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2월 ‘5% 성장, 3% 물가’라는 장밋빛 경제전망을 제시한 정부가 2011년 12월에는 자세를 확 낮췄다. 낙관일변도로 전망하기에는 그만큼 국내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당국이 인정한 셈이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9월 전망했던 경제성장률 전망치 4.5%에서 무려 0.8% 포인트나 과감하게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정부가 전망한 2012년 취업자 증가수는 28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2만명 줄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 환경은 경기 둔화와 맞물려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2012년 경제정책방향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중점을 뒀다. 전 세계 경제위기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둔화를 피하기 어려운 만큼 살아남는 게 급선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위기관리’가 2012년 경제정책의 키워드인 셈인데, 가계부채 등 부문별로 체질을 강화하고 내수진작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카드들이 ‘최악의 상황’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세’보다는 ‘수세’적인 요소가 많아 대책에 힘이 실리지 않을뿐더러 위기가 현실화하면 ‘응급처치’에 머무를 것이라는 걱정이다. 기획재정부 최상목 경제정책국장은 정부가 사실상 성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대내외 경제여건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눈높이를 시장과 국민에 맞춰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얻어 안개 형국에서 신중하게 경제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내수에서는 투자 유도하는 제도 개선책 모색
정부의 슬로건은 ‘경제활력 제고와 서민생활 안정’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의 2009년 경제정책방향이 ‘세계적 위기를 선진 일류국가 도약 기회로’를 지향했지만 내용상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비슷하다. 위기상황을 전제로 위기관리체제를 가동한 것이다. 중소기업 흑자도산을 막기 위한 긴급 유동성 지원제도인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이나 기업구조조정 세제지원을 연장한 것은 리먼 사태 당시 정책과 유사하다. 재정 측면에서는 2012년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 패턴일 것이라는 전망에서 상반기에 60% 안팎의 조기집행이 추진된다. 정부의 최우선 위기관리 대상은 우리 경제의 ‘뇌관’인 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다. 지난 2010년 말 현재 각각 0.5%, 6.4%였던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대출과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의 비중을 2016년 말까지 모두 30%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서민 금융지원을 강화하고자 저신용층에 공급하던 미소금융 상품을 저소득층에도 확대한다. 금융소득세제 개편방안 마련도 눈에 띈다. 금융시장과 상품 변화를 고려해 과세 수준의 적정성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업계나 상품 간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시도도 이뤄진다. 내수에 정책의 무게를 둔 것도 특징이다. 2012년 성장률 3.7%의 기여도를 내수 2.9%포인트, 순수출 0.8%포인트로 전망했다. 내수에서는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 개선책이 모색된다. 외국인투자기업에 국한했던 경제자유구역 입주에 따른 각종 지원책을 국내 기업에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창업 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소득세 감면기간을 4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세액감면율 50%를 수도권과 지방 간에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2012년 세제개편 때 반영된다. 하지만 위기가 본격화하면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내수활력 방안도 제도 개선 위주라 힘이 덜 실렸다는 분석도 많다. 전문가들은 응급처치보다는 장기대책 마련이 아쉽다고 조언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 수입이 늘어 소비와 기업투자도 증가하는 선순환 고리를 활성화할 장기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펀드 세제혜택 신설 추진
정부가 10년 이상 적립하는 장기펀드에 세제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는 획기적인 조치로 펀드 시장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런 만큼 시장에서는 세제혜택이 정부의 발표대로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형이라는 목적과 더불어 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며 환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2일 ‘경제활력 제고와 서민생활 안정’을 주제로 한 2012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장기펀드 세제혜택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혜택의 범위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예시를 보면 총급여가 5천만원 이하인 개인 등이 10년 이상 펀드에 적립하면 소득공제와 펀드 관련 보수·수수료 최소화 등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펀드 세제혜택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증시 안정 대책으로 도입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가입이 종료됐다. 혜택이 남아있는 금융상품은 연금저축펀드 정도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세제혜택의 부활이 펀드시장의 활성화와 시장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증권 배성진 펀드리서치팀 수석연구원은 “소득공제 혜택을 주면 서민들이 투자 수익률에서 혜택을 보게 된다”며 “저금리 기조에서는 펀드투자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자금을 꾸준하게 끌어들일 길이 열린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유인책이 있으면 외국처럼 자녀 학자금, 노후 대비, 내 집 마련 등 장기 계획이 필요한 자금을 펀드로 마련하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학자금 마련을 위해 부모들이 장기 납입하는 영국의 ‘주니어ISA’와 미국의 ‘529플랜’ 등 펀드는 세제혜택을 포함하고 있어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다. 펀드는 2006~2007년 ‘펀드 붐’으로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수익률이 급전직하하면서 투자자들이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다. 글로벌 유동성에 의한 증시 변동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보통 3년 정도인 펀드 투자 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면 변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 본부장은 “세제혜택은 우리 주식형 펀드 시장으로 장기 자금이 공급되는 길을 열어준 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또한 시장은 2~3년마다 변동을 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은 시장의 변동성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 시간”이라며 “투자자의 재산형성을 돕는다는 측면에서도 아주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 납부’라는 조건 때문에 장기펀드가 실제 어느 정도 호응이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김후정 펀드분석가는 “지수와 상관없이 투자를 길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처음부터 10년을 계약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세제혜택이 얼마인지, 수익률에 실망하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지, 수수료는 얼마나 낮은지 등 세부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취업자 증가수 지난해보다 12만 명 줄어
‘2013년 균형재정 달성’과 ‘청년 취업난 해소’라는 정부의 핵심 정책 목표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전망한 2012년 취업자 증가수는 28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2만명 줄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 환경은 경기 둔화와 맞물려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신규 일자리는 40만개 늘어났다. 지난해 10월에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로 50만명이나 증가했다. 박재완 장관이 이를 두고 ‘고용 대박’이라고 말해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예상을 넘어서는 증가폭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실제 고용시장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훨씬 낮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층의 실업난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22.1%로 7%대인 공식 청년실업률보다 3배 가량 높다. 청년 5명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로 청년실업자가 110만명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예상하는 2012년 취업자 증가수는 28만명이다. 대외 경제여건 악화로 고용 회복이 둔화돼 2010년 취업자 증가폭인 40만명보다 12만명이나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뾰족한 청년 실업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우선 청년취업을 늘리기 위해 공공기관 신규채용 규모를 지난해(1만명)보다 4000명 늘리고, 공공기관 청년인턴제도 지난해(1만명)보다 2000명 확대하기로 했다. 또 재정지원 일자리 수도 5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명만 늘릴 계획이다. 이준균 정책총괄과장은 “공공기관의 고용 확대가 전체 일자리를 늘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정도 수준으로 청년 취업 문제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정부가 내년도 고용의 초점을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여성과 고령층 등 가정내 제2경제인구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데 맞추고 있다. 청년층 중에서도 고졸자나 청년 창업자에 초점을 맞춰 취업을 원하는 대졸자의 취업 문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청년층의 경우 경제위기 시 구직을 단념하거나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사실상 실업자의 상태를 반영하는 보조지표를 다양하게 개발해 청년 고용대책 수립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구인난으로 난리인데, 노는 청년층은 넘쳐나는 이런 현실을 타파할 근본적인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2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3%
한국은행은 지난 12월 9일 발표한 2012년 경제전망을 통해 201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0년대비 3.3%를 기록, 2011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원자재 수요 하락의 영향으로 물가 상승폭이 떨어지지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계속 이어지면서 근원 인플레이션율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2년 물가상승률 3.3%는 한은의 당초 전망치 3.4%에서 소폭 낮아진 것이다. 한은은 상반기(1∼6월) 소비자 물가가 3.5%에 이르겠으나 하반기(7∼12월)에는 3.1%로 하반기로 갈수록 상승폭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006년 2.2%에서 2007년 2.5%로 상승한 뒤 2008년에는 4.7%까지 치솟았다. 2009년에 2.8%로 주춤하던 물가는 지난 2010년 3.0%로 다시 올랐다. 2011년 상반기 3.9%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하반기에는 4.1%의 상승률을 보였다. 연간으로 4.0%가 상승하고 2012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로 다시 꺾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10월 통계청이 개정한 새로운 물가지수에 따른 것으로 0.2%포인트 하락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 지수에 따르면 2012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5%가 되는 셈으로 올해보다 둔화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12년 근원인플레이션율은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가 3.3%,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가 2.7%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에 예상했던 내년 근원인플레이션율 상승률(농산물·석유류 제외)은 3.7%였다. 한은은 이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둔화되지만 인플레 기대심리의 영향으로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여전히 상승하면서 물가 자체가 안심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세계경제 성장세 약화로 원유 등 국제원자재의 수요가 줄면서 물가 상승압력이 약해져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둔화되겠다”면서 “다만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인플레 기대심리 영향으로 올해까지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