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 박희태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 여 만에 임기를 3개월여 남겨둔 상황에서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국회의장이 검찰수사와 관련해 중도에서 물러나는 것은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 고승덕 의원의 돈봉투 수수를 폭로하면서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번 사퇴로 박희태 의장은 이승만, 이기붕, 박준규 등에 이어 국회의장 임기를 마치지 못한 역대 4번째 의장이 됐다. 박 의장은 사퇴문에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국회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며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 관련된 사람이 있으면 저의 모든 책임으로 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대 동봉투 사건으로 박희태 의장 사퇴
박희태 의장의 사퇴 배경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 4일 고승덕 의원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처음 공개했다. 고 의원은 검찰 진술 당시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의장이 대표로 당선된 다음날 오전 당시 보좌관을 통해 돈 봉투를 돌려줬으며, 그날 오후 박 의장 측의 한 인사로부터 “왜 돌려줬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전화를 걸어온 인사가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라고 추가 진술했다. 이번 사건으로 사퇴한 김 전 수석은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의장 캠프 상황실장을 맡았으며 박 의장이 대표로 당선된 이후엔 대표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김 전 수석은 “고 의원과는 단 한마디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해왔다. 현재 검찰은 고승덕 의원의 진술을 토대로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직자들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 왔다. 특히 검찰 측은 지난 2월 3일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 선거캠프에서 일한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인 안병용 씨를 구속 기소했다. 안 씨는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서울지역 구 의원 5명에게 2천만원을 주고 이를 다시 서울지역 당협 사무국장 30명에게 50만원씩 나눠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 씨는 검찰 조사에서 “돈봉투를 전달하려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검찰에 출석한 구의원들은 “안씨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구의원들의 진술과 자택에서 압수한 자료에서 안 씨의 혐의를 입증할만한 자료도 확보했다. 구의원들은 안 위원장이 돈 봉투 전달 대상이라며 건넸다는 서울지역 48개 당협 위원장 명단도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구의원들이 제시한 명단에는 당시 한나라당 당협위원장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일부 위원장의 이름 옆에는 ‘○’ 표시가 적혀 있었다. 구의원들은 48개 당협 중 30곳에 돈 봉투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은 수사가 시작되자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 있던 당협위원장 명단을 파기했으며 검찰은 이를 증거인멸 시도로 파악했다. 안 위원장은 이 명단이 돈 봉투 전달용 리스트가 아니라 성향분석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구의원 중 김모씨는 당시 동료들과 함께 박희태 후보 캠프가 있던 여의도 대하빌딩에 모여 있다가 안 위원장과 함께 4층으로 올라갔고 그때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책상 위에 있던 돈 봉투를 들고 내려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안 위원장을 상대로 돈 봉투의 출처를 캐물었으나 안 위원장은 “돈 봉투 자체를 돌리라고 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구의원의 관련 진술이 나옴에 따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돈 봉투 전달 과정 또는 지시에 개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 수석을 소환 조사했다. 돈봉투 살포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 전 수석이 출석함에 따라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달으며 사실상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수석을 상대로 직접 돈 봉투 살포를 지시했는지, 박희태 후보에게 이를 보고했는지 캐묻는 한편 수사개시 이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부하직원들에게 검찰에서 허위진술할 것을 강요했는지 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관련자 진술과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확보한 정황 증거를 들이밀며 김 전 수석을 압박했다. 김 전 수석은 ‘돈 봉투를 돌리라고 직접 지시한 사실은 없다’는 취지의 진술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안 씨가 박희태 국회의장 선거캠프에서 일한 만큼 구의원들을 통해 전달하려 한 2천만원이 윗선에서 지급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 출처 조사에 나서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박희태 국회 의장은 법무장관을 지냈다. 1988년 경남 남해·하동에서 당선된 이후 6선을 거친 박 의장은 대변인, 원내총무, 최고위원, 국회부의장 등 한나라당과 국회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천했던 그는 친이계의 지원을 받아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 2009년 10월에는 경남 양산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이듬해인 2010년 6월에는 18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됐다. 박희태 의장이 전격 사퇴함에 따라 후임 국회의장 선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법 제16조 보궐선거 조항에 따르면 의장 또는 부의장이 궐위된 때에는 지체 없이 보궐선거를 실시하도록 돼있다. 후임 의장은 18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오는 5월29일까지 약 3개월여간 의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직무대행 체제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도 “‘지체없이 보궐선거를 실시한다’는 표현도 꼭 후임 의장을 뽑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3개월 의장’인데 새로 선출해서 업무보고를 다 받는 것도 무리”라며 직무대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의장의 사퇴에 대해 여야는 엇갈린 반응

▲ 박희태 의장은 의장직을 사퇴

여야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전격 사퇴한 것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황영철 대변인은 “박 위원장은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박 의장의 사퇴소식을 전해들은 뒤 당의 입장을 이 같이 정리했다”고 전했다. 황 대변인은 “비대위 회의 후 당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박 위원장이 과거 비대위가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 사실을 환기시켰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비서의 고백을 보도로 보고서야 황급히 물러나는 박 의장에게서 날카로웠던 검사와 대변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슬프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러날 사람은 알아서 물러나고 책임질 사람은 알아서 검찰로 가길 바란다”면서 “이 배경에 누가 있는지 국민은 모두 안다. 이제 권력은 거짓의 가면을 벗고 백일하에 나오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신 대변인은 “고명진 전 비서의 고백은 의장실 돈봉투의 진실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많은 슬픈 진실을 보여줬다”며 “고명진과 일면식도 없다고 숨었던 정무수석의 거짓과 가면은 이제 벗겨졌다”고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을 겨냥했다. 또 “모든 진실을 알고도 꿈쩍하지 않는 검찰은 권력의 우산이자 심부름꾼이자 아바타임을 증명했다”며 “의장실과 화장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행세를 한 이유가 드러났다”고 검찰의 수사행태를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문정림 대변인은 “사퇴의 시기가 너무 늦었다”며 “의장직 사퇴에 이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변인은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모두 자기 책임으로 돌려달라면서도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한종태 국회 대변인이 노코멘트라고 답했다”며 “책임을 왜 지는 것이며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끝까지 권력에 집착하다가 불명예 퇴진하게 된 최초의 현직 의장이 된 것은 어찌할 것이며 대한민국 국회의장직의 위상과 명예를 추락시킨 것은 어찌할 것이냐”면서 “박 의장은 검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심정으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전모를 한 줌 의혹 없이 모두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 “박 의장은 이제라도 스스로 검찰에 나가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의원직도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천 대변인은 “박 의장은 버티고 버티다 고명진씨가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것”이라며 “자신들의 불법을 아랫사람에게 뒤집어 씌워가며 자리와 권력에 연연하는 모습에 국민은 혐오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돈봉투 살포 사건의 윗선 있나

▲ 돈봉투 살포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소환조사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고승덕 의원실로부터 돌려받은 300만원 돈봉투 관련 진술을 번복하면서 돈봉투 살포 사건의 ‘윗선’을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9일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최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비공개로 출석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고승덕 의원실로부터 돌려받은 돈봉투의 사후처리에 대해 진술했다. 앞서 고씨는 “돈봉투는 개인적으로 썼으며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9일 진술에서는 기존의 진술을 뒤집어 “돈봉투를 조정만 수석비서관에게 반납하고, 김효재 캠프 상황실장에게도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는 “책임 있는 분이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렸다”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돈봉투 살포 연루 의혹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고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도 지난 2월 10일 전당대회 돈살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김 수석은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면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수석은 비록 “고 의원과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부인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결국 정해진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로써 김 수석은 지난 2011년 6월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고 임명된 지 8개월 만에 낙마하게 됐다. 그동안 김 수석은 돈봉투 살포 의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되자 이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의 사의 표명은 연루 사실을 부인하던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인 고명진씨가 고승덕 의원 측으로부터 300만원을 되돌려 받고 이를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 수석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한 뒤 하루 만에 이뤄졌다.

특정 후보들에게는 ‘기업 스폰서’ 있어

▲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는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친이계가 대거 포진했다

최근 돈봉투 수수문제가 불거지면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공공연한 돈거래가 이뤄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에 따라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의 출처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각 후보가 쓸 수 있는 법정 선거비용은 기탁금을 제외하고는 1억원 남짓이지만 실제로는 선거비용의 수십 배에 달한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전당대회 경선 후보의 스폰서 역할도 했다”고도 말한다. 정치권에서는 캠프에 참여하거나 적극 지지한 의원 등의 경우 돈 봉투 전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모든 의원 등에게 돈 봉투가 전달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캠프에 참여한 인사들을 비롯해 친인척 등 지인, 기업 등이 스폰서를 해왔다”고 설명한다. 한 관계자는 “나중에 당직을 맡을 것으로 기대하는 인사들이 봉투를 갖고 오고, 일단 캠프가 출범하면 공식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 현금으로 돈을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박희태 후보의 경우 친이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친이계 인사들이 십시일반해 자금을 후원했거나, 자금줄을 연결시켰을 것”이라며 “박 후보가 당시 청와대의 지지를 받은 만큼 2007년 대선에서 남은 대선 잔금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전대에 투입되는 돈의 출처와 규모, 용도는 극소수 인사 외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네거티브 막말 공방으로 가장 과열된 양상의 선거전이 치러진 2010년 전당대회의 경우 막대한 선거자금이 쓰였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당시 모 후보측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특정 후보 측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후원했다는 소문이 났다”며 “기업의 경우 공천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고 ‘잘 봐달라’는 취지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당협위원장들의 노골적 요구도 막대한 전대 자금을 투입케 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나라당 취약지역 당협의 경우 한 후보가 500만원을 주고 다른 후보가 100만원을 지원했을 경우 정확히 대의원표를 5대 1로 나눈다는 말까지 있다”고 전했다. 문제가 되는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는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친이계가 대거 포진했다. 최병국 의원을 중심으로 친이계의 핵심인 안경률 의원이 총괄본부장을 맡았고, 대선 당시 경선대책위 부위원장이었던 정의화 의원과 고흥길 의원이 고문을 맡았다. 전대 직후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은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은 당시 메시지를 전담했고, 재선의 진수희·차명진 의원은 캠프의 공보 역할을 담당했다. 장광근·원유철·주호영·김정훈·김기현·허 천·홍문표·이병석·김재경 등 주요 친이계 인사들이 사실상 지역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반대로 당시 유일한 친박계 후보였던 허태열 후보의 캠프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축소판 형태로 운영됐다.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꼽히는 2010년 전대에서는 안상수 후보가 친이계 대표주자로서 재선의 권경석 의원이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김정훈·나성린·신지호·원희목 등 친이계 의원들이 캠프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전당대회 선거 비용 규모는 얼마나 되나
전당대회 돈봉투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규모에도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각 후보들이 선관위에 신고하는 선거비용은 통상 1억원에서 3억원 정도다. 가장 마지막으로 열렸던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당시 한나라당 대표 출마자에게 허용된 비용 상한선도 기탁금 1억2000만원, 기타 비용 2억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후보와 함께 전국을 누비는 수백 명의 도우미들, 또 각 지역 유세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나타나는 지지자들이 함께 이동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경선 때마다 수십억원의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 따르면 2008년 당시 박희태 당 대표 경선 후보는 선관위에 선거자금으로 1억860만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박희태 의장 측은 이 비용이 공식 선거유인물 제작과 선거용 차량 리스, 일부 유급 봉사자의 인건비로 지출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것이 공식적인 선거 비용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사용한 비용 중, 당규와 선관위 규정에 맞는 것만 역으로 짜 맞춰 신고했다는 것이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돈이 쓰이는 곳은 따로 있다드는 것. 선거법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인력동원이 그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대 때 당협위원장에게 봉투를 주는 일은 관행이다. 지방에서 버스 태워 올려 보내는데 차비와 식비는 건네야 하지 않겠느냐. 비공식적으로 어느 당이나 다 마찬가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각 도별로 열리는 선거 유세전, 최종 투표를 위해 서울로 집결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후보와 시도당협 사이에 돈이 오가는 것이 지금까지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다. 정치권에서는 박 의장이 고 의원에게 준 300만원 역시 고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표 구걸이 아닌, 자신을 지지해 줄 당원 동원에 대한 일종의 수고비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를 전국 200여개 당협위원회로로 환산할 경우 최소 6억원이 나온다. 여기에 후보가 직접 챙겨야 하는 행사동원 인력 인건비, 그들이 먹고 자고 쓰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10억원은 넘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표 관리를 위해 당협별로 1명씩을 지정 및 배치할 경우, 인력들의 활동비까지 더해져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등, 즉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지구당(당협) 숫자가 더욱 많고, 또 그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10억원을 기준으로 해서 40억원까지도 썼다는 소리가 매번 경선 때마다 나온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매번 경선 때마다 상당수의 중도탈락자가 나오는 것 역시, 결국 돈이 큰 이유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정몽준 전 대표가 재창당을 요구하며 “현재는 당원협의회가 위원장을 위한 사당화돼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면서 “이러한 ‘사당’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 중앙정치 개혁을 말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완주했던 한 의원은 “경선에 나서는 비용 마련을 위해서는 출판기념회 등으로 마련해 둔 돈 외에도 집을 담보로 하거나 지역구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곤 했다”며 “대표나 최고위원이 되고 못 되는 것 못지않게 이 돈을 정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 후보와 함께 전국을 누비는 수백 명의 도우미들, 또 각 지역 유세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나타나는 지지자들이 함께 이동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경선 때마다 수십억원의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도 예비 경선 돈봉투 의혹 불거져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은 통합민주당까지 불똥이 튀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커질지, 정치권 전체가 초긴장 상태다. 지난 12월 26일 있었던 통합민주당 예비 경선을 앞두고 모 후보 측이 30만~50만 원씩 지역위원장에게 돌렸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통합 결의를 놓고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던 12월 8일 임시대의원대회 때도 돈이 뿌려졌다는 얘기가 더해지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영남권의 몇몇 당 지역위원장들은 한 인터넷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고위원에 출마한 A후보가 자신들에게 현금이 든 봉투를 돌렸다고 밝혔다. 이들은 A후보가 실무급 조직 책임자를 통해 최하 50만원을 기본단위로 중간급에는 100만원, 지역책임자에겐 500만원의 현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8일 민주당 임시 전국대의원대회 때 A후보 측이 5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주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지역별로 나눠 돈 봉투를 돌리는 조직이 있다”면서 “일단 지역책임자로 결정되면 보통 500만원 이상 주는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또 “지난해 9월 말 지역책임자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A후보로부터 받았지만 거절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26일 실시된 예비경선 직전에도 돈 봉투 살포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예비경선 전날 영남지역 몇몇 지역위원장들이 A후보 초청을 받아 서울의 한 호텔에 모여 밥과 술을 마시고 돈을 받았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돈을 넣으면 표가 나온다 해서 일명 ‘자판기’라고 부른다”면서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민주당의 오랜 선거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검찰은 민주통합당 예비경선 돈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를 시작, 현장 CCTV에 얼굴이 찍힌 김경협 예비후보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김경협 예비후보는 돈 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청장을 돌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선장에서 의심스런 정황이 발견돼 압수수색을 했으나 김씨나 수수자의 진술을 미뤄 볼 때 수사를 진행할 가치가 없다”면서 “지난해 통합민주당 지도부 경선장 화장실 앞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제보와 보도 등 여전히 제3자가 금품을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통합민주당 경선장 금품 살포 의혹은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