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이야기할 때 이제는 무비컬, 드라마컬, 노블컬 등의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들어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무비+뮤지컬)’,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컬(드라마+뮤지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블컬(노블+뮤지컬)’의 열풍이 거세다. 흥행에 성공하면 ‘원작의 재발견’, 안되면 ‘지루한 우려먹기’가 될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진화양상을 들여다보았다.

▲ '러브어게인'을 통해 브라운관에 데뷔하는 뮤지컬 배우 류정한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들이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2007년 무비컬 ‘싱글즈’를 필두로 ‘미녀는 괴로워’, ‘라디오스타’, ‘내 마음의 풍금’, ‘마이 스케어리걸’, ‘웨딩싱어’, ‘드림걸즈’, ‘빌리 엘리어트’, ‘금발이 너무해’ 등이 무대에 올라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무비컬의 열풍은 이제 한류 열풍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드라마컬로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노블컬, 애니컬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렇게 무비컬, 드라마컬 등의 양적 팽창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라는 현상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양상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OSMU(원소스멀티유즈)시대를 맞아 뮤지컬 역시 다양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제작되고 있다. 영화, 드라마, 소설은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결합하기에 좋은 장르로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쏟아지는 무비컬, 창작뮤지컬의 대안?

▲ 무비컬 '미녀는 괴로워'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뮤지컬 무대로 옮겼다

최근 국내 뮤지컬 발전의 초석은 영화였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일명 ‘무비컬’이 뮤지컬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며 국내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다수의 한국영화들이 뮤지컬로 제작돼 왔다. 지난 2007년 ‘싱글즈’는 초연 이후 6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무비컬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뒤를 이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와 ‘즐거운 인생’, ‘댄서의 순정’, ‘진짜 진짜 좋아해’, ‘내 마음의 풍금’, ‘미녀는 괴로워’, ‘주유소 습격사건’ 등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 밖에 흥행에 성공한 ‘번지점프를 하다’, ‘완득이’, ‘과속스캔들’ 등의 영화도 뮤지컬로 제작돼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완득이’는 현재 홍익대가 종로구 대학로캠퍼스 내에 짓고 있는 뮤지컬 전용 극장 개관작으로 준비 중이며, 연말께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뮤지컬 ‘완득이’는 2009년부터 뮤지컬화 작업에 들어가 3년에 가까운 제작기간을 거쳤다는 게 후문이다. 이렇게 무비컬이 끊임없이 창작뮤지컬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작의 성공이 그대로 뮤지컬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단순히 원작의 인기나 유명세에 기대어 뮤지컬로 기획, 제작한다면 이는 실패의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무비컬은 이미 검증된 영화가 주는 탄탄한 스토리와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하지만, 자칫하면 원작의 이미지를 손상하거나 그늘에 가려 뮤지컬만의 매력적인 요소를 끌어내지 못할 수 있다. 또, 시간·공간적 제약이 자유로운 영화를 무대로 옮기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상 매끄럽지 않을 수 있으며, 원작과 뮤지컬 사이의 메커니즘과 표현 방법의 차이에 있어 그 한계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한때 무비컬의 개념 정의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원작이 무엇이든지 뮤지컬의 장르적 완성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아무리 성공한 영화라고 해도 영상미와 스토리의 서사성을 감안해 기획해야 하며,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닌, 뮤지컬의 특성인 춤과, 노래, 음악의 삼박자가 적절하게 어우러져야할 것이다.

무비컬 안에 ★ 있다

▲ 무비컬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뮤지컬 '싱글즈'

무비컬은 기타 뮤지컬에 비해 가수, 배우 등 연예인 참여 비율이 높다. ‘싱글즈’의 이현우와 손호영, ‘라디오 스타’의 김원준과 정준하, ‘미녀는 괴로워’의 송창의와 카라 박규리, ‘내 마음의 풍금’의 이지훈, ‘금발이 너무해’의 소녀시대 제시카와 에프엑스 루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28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막을 올린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무대에 옮긴 작품으로 배우 엄기준, 박광현, 김정훈,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규현, 소녀시대 써니, 샤이니 키 등이 출연해 현재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연예인들의 뮤지컬 진출 러시는 뮤지컬 업계의 호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가능해졌다. 이들은 가수와 배우 출신이라는 대중의 높은 인지도를 살려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처럼 연예인들의 캐스팅은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홍보와 마케팅, 투자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준비도 되지 않은 연예인들의 무분별한 캐스팅은 뮤지컬 수준을 하향평준화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력이 부족함에도 단순히 스타성에 의존해 몇몇 연예인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은 오랫동안 앙상블, 조연 등을 통해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온 전문 뮤지컬 배우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뮤지컬 배우 출신들의 TV 예능, 드라마, 영화로의 진출이 러시를 이루며 대중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고 있다. 오만석, 엄기준, 신성록, 김무열, 김동호 등을 비롯해 최근 영화 ‘건축학개론’과 MBC 수목드라마 ‘더킹’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조정석, 데뷔 이후 처음으로 JTBC 수목드라마 ‘러브어게인’으로 브라운관에 데뷔하는 뮤지컬계의 스타 류정한 등이 눈길을 끈다. 임태경과 소냐 또한 KBS 2TV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제는 드라마컬이 대세

▲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드라마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한류 드라마의 대표작 ‘겨울연가’와 ‘대장금’, 높은 시청률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선덕여왕’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배용준과 최지우를 한류스타로 만든 ‘겨울연가’의 뮤지컬 버전은 지난해 원작 드라마를 연출한 윤석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재공연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이 연달아 제작돼 선보였으며, 케이블 TV 드라마로 큰 인기를 모았던 ‘막돼먹은 영애씨’도 뮤지컬로 다시 태어나 관객들과 만났다. 이 외에도 ‘파리의 연인’, ‘미남이시네요’, ‘공주의 남자’, ‘마이 프린세스’, ‘드림하이’ 등이 드라마의 인기와 명성을 이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004년 ‘애기야 가자’ 열풍으로 물들인 화제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최근 뮤지컬로 옷을 갈아입었다. 당시 ‘파리의 연인’은 57.5%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2004년 삼성경제연구소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 드라마를 넘어서 ‘킬러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받았다. 이렇게 지난 4월 5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뮤지컬로 새롭게 선보인 ‘파리의 연인’은 작년 말 진행된 쇼케이스를 통해 높은 퀼리티를 선보였으며, 국내 초연에 이어 일본 시장 진출을 협의 중에 있다. 한편, 지금까지 국내에서 작품적으로나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컬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방대한 스토리를 뮤지컬 특성상 2시간이라는 시간에 압축해야하는 어려움과 원작의 다양한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되살려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책속 이야기가 무대로… ‘노블컬’ 전성시대

▲ 뮤지컬 '모비딕'은 미국 소설가 겸 시인 허먼 벨빌의 소설이 토대가 된 작품

뮤지컬 ‘닥터지바고’, ‘맨오브라만차’, ‘서편제’, ‘모비딕’, ‘위키드’ 등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소설이 무대로 나온 이른바 ‘노블컬((Novel+Musical)’이란 점이다. 소설은 오래 전부터 연극과 뮤지컬의 인기 콘텐츠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 소설을 각색한 ‘기발한 자살여행’, 정이현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달콤한 나의 도시’, 김영하 원작의 ‘퀴즈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이 창작뮤지컬로 선보인 바 있다. 노블컬의 원조는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이 토대가 된 뮤지컬 ‘명성황후’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0년 넘게 우리나라 대표 창작뮤지컬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외국의 경우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 드 파리’ 등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뒀다. 올해 국내에 선보여지는 대표 노블컬로는 ‘서편제’, ‘모비딕’, ‘닥터지바고’, ‘위키드’ 등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소설가 겸 시인 허먼 벨빌의 소설 ‘모비딕’이 뿌리가 된 뮤지컬 ‘모비딕’은 액터-뮤지션 뮤지컬을 표방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특히, 7명의 배우가 연기와 노래 뿐만 아니라 악기까지 연주하며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병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로 가져온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5월 31일부터 한남동의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린다. 이 작품은 오즈의 마녀들에 대한 이야기로 초연 이후 9년째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노블컬의 매력은 책의 언어들이 무대 위에서 화려한 춤과 노래, 연기로 현실화된 모습을 볼 수 있어 원작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절묘한 조합, ‘크로스오버’ 시대

▲ 아이돌 가수, 배우 등 연예인이 대거 캐스팅된 무비컬 '캐치 미 이프 유 캔'

크로스오버는 하나의 장르에 또 하나의 다른 장르 요소가 합해져 만든 것을 뜻하며 가요, 문학, 공연,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그 범위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국악과 랩, 발레와 비보잉 등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 장르는 절묘한 배합에 의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팝페라, 무비컬 등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클로저’, ’살인의추억’, ’왕의남자’, ’웰컴투동막골’, ‘웃음의대학’, ‘연애희곡’의 공통점은 모두가 연극에서 탄생한 영화들 이라는 것. 지난 2010년 문근영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연극 ‘클로저(Closer)’. 많은 대중들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클로저’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클로저’는 1995년에 초연된 연극을 원작으로 1995년 영화화 되었다. 한동안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연극, 뮤지컬로 제작되는 붐이 일면서 ‘무비컬’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무대로 옮겨 무대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작품 중에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을 예로 들 수 있다. 2009년 초연된 이 연극은 친정엄마라는 아이콘에 대한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박진희 주연의 영화 ‘친정엄마’로까지 이어졌다. 뮤지컬계 장르의 크로스오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 크로스오버 뮤지컬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무비컬 ‘싱글즈’는 스토리와 음악을 결합시킨 새로운 장르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며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드라마, 영화, 애니의 세 장르를 넘나드는 특별한 감동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어 국내외 뮤지컬계의 크로스오버 열풍은 지속될 전망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