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뉴욕 첼시에 위치한 깊스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이정연의 개인전이 화제가 되었다. 이정연 SADI 기초학과 교수는 ‘신창세기(Re-Genesis)’연작을 통해 , 태초에 하나님
으로부터 창조된 본래 인간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회복하자는 바람 및 동서양 만남의 정신및 세계관을 추구해온 작가다.

▲ 이정연 교수는 삼베와 옻, 자개, 금, 흙과 숯가루,돌가루, 오리알, 계란껍질 등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에 독특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는 독창적 조형세계를 확립했다

이정연 교수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는 삼베와 옻, 자개, 금, 흙과 숯가루,돌가루, 오리알, 계란껍질 등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에 독특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는 독창적 조형세계를 확립했다.

다양한 오브제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 창조
이정연 교수는 삼베 바탕에 옻칠을 한후 옻과 흙을 혼합하여 선과 점, 뼈나 대나무, 돌과 구름 같은 형상을 만들어 보인다. 특히 흙, 숯가루, 돌가루, 뼛가루,자게 등 주로 이 땅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재료가 그 위에 얹혀지고 얼룩진다. 때때로 화면 아래에 양각을 한후 자개를 올려넣기도 한다. 이 교수의 작품은 그 규모나 방법이 워낙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그는 “중요한 것은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서 “제 작품은 신앙인으로서 바치는 찬양이자, 사랑의 편지다. 작가로서도 제 그림이 좋다”고 말한다. 옻 작업은 특히 재료 특성상의 어려움으로 사람들이 맨손작업을 기피하는 소재다. 그러나 이 교수는 과감하게 건칠기법을 이용한 옻과 흙을 혼합한 재료를 직접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묻혀 캔버스 위에 바른다. 붓칠로는 화면에 잘 그려지지 않아 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삼베 위에 칠해진 재료는 마치 붓이 지나간 것과 같은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 교수의 그림은 그림 그 자체보다도 그리는 행위와 정신적, 종교적 수행의 과정이 행복하게 결합된 성격이 강하다. 이정연 교수는 “옻칠은 재료의 특성상 잘 번지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으며 보존성이 탁월해, 그 작품의 영구성에 매료되었다”면서 “한국적인 것을 지키고 알리고자 하는 생각과도 옻은 딱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원주에서 살다가 우연히 옻을 다루는 작가를 만나 그로 인해 옻칠에 대한 아이디어와 응용을 떠올린 그는 옻이 한국인과 한국문화와 매우 긴밀한 연관을 지닌 재료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옻칠은 일상적인 가구나 기물, 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활용되기에 어린 시절부터 우리 눈에 익었고, 그래서 더욱 친근할 수밖에 없다. 황갈색의 삼베, 옻칠, 숯가루, 천연소재와 함께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호나 도상들은 작가만의 문장을 만드는 단어 구실을 하고, 이 기호들을 조합해 만든 텍스트가 그림이 된다. 대나무가 서있는 풍경, 바람이 불고 물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산과 돌, 수석과 절벽이 놓인 풍경들이 이 교수의 작품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형상들은 그에게 있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암시하는 원형들, 자신이 지향하는 영성적 세계의 은유, 자기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부호화, 자연계에서 들려오는,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자기 몸으로 흡입해 요체화한 결정, 자기 수련의 과정에서 반복되는 수행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우연적인, 그러나 필연적인 만남의 세계 구현
이정연 교수는 대학시절부터 동양화 제작 뿐 아니라 동양회화의 근간에 자리한 동양적 정신세계나 수행의 과정, 또는 화론에서 강조하는 ‘기운생동’을 몸소 체득하기 위해 단전호흡, 요가, 선의 세계에 매우 깊숙이 들어갔다. 이후 기독교를 접하면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 때문에 이 교수의 작업에는 그러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갈망하고 추구하며 아울러 그런 과정에서 몸소 경험한 것들이 비가시적인 존재로 표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는 결국 특정한 도상에 의존한다. 그의 작품들은 기독교적 사유와 동양문화와 사유를 매개하는 특정 도상, 기호들의 변용을 통해 모종의 기운, 흐름, 사물과 자연에서 받는 에너지, 소리 등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서양의 정신세계가 한 화면에 혼융하는 그의 작품은 내용과 기법적인 면에서의 우연적인, 그러나 필연적인 만남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연 교수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졸업 및 동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퓨트 대학원을 졸업하고 콜롬비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박영덕화랑, 동산방, 한·일 월드컵기념전 오사카 부립미술관, 오사카 현대미술관, 갤러리 고바야시(도쿄), West Chellse Gallery(뉴욕) 등 개인전을 32회 가졌다. 현재 삼성디자인학교인 SADI 기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2011 미국 첼시에 있는 Kips gallery 전속화가로 활동 중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