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을 때는 단번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평범한 날이 더욱 많다”는 작가 윤지영은 삶 속에서 건져낸, 소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진실에 작품의 뿌리를 대고 있다

▲ 작가 윤지영의 <빗물 드로잉>이나 마이크로스코픽한 세계에 대한 관찰로 가득한 그의 작업에는 그림그리기와 사색하는 작업이 마치 행간을 변증법적으로 메우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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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지에 수채로 그려 넣은 <오후의 풍류>라는 작품에서 유유자적하게 사색하는 인물은 화분 안에서, 난초 밑에서 사색하는 작가의 모습이다. 작가 윤지영이 즐겨 그리는 소포지나 서류 봉투 등은 받는 순간 버려지는 가치 없는 종이들이다. 이외에, 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 비디오인 <침묵의 드로잉>은 마치 한지에 작가가 한 필치 휙 그은 드로잉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전해준다. 침묵이라는 무성의 순간을 시각화한 이 영상작업은 움직이는 정지작업, 즉 미묘하게 움직이는 스틸이미지라는 모순성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영상을 순간 포착한 스틸이미지 컷이라는 양면성은 사색과 관찰, 명상과 성찰이라는 축을 향해 달려간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단상은 우리가 스치고 지나간 ‘순간’의 크로키이지만 작가 윤지영이 구축한 이미지는 생각을 전달한다. 작가 윤지영의 <빗물 드로잉>이나 마이크로스코픽한 세계에 대한 관찰로 가득한 그의 작업에는 그림그리기와 사색하는 작업이 마치 행간을 변증법적으로 메우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그리기와 사색하기, 관찰하기가 서로 연차적으로 이뤄지다가 최종 작업에서 나온 결과물들은 일상의 흔적들이 기록되어 있는 심리적인 단상이 된다. 작가 윤지영의 작품은 주어진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경쟁적 삶이 아닌, 소요와 성찰의 나날을 소박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 파 가족네 꽃피니 온동네 꽃피네 72x61 캔버스의 유채 2008

인간과 마주해 걸리는 대상으로서의 그림은 필연적으로 중요하고 기록될만한, 또는 무의미해도 최소한 볼만한 무엇이 있기를 요구받는다. 그래서 현대의 스펙터클은 그렇게도 장황하고 자극적이며, 더 배고프고 목마르게 할 뿐인 가상의 포만감을 준다. 그러한 시각 환경에 비한다면 윤지영의 그림은 소박한 시골밥상 같다. 헛배부르게 하는 불필요한 자극이 없다. 거기에는 볼만한 것, 읽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원래의 자연스러운, 그래서 진짜 행복한 삶이 그러한 것처럼 굴곡이 없다. 거친 명암과 화려한 색채, 왜곡된 형태가 없다. 그것은 질주하는 현대적 삶에 작가가 제안하는 쉼표이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작가 윤지영은 2004년 영국 Nottingham에서 첫번째 개인전 <Snail Series- Dal>을 시작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 등의 후원으로 안국동과 헤이리 등에서 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11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예술로 풀어보는 인생이야기>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가는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서 접하는 주름들을 유머와 상상을 불어넣어 드로잉, 영상 작업등으로 담아내고 있다. NM
출처- 이선영, 정연심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