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목받는 작가 류승환은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로서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고심하다 그 해답으로써 드로잉을 택하고 20여 년간 드로잉만을 그려온 국내 드로잉화의 대가다.

▲ 작가 류승환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서사적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보여주는 내용에서가 아니라 그가 취한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그리기는 철저하게 소묘다. 화면에 더해질 다양한 시각적 효과는 처음부터 지양된 셈이다.

작가 류승환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서사적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보여주는 내용에서가 아니라 그가 취한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그리기는 철저하게 소묘다. 화면에 더해질 다양한 시각적 효과는 처음부터 지양된 셈이다. 작가 류승환은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에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만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세계와 마주하는 것이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직접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세계의 가장 직접적인 반영, 언제나 세계의 현재형과 마주하기가 그의 그리기의 미학적 저변이다.

그의 모티브는 세계의 어떤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다. 세계의 한 조각, 일상의 편린을 그리는 대신, 세계와 일상 자체를 그린다. 사물이 아니라 사물들이 존재하는 지평과 작동하는 방식을 재현한다. 그에게 세계는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는 정물 따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모델과 마주하듯 세계 앞에 서지 않는다. 그 같은 태도는 사체를 다루듯 세계를 취급하는 것이고, 이는 자기중심의 오만방자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작가는 진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 앞에 객체화된 세계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라는 숭고한 주체 앞에 ‘류승환’이라는 작고 고유한 실존이 있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그의 드로잉은 상하의 준엄한 이중구조를 가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양분된 그것의 상단부는 그때까지 지속도어 왔던 것과 같은 맥락의 세계의 재현이자 기록이다. 그가 살아왔던 시대, 자신이 겪어왔던 실존,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동료인간들의 운명이기도 한 그것은 여전히 정제되거나 도식화되지 않은 밀도 높은 혼란이다. 그것은 여전히 전쟁, 테러, 학살, 기아가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초상이다. 그것은 또 작가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사회, 민족분열, 온갖 종류의 사회적 부조리, 경제성장과 정신, 도덕의 급속한 후퇴, 세속화, 물질만능, 전통의 상실과 미래 불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회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 포스코미술관 인스톨레이션. Steel, paper drawing. 13,200x40cm. 2010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 류승환은 한국, 일본, 프랑스 등을 오가며 유수의 초대전, 단체전 등에 참가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SOMA DC1기 선정작가, 서울문화재단 전시지원금, 포스코미술관 선정 작가 등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유니텔 미술동호회 ‘색’ 고문을 역임하고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뉴욕드로잉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