한 혼합판매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휘발유 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전국 평균 ℓ당 2000원대를 훌쩍 넘었지만, 정부의 해법은 1년째 제자리라는 비판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기름값 상승세가 조만간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국제유가 불안요인은 여전한 상황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국내 경제 성장률에도 악영향
기름 값이 심상치 않다. 이란발 리스크로 국제 유가가 고공비행을 하면서 한국의 ‘기름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재의 유가 상승 원인은 작년 초에 메나 사태라고 해서 중동의 불안, 리비아, 이집트 등의 불안 등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크게 불안했던 이란은 특히 세계 4위의 산유국이기 때문에 이란의 불안은 유가 상승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란은 작년부터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각국이 시장에 돈을 푸는 정책을 많이 하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즉 이란에 자금의 유입이 증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란에 유입된 자금은 원자재 시장, 특히 국제 유가, 선물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유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기관마다 유가 상승이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조금은 다르게 평가하지만, 국제 유가가 10% 정도 상승할 때 최소한 소비자 물가가 0.2% 포인트 이상은 오를 거라고 예상하는 기관이 많다. 국제 유가 상승은 물가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관계가 크다. 지금 물가가 불안하고 특히 서민 물가가 불안한 상태로, 국제 유가 상승은 현재도 어려운 상황에서 더 물가 상승을 부추겨서 서민 물가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또 물가가 오르면 국내 소비도 위축되고, 국내 경제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최고경영자(CEO)들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CEO 2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4.4%가 연 평균 국제유가를 100~120달러 수준으로 내다봤다. 120~140달러라는 응답이 40.3%에 달한 반면, 100달러 미만이라는 응답은 4.2%에 그쳤다. 이는 대다수의 CEO들이 고유가 현상의 장기화에 공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이란과 서방국의 갈등(4.24%)이 꼽혔다. 나머지 응답은 신흥국 에너지 수요 증가(24.5%), 이라크 등 기타 산유국의 내정 불안(16.9%) 순이었다. 앞으로 5년 내에 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은 편(44.9%)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높은 편과 매우 높은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27.3%를 차지했다. CEO들은 이 같은 고유가시대의 대책으로 정부 투자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개발 지원(35.9%)과 에너지 절감기술 개발 지원(27.5%)을 주문했다.

시민단체와 업계 “유류세 인하” 목소리 거세

▲ 기름값 2000원, 연비 좋은 차 수요 급증

시민단체들과 업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부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유류세 인하를 주장한다. 작년에는 정유사들에 기름값 인하를 강제하다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만큼, 이번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복지지출 수요 때문에 세수감소를 촉발시키는 유류세 인하정책을 취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저소득층에게는 기름값을 낮춰주는 것도 복지정책인 만큼 정부의 반대 논리가 궁색하다는 입장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유류세는 기름 값의 48%가량을 차지하는데 이는 수입원가(46%)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불공평한 유류세 25조원과 지난해 거둔 교통세 13조9701억원은 당초 세수예산보다 2조2751억원 추가 징수됐는데 결과적으로 어려운 계층에게는 세금이 더 부과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유류세를 인하하자는 국민의 요구가 높은데도 정부가 귀를 닫고 오히려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원 아주대 법학교수는 “유가가 오르면 탄력세율이 내려가야 가격이 고정되는데 하방 조정이 안 돼 세금부담 액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국제유가 변동 폭에 따른 탄력세율 기준을 법률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사들 역시 찬성한다. 정유업계는 유류세를 10% 내리면 휘발유 가격이 ℓ당 평균 80원 정도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지난해 100일 동안 기름값을 ℓ당 100원 인하해 정유사가 희생한 만큼 이번에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로 화답할 차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유류세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4월 12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휘발유가격과 관련해 “유류세 인하는 누차 얘기한 것처럼 효율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홍 장관은 “휘발유가격이 현재 높긴 하지만 오늘(4월 12일) 두바이유가 116달러대에 머물렀고 싱가포르 유가도 안정기조에 들어갔다”며 “원산지 가격이 우리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2주라고 볼 때 앞으로 시장 가격도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유류가격 안정을 위해 알뜰주유소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전자상거래나 혼합휘발유 등은 시행 초기 단계라 아직 정착되진 않았지만 모든 것은 휘발유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유류세 인하 실현 어려울 듯

▲ 기름값 인하 정책이 헛발질함에 따라 유류세 인하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유류세 인하가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교통비 등의 물가 압박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재로써는 기름값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국제 유가가 내려가거나 유류세를 낮추는 방법이 전부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기름값 급등과 관련해 “공급이 과점 형태여서 이런 일이 지속되는지 유통 체계, 제도 등의 개선을 통한 기름값 관리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이 대통령은 기름값 인하의 핵심인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 기름값이 100일 넘게 상승하고 있지만 정부의 기름값 인하 정책이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알뜰주유소 확대와 석유제품의 전자상거래 도입 등의 대책을 내놓았으나 그 효과에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기름값 인하 정책이 헛발질함에 따라 유류세 인하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유류세 인하가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여전히 ‘국제유가 130달러’라는 기준을 내세우고 있으며 지난 4월 11일 총선 결과 유류세 인하에 적극적이던 민주통합당이 원내 과반석을 차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1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국내 유가안정을 위해 알뜰주유소,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다양한 유가안정 대책을 담은 내용에 관해 관계부처 협의가 마무리됐다"며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발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란 제재와 신흥국 경기회복 등으로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국내 기름 값도 계속해서 상승하는 상황”이라며 “유가가 최근에는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경부는 지난 4월 19일 ▲석유 유통구조 개선 및 경쟁 활성화 ▲혼합 석유판매 제도개선 ▲석유 전자상거래 확대 ▲알뜰 주유소 활성화 등이 담긴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석유시장 투명성 제고 및 경쟁촉진 방안’ 발표 이후 1년 만이며, 지난해 11월 알뜰주유소 등의 대책을 내놓은 지 5개월 만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유류세 인하’는 이번 대책에서 제외됐다. 이번에 나온 대책도 지난해 대책들과 마찬가지로 석유시장 경쟁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삼성토탈’이라는 제5의 정유사의 참여로 경쟁을 최대화시켜, 정유 4사로 이뤄진 과점 체제를 최대한 경쟁구도로 바꿔 기름 값을 떨어뜨리겠다는 내용을 대책에 포함시켰다. 또 정부는 혼합 석유판매 제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혼합 석유판매는 특정 정유회사의 기름만 팔고 있는 주유소라도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일정 비율 섞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지경부는 혼합 석유판매가 활성화되면 그만큼 4대 정유사 간 경쟁이 유발돼 기름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반 주유소 대부분은 특정 정유사의 기름을 100% 구입하는 약정을 맺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기름을 구입할 기회마저 뺐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경부는 이에 혼합 석유판매의 선결 조치인 전량 구매계약 관행을 80%선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앞으로 주유소 의사를 무시하고 전량 계약을 고집하는 정유사를 불공정 행위 당사자로 간주, 제재할 방침이다.

석유제품의 혼합 판매 도입 주장도 제기
2000원대에 육박하는 기름값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투명한 석유제품의 전자상거래와 정유사의 합의에 의한 혼합판매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소비자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혼합판매·현물전자상거래 새로운 석유시장 소비자에게 과연 이득인가?’라는 공청회에서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윤원철 교수는 “정부가 20% 혼합판매를 허용함에 따라 정유사와 주유소간 거래 계약 기준을 개정해 월 판매량의 20% 까지 혼합석유제품을 판매 할 수 있다”며 “정유사가 이러한 거래기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주유소 유치경쟁을 통한 혼합판매증가로 공급가격 인하를 기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정유사와의 사전 계약 합의를 통해 구분 없이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는 “혼합판매를 할 경우 소비자에게 알리고 저장탱크나 주유기 분리조치에 대한 제한을 정유사와의 합의를 통해 구분저장요건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저장탱크 구분 폐지 ▲혼합판매 표시 광고 요건 폐지 ▲공급자별 구분저장 요건 폐지 ▲정유사와 주유소간의 전량구매 조건 완화 등을 제시했다. 이에 한국석유 관리원 김기호 팀장은 “SK, GS,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별 석유제품을 개별 또는 균등하게 혼합하여 품질을 차량에 미치는 결과를 연구한 결과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휘발유의 경우 옥탄가, 동판부식, 산화안정도, 경유의 경우 세탄가, 저온특성, 동판부식 등 혼합해 실험한 결과 품질 평가에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2009년~2011년부터 3년 간 휘발유 차량은 YF소나타, 경유차량은 싼타페로 혼합제품을 실험한 결과 연비, 배출가스 등 성능평가를 실험했지만 혼합에 의해 차량 성능이 저하되는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송보경 소시모 석유시장감시단장의 사회로 지식경제부 문신학 석유산업과장, 대한석유협회 이원철 상무, 한국주유소협회 김문식 회장, 이승창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법무법인 남산 문미란 이사, 오숙영 오즈리서치 대표, 법무법인 국민 추승우 변호사와 법무법인 세종 천준범 변호사들이 참석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