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석궁 테러’로 불렸던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다크호스로 떠올랐으며, 영화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도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2007년 1월 15일 박홍우 판사의 집을 찾아가 박 판사에게 석궁을 쏜 혐의러 기소됐던 사건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실제 인물인 김 전 교수는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지난해 1월 출소했다. 특히, ‘부러진 화살’은 당시 재판이 엉터리였다며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논란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영화는 당시 재판 기록에 근거해 재판부가 결정적 증거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유죄 쪽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실제 석궁사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제2의 도가니’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 ‘도가니’는 청각 장애인 학교의 성폭력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에 논란이 없었던 반면에 ‘부러진 화살’은 사건의 진실 자체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판사석궁테러’ 사건이 뭐길래
이른바 ‘판사석궁테러’ 사건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우선 3개의 큰 재판이 있다. 김명호 교수는 1988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1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됐지만 1995년 1월 본고사에 출제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후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한데 이어 1996년 2월에는 조교수 재임용에서 제외됐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교수는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에서 패소했다. 1998년 이민을 떠난 김 교수는 뉴질랜드와 미국(2001년 재이민) 등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내다 2005년 3월 귀국해서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따라 다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또다시 원고 패소 판결했고(2005년 9월 21일) 항소심 재판부도2007년 1월 12일 항소를 기각했다. 이 항소심 재판부의 재판장이 ‘석궁테러’를 당한 박홍우 부장판사이고당시 주심판사가 창원지법 이정렬 판사다. 이정렬 판사를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는 ‘석궁판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판사는 석궁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석궁사건의 발단이 된 민사재판인 ‘교수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 주심 판사였다. 항소심 판결이 있은 지 사흘 뒤인 2007년 1월 15일 18:30분 김명호 교수가 서울 잠실에 있는 박 부장판사의 아파트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퇴근하던 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발사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흐름과 개요이다.

실제 담당 변호사 “일치율 98%”

▲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90퍼센트의 실화와 10퍼센트의 허구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극중 김 교수가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부러진 화살’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으로 꼽힌다. 실제로 김 교수도 이런 발언을 했고, 결국 감치 7일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이 본인 것인지 감정할 것을 주장했으나 기각 당한 것은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 판사의 속옷과 조끼에 묻은 혈흔이 와이셔츠에는 묻지 않아 조작 가능성이 제기된 부분 역시 사실이다. 실제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박훈 변호사는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와 실제 재판의 싱크로율(일치율)이 98%다”는 입장을 전했다. 법정 내에서의 대사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현실 그대로를 스크린으로 옮겼다고.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 역시 “90%의 실화와 10%의 허구로 구성됐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재판정안 상황은 공판기록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일부 법조인들의 권위주의와 신중치 못한 처신,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등을 통해 사법부의 부조리를 보여주려고 한 것으로 영화계는 보고 있다. 무엇보다 피고인 쪽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혈흔 감정을 담당 재판부가 왜 일관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은 왜 없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반면에 사법부에 대한 문제제기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지만 김 전 교수 쪽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담은 허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법부를 비판하려면 제대로 된 사례를 들고 오라. 김 전 교수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다들 홀라당 낚인 것”이라며 “김 전 교수는 법정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재판 진행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11일 전국 법원 공보판사들에게 이 사건과 관련된 판결을 정리한 대응 매뉴얼까지 만들며 사태 진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판사들 “진실 왜곡이다”
판사들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잘못 전파되고 있다”며 법원 내부게시판을 통해 잇따라 의견을 개진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수원지법 정영진(54·사법연수원 14기) 부장판사는 1월 26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영화 부러진 화살 관련 사법부 자성론과 관련하여’라는 제목으로 “사건의 실체를 법원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제기된 의혹을 반박하는 글을 남겼다. 정 부장판사는 ‘권리구제, 학술연구, 공익적 목적으로 확정된 재판의 소송기록을 검찰청에 열람·등사 신청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널리 알려 국민이 직접 증거를 보고 판단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로부터 석궁을 맞은 박홍우(60·연수원 12기) 의정부지법원장의 와이셔츠에만 핏자국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 분석감정서에 와이셔츠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고 나와 있다. 김 교수 측은 1심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2심에서야 혈흔이 박 원장의 것인지 감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또, 석궁의 위력에 관해 “김 교수 스스로 ‘다다미에 연습했을 때 어떤 곳은 1㎝ 정도 꽂히고 어떤 곳은 좀 더 깊이 꽂혔다’고 검찰에서 진술했고, 초보자들은 사과도 관통하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떨어진다는 석궁 전문가의 의견도 재판에서 나왔으며, 박 원장의 상처는 비껴 맞은 것이라는 의사의 증언도 있었다”고 전했다.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살인사건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으면 피해자의 시신과 의사 진단서, 목격자가 있는데 흉기가 증거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선고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건 다음날 박 부장판사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었다는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게시판에 “거짓으로 입원했거나 자해를 했다면 (상처의) 형태가 다를 것이다. (박 원장의 자해 주장은) 서울대 병원 의사나 간호사를 바보로 간주하는 것”이라면서 “재판에서 졌다고 석궁을 들고 간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영화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되, 지나치게 우리를 자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실제 재판기록 어땠나
김명호 전 교수는 영화와 현실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고스란히 표출하고 있다. 법원이 편파적으로 재판한 사법 테러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김 전 교수의 생각은 공판 기록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는 1심 재판 도중 “판사들을 판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기피 신청을 서면으로 하라"는 재판장의 주문에 “이미 거부를 했다”며 공판장을 박차고 나갔을 뿐만 아니라, 재판 출석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항소와 상고심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등에는 재판부를 향한 욕설이 난무했다. 반복되는 증거 제출 부동의, 무리한 증인 신청과 재신청 등 재판 절차를 무시하는 일도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범행 이후 새로 범행현장에 CCTV가 설치됐다는 아파트 관리소 측의 설명에 그는 CCTV 설치 업자를 법정에 불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박홍우 부장판사의 진료기록을 작성한 의사는 김 전 교수가 진료기록을 증거로 동의하지 않아 법정에 두 번이나 나와 증언했다.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끝낸 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 신청을 다시 요구하기도 하는 등 재판을 담당했던 한 판사는 “유ㆍ무죄 판단을 받기보다 구속 기간 만료로 인한 석방이 목적이 아닌지 의문일 정도였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 전 교수의 법정 진술도 번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1심 초반부에 “(석궁을) 고의로 쏘지 않았다”고 부인하다 후반부와 항소심에서는 “박 부장판사가 자해를 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법원은 이 같은 공판 기록을 통해 김 전 교수에 대한 판결은 문제의 여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공판 절차 과정에서 혈흔 대조를 하지 않는 등 일부 증거 확인에 소홀히 한 점 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물론 대법원 역시 일관되게 ▲사전 답사와 연습 등의 범행 전 정황과 범행 후 빈 시위를 당기고 ‘죽이겠다’고 말한 정황 ▲석궁, 흉기, 노끈 등의 증거 ▲목격자 진술 ▲석궁의 구조와 위력에 대한 실험 결과 ▲박 부장판사의 와이셔츠 등 옷에 묻은 동일한 남성 혈흔의 유전자 분석 등의 근거를 통해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등의 김 전 교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유죄를 입증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 있는 사법부 불신?
대법원은 ‘부러진 화살’이 지난해 사법부를 당혹하게 했던 영화 ‘도가니’의 속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영화가 드러내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지금과 같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극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설득력이 있다는 거다. 그 어필이 기대 이상의 관객 동원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법관의 의견표명에 대한 논란이 끝나기도 전에 ‘부러진 화살’과 관련해 판사가 실정법을 위반해 심판합의과정까지 공개하는 모습을 보여 사법부의 권위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심판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사법부가 이런 저런 이유로 시련을 겪고 있다. 일부 재판 판결에 대한 논란에다 일부 판사들의 법정 막말에 대한 사례까지 소개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갖가지 지적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다. 사건을 둘러싼 진실 여부를 떠나 영화 ‘부러진 화살’은 개혁의 무풍지대였던 사법부을 향한 화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법부가 그동안 권위적으로 국민위에 군림한 것은 아닌지, 소통과는 무관한 곳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또는 ‘사법부의 상징인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상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