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 라디오방송     / 1906년

▲ gorome@hanmail.net

1906년 12월 24일 밤8시쯤. 미 북동부 뉴잉글랜드 근해를 항해 중이던 몇몇 선박의 무선사 귀에 난데없는 음악과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축음기를 이용해 헨델의 ‘라르고’를 들려주고 구노의 ‘거룩한 밤’을 직접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으며 성서 누가복음 중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선 그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구절을 읽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한 뒤 “31일 밤 신년인사차 다시 방송으로 인사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작별인사를 끝으로 방송은 몇 분만에 끝이 나고 다시 귀에 익은 모스 부호가 삑삑거렸다. 훗날 세계최초로 기록된 첫 라디오방송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동북부 대서양을 운행하고 있던 몇몇 선박의 무선통신사들은 모스 신호음만 수신하던 수신기에서 갑자기 사람의 노래소리와 음악이 나온 것에 경악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스 부호의 점과 선 대신에 실제 소리를 방송하겠다며 수년동안 연구실에서 고행을 자처한 캐나다 출신의 레지날드 페센덴(1866~1932)이었다. 첫 라디오방송이 시작된 날, 그는 매사추세츠주 브랜트 록 기지국에서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1kw 발전기를 이용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축하한다는 육성을 내보냈다. 페선던의 목소리와 연주, 음악은 멀리 320km 떨어진 곳에서도 감지되었다. 이날 이후 1908년 미국의 리 디 포리스트(1873~1961)가 파리 에펠탑에서 라디오 시험방송을 하고 1910년 엔리코 카루소의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란 공연이 생중계로 방송되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가 보급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1916년 마르코니 통신회사에서 일하던 무선사 데이비드 사노프는 페센덴의 발명을 상업화할 것을 회사에 제안했다. 수신기를 싸게 팔아 음악방송을 공급하자는 사업계획이었다. ‘무선 뮤직박스’로 명명된 간단한 수신기 사업제안은 그러나 마르코니 통신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러자 사노프는 RCA로 회사를 옮겨 음악방송을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라디오 판매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미 웨스팅하우스는 라디오 판매를 늘리기 위해 당시 최고인기 햄(HAM)이었던 프랭크 콘라드 박사를 초빙해 세계최초의 정시 상업 라디오방송국인 ‘KDKA’를 피츠버그에 세웠다. 1920년 11월 2일 첫 상업방송이 시작되었고 라디오 전파에 처음 목소리를 실려 보낸 콘라드는 방송 도중 ‘broadcast’라는 신조어를 언급함으로써 ‘방송’이라는 용어를 세상에 등장시켰다.

■소련 출범    / 1922년
1917년의 10월혁명 후, 러시아 내정에 간섭하려는 열강들과의 전쟁과 국내 적대세력과의 내전에 휘말리게 되자 1921년 레닌이 스탈린에게 새로운 헌법 제정을 명령했다. 스탈린이 연방 공화국을 자치적 지위로 격하하고 중앙정부의 권위를 강조한 헌법 초안을 만들어 1922년 8월 당에 제출하자 관련 국가 공산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잇따랐다. 레닌 역시 지나친 중앙집권주의가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응집력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식민지 세계에서 공산주의의 매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결국 여러 공화국이 러시아공화국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스탈린안(案)’과 달리 각국의 노동자가 완전한 통일을 이룰 때까지 과도적인 형태로 각 공화국이 평등한 자격으로 합쳐야 한다는 덜 중앙집권적인 레닌안이 채택되었다. 그 결과 1922년 12월 30일 제1회 전 소비에트 대회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 즉 소련(蘇聯)이 출범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白러시아) 자카프카스(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4개 공화국이 구성원이었지만 주역은 역시 러시아였다.
4개 연방공화국으로 출발한 소련은 1924년 10월 러시아공화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멘, 우즈베크 두 공화국이 분리되고 1929년 10월 우즈베크 공화국으로부터 타지크 공화국이 또 떨어져나가면서 7개 공화국이 되었다. 1936년 12월 스탈린 헌법 제정에 따라 자카프카스 공화국이 해체되어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3개 공화국으로 나뉘고 러시아공화국에서 카자흐, 키르기스 2개 공화국이 또 분리되어 연방 공화국은 모두 11개로 늘었다. 당시 스탈린은 민족구성원이 100만명 이상이고, 타국과 국경을 접하며, 총인구의 반수가 넘는 민족 이름을 국명으로 한다는 원칙을 공화국 구성의 원칙으로 삼았다. 스탈린은 각 민족의 단결을 막기 위해 공화국 간의 경계를 자의로 구획하고 주민들을 타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특히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극동지역에 러시아인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3월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 카렐로핀공화국을 연방에 추가한데 이어 1940년 8월에는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1918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1918년 이래 루마니아의 영토였던 몰다비아를 병합했다. 이로써 구성공화국은 16개가 되었다. 1956년 7월 카렐로핀 공화국이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으로 바뀌어 소련은 15개 공화국과 20개 자치 공화국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와 독립국가연합(CIS) 창설, 고르바초프의 사임 등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소연방 탄생을 기준하면 69년만이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기준하면 143년만이었다.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발견   / 1938년

▲ 실러캔스(1952년 두번째 발견)

3억7500만년 전, 경골어류라는 딱딱한 뼈를 가진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이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육지생활이 가능한 단계로까지 진화한 것이 오늘날의 양서류이고, 양서류 가운데 일부가 물 속에서 알을 낳는 불편을 피하기 위해 육지에 알을 낳는 식으로 진화한 것이 파충류다. 그 후 파충류는 조류와 포유류로 진화하고 마침내 ‘만물의 영장’ 인간까지 탄생시켰다. 따라서 경골어류는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조상인 셈이다. 그러나 경골어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1836년 영국 뉴캐슬 부근에 분포해있는 고생대 페름기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 물고기가 이런 사실을 증명했다. 학자들은 이 물고기를 ‘등지느러미의 가시 속이 비어있다’는 뜻의 ‘실러캔스’라 불렀고, 7500만년 전 지구상에서 멸종된 경골어류로 파악했다. 그런데 이 실러캔스가 1930년대에 발견되어 세계 고생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38년 12월 22일, 남아공의 한 해안가 어귀에서 길이 150㎝, 무게 57.5㎏의 괴상한 물고기가 그물에 걸렸다. 선장은 물고기를 그 지역의 자연사박물관 표본관리자인 래티머양에게 알려주었고 그녀는 금방 죽어버린 물고기를 스케치해 어류학자 스미스 교수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스미스는 이듬해 초 뼈와 비늘 밖에 남아있지 않은 물고기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실러캔스임을 확신했다. 찰스 다윈이 지질시대에 나타났으나 절멸되지 않고 현존하는 생물을 지칭했던 ‘살아있는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스미스는 발견한 사람과 장소를 기념해 실러캔스를 ‘라티메리아 차룸나 스미스’라고 명명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스미스는 일약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고 세계 유명신문은 마침내 어류와 양서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고 대서특필했다. 1952년 12월 두 번째 실러캔스가 발견되자 스미스는 “실러캔스는 물·뭍동물의 후손이며, 조상들은 물에서 육지로 올라갔다가 완전한 등뼈 동물이 되기 전에 사라졌고, 실러캔스는 다시 물로 돌아와 지금까지도 완전한 물고기가 되기 위해 진화 중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6개의 지느러미 중 4개가 네 발 달린 동물의 발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주장을 뒷받침했다. 20세기의 가장 극적인 고생물학상의 대발견이었다.

■저넷 랭킨 미 의원, 2차대전 참전 반대   / 1941년

▲ 저넷 랭킨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고 하루가 지난 1941년 12월 8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긴급 소집된 연방의회에 나가 “진주만을 잊지말자!”며 대일(對日) 선전포고의 결의를 구했다. 상원이 만장일치(82 대 0)로 화답하자 한껏 고무된 루스벨트는 하원에서도 만장일치를 기대했다.  그러나 389명 중 1명의 의원이 반대표를 던져 루스벨트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감히 반대표를 던진 이는 미 최초의 여성의원 저넷 랭킨(1880~1973)이었다.  언론과 동료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으나 1차대전 때도 같은 경험을 했던 터라 랭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916년 11월, 그가 몬타나주에서 미 최초의 여성 하원 의원(공화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여성들 대부분은 아직 투표권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미 전역에 여성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3년이나 지난 1920년의 일이다. 그러나 몬타나주에서는 1914년부터 여성에게 투표권이 있었고, 이 덕분에 랭킨은 여성이면서도 의원이 될 수 있었다. 당선 이듬해인 1917년 4월, 윌슨 대통령이 의회에 참전승인을 요청하고 82대6(상원), 373대50(하원)의 압도적인 다수로 대독(對獨) 참전 결의안이 승인되었을 때도 랭킨은 반대편에 섰다. 랭킨은 “나는 내 나라를 지지한다. 그러나 전쟁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랭킨과 함께 55명(상하원 포함)의 다른 남성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지만 비난은 주로 랭킨에게 쏟아졌다.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해 참정권을 얻을 생각이었던 여성참정권운동 동료들도 랭킨을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이라고 비난했다. 랭킨은 전쟁지원을 위한 전시공채 판매나 징병 모집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마치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자신이 반대했던 참전결의안이 통과된 현실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에는 찬성한 것이다. 1918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에는 여성과 유아의 건강·복지를 위해 워싱턴을 중심으로 다양한 로비를 펼쳤다.
2차대전이 발발한 1940년 또 다시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전쟁 반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결국 2차대전 참전 반대에 따른 비난으로 1942년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그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때도 미국의 참전을 반대했다. 1968년에는 88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5000여명의 여성으로 조직된 ‘자넷 랭킨부대’를 이끌며 반전운동을 펼쳤다. 이때도 의회진출을 생각했으나 고령의 나이에 건강까지 악화되어 출마를 포기하고 젊은 반전활동가나 페미니스트 모임을 찾아다니며 말년을 보내다가 1973년 93세로 눈을 감았다.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  1952년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1면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 성전환(조겐슨 1951년, 1952년, 1953년 모습)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 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사실이 새롭거나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언론의 센세이셔널한 보도가 더해지면서 청년은 이듬해 미국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은 그를 ‘1953년의 미스 중립지역’으로 선정하는 등 화제가 만발했다.
마르고 허약했지만 그는 행복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14개월 동안의 군대생활도 무난히 마쳤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자 1950년, 성전환 수술이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는 미국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남성의 상징을 제거하고 여성의 질을 만들었다. 2년 동안 여성호르몬을 주입받고 성형수술까지 받으면서 청년은 점점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세 번의 수술 가운데 두 번째 수술이 있기 전 날, 그때까지도 비밀에 부쳤던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자연이 실수한 것을 내가 바로잡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
1952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이름은 조지 조겐슨이 아니라 크리스틴 조겐슨(당시 26세)이었다. 이후 그녀는 성전환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대변인이자 길잡이 역할을 했다. 결혼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가 거주하고 있던 뉴욕주가 “여자임을 입증할 수 없다”며 혼인신고를 거부해 혼인은 무산되었다. 이 때문에 약혼만 두 번 했다. 훗날 그는 자서전(1967년)에서 ‘커밍아웃’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나에 대한 뉴스가 전세계 신문의 1면에 실린 에니웨톡 환초섬의 수소폭탄 실험과 같은 충격적 뉴스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나치의 마지막 해결사’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사형  / 1961년

▲ 아이히만 재판 모습

1960년 5월 11일 저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의 밤길을 걷고 있던 한 사내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지난 10년간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행세해온 나치의 ‘마지막 해결사’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그는 2차대전 중 독일과 독일의 점령지에 있던 유태인을 체포, 고문, 강제이주, 살육하는데 앞장섰던 나치의 친위대 장교였다. 아이히만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군에 체포되었으나 오토 에크만이라는 이름을 대고 풀려나 이탈리아와 중동 등지를 전전하다 1952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몸을 숨겼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숙원은 유태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던 요제프 멩겔레와 아이히만의 체포였다. 이스라엘 정부가 아이히만의 소재를 알려주는 제보자에게 1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자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한 독일인으로부터 “자신의 딸과 아이히만의 아들이 데이트 중”이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의 건국기념일 행사를 위해 공식 방문하는 이스라엘 외무장관 여객기에 수명의 모사드 요원을 승무원으로 가장시켜 극비리에 급파해 아이히만을 체포했다.
아이히만은 모처에 감금된 상태에서 1차 신문을 받은 후 “자의에 의해 이송된다”는 각서를 쓰고 5월 21일 마취상태로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타고 왔던 같은 비행기에 태워져 이스라엘로 송환되었다. 체포 사실은 5월 23일 벤구리온 총리의 공식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헨티나의 항의로 양국 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으나 곧 이스라엘의 공식 사과 후 봉합되었다.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재판은 첫날부터 이스라엘 측 검사와 아이히만의 독일인 변호사 간의 불꽃 튀는 논전으로 뜨거웠다. 독일 변호사는 “납치는 국제법 위반이고 나치 전범 처벌을 위해 1950년에 제정된 법은 사후 입법이므로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론으로 아이히만 재판은 “법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드라마의 하나”로 평가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방탄유리에 둘러싸여 재판을 받은 아이히만은 “나의 전 생애는 칸트의 실천이성에 따라 살아왔다”며 “자신의 행위는 칸트의 인식, 즉 ‘범주적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최후 진술에서는 “자신에 대한 단죄는 사기상조”이며 “자신은 나치라는 거대한 기계의 한 도구였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114회나 열렸다. 판결문을 읽는 데만 3일이 걸린 끝에 1961년 12월 15일 마침내 1심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1962년 5월 29일 대법원의 사형 확정에 따라 5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올가미가 목에 걸리기 전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를 외친 아이히만은 사형 참관자들에게 “우리들은 얼마 안 있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이호왕 박사, 유행성출혈열 병원체 발견    /  1975년

▲ 이호왕과 고려대 의대 앞 광장에 놓인 흉상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은 한 의학자의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세기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했다.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뒤에는 1955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 대학원 과정을 다시 밟고 1959년 ‘일본 뇌염 바이러스의 원숭이에서의 면역전기’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 귀국 후 서울대 의과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일본 뇌염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 뇌염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호왕이 뇌염에 이어 다음 연구과제로 삼은 것은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원인 모를 괴질이었다. 유행성 출혈열은 세계 전 지역에 퍼져 있는 질병으로 최초로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였으나 이것이 집단으로 발병한 것은 1940년이었다. 당시 소·만 국경에서 대치하고 있던 일본군과 소련군 양 진영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발병해 수백 명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1951년 여름에는 6·25가 한창이던 철의 삼각지에 주둔한 미군들에게 집단적으로 발병, 수년 동안 총 2000여명이 감염되고 8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군사령부는 급히 ‘출혈열 연구센터’를 설치, 200여명의 학자들을 미국에서 불러들였다. 이들 연구자들이 1965년까지 15년 동안 한국에 상주하며 4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부었지만 정체는커녕 병원체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미국은 결국 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이호왕은 미 육군성으로 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1969년 여름부터 연구원들과 함께 휴전선 일대를 누비며 등줄쥐, 갈밭쥐 등의 들쥐와 두더지, 삵쾡이 등을 닥치는 대로 채집했다. 당시 미군의 연구결과는 병원체 바이러스의 숙주가 들쥐일 것이라는 기존의 실증 위에 한 걸음도 더 나아간 것이 없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농민들과 군인들에게서는 여전히 매년 2000~3000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고 연구원들 중에도 3명이 사경을 해매기도 했다. 연구팀은 장기에서 병원체를 분리해내기 위해 해마다 숙주로 추정되는 수백 마리의 들쥐를 해부하고 조직배양을 시도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지속적으로 이호왕의 연구를 지원해오던 미군 당국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1976년 봄을 최종시한으로 정했다.
초조해하던 이호왕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1975년 연말이었다. 어느 날 자신을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10년간 출혈열을 연구해온 학자”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소책자 한권이 배달되었는데 책에는 “출혈열 병원체는 곰팡이이며 들쥐의 폐장에서 발견된다”는 가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호왕은 믿기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들쥐의 장기를 해부하고 실험할 때, 출혈열로 이상이 생긴 다른 장기와 달리 폐부분 만은 멀쩡해 실험대상에서 제외해온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이호왕은 이평우 조교에게 등줄쥐의 폐 조직을 검사해보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등줄쥐의 폐 조직을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세포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띠는 것이었다. 1975년 12월 20일이었다. 마침내 출혈열 병원체가 베일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호왕은 처음 환자가 발생하고 등줄쥐가 채집된 한탄강에서 이름을 따 병원체 이름을 ‘한탄 바이러스’라고 명명하고 자신의 호도 ‘한탄’으로 지었다. 이호왕 연구팀은 1976년 봄까지 등줄쥐 3000마리를 검사, 그 중 6마리의 폐에서 특이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사실이 1976년 4월 말 도하 각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이호왕은 1980년 집쥐도 출혈열의 숙주임을 밝혀내 평생 하나의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데 둘이나 밝혀내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병원체는 ‘서울 바이러스’로 명명되었다. 병명은 한동안 ‘한국형 출혈열’, ‘유행성 출혈열’로 불리다가 1982년 WHO에 의해 ‘신증후군출혈열’로 공식 통일되었다.
이호왕은 1978년 유행성 출혈열의 진단방법을 완성한 뒤 1980년부터 녹십자사와 공동으로 예방주사 연구에 착수했다. 1990년 마침내 개발을 완료한 이호왕과 녹십자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유럽에 특허를 출원한 뒤 1990년 9월 20일 국립보건안전원의 국가검정을 끝내고 9월 21일부터 ‘한타박스’라는 이름의 백신으로 전국 의료계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호왕은 유행성 출혈열의 바이러스 발견, 진단방법과 백신 개발까지 이 병의 퇴치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모두 수행한 인물이 되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처형   /  1989년

▲ 1971년 6월 북한을 방문, 김일성과 악수하는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제2의 도시 티미쇼아라. 인구는 30만명으로 주로 헝가리인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발화한 불길이 10여일도 안되어 루마니아 전역으로 번지고 그 결과로 차우셰스쿠의 철권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이곳은 우리의 ‘5월 광주’가 된다.
1989년 12월 15일 밤, 헝가리 출신의 한 목사가 정부를 비판하다 교회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하자 이를 걱정하는 수십 명의 신도가 교회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인 것이 ‘루마니아 혁명’의 발단이었다.  첫날은 악명 높은 비밀경찰 ‘시큐리라테’가 시위를 해산시켜 큰 충돌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이튿날 밤, 비밀경찰이 시위대를 습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7일 아침부터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차우셰스크의 철권통치에 국민들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1965년 차우셰스크가 권력을 장악한 이래 루마니아는 사실상 차우셰스크의 사유지였고 왕국이었다. 반대세력은 정신병원에 수용되거나 무참하게 살해되는 등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1989년을 맞아 국민들은 루마니아에도 새벽이 올 것으로 예감했다. 공산권을 지탱해온 바르샤바조약기구 7개 가입국 중 루마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6개국에서 그해에 스스로 개혁을 표방하거나 보수 공산정권이 무너져 동구권에서 역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차우셰스쿠는 티미쇼아라의 시위대를 무법자로 규정하고 발포를 허가했다. 결국 12월 17일 저녁, 군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티미쇼아라의 밤하늘을 갈랐다. 서방세계에는 “티미쇼아라 길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닌다”는 소문과 함께 1000명 심지어 4600명 사망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훗날 밝혀졌지만 실제 사망자는 아직 수십 명을 넘지 않고 있었다. 발포를 주저하는 군이 허공을 향해 총을 쏜 덕에 소문과 달리 사상자가 적었던 것이다. 이후 며칠동안, 17일에 일어난 ‘티미쇼아라 학살’에 항의하는 수만 명 시위대 물결이 티미쇼아라 거리를 덮었다.
12월 20일 밤, 이란을 방문했다가 급거 귀국한 차우셰스쿠는 티미쇼와라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다음날 부쿠레슈티의 공산당 본부 앞 광장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관제 집회를 열도록 했다. 21일 오후 1시, 동원된 군중을 향해 차우셰스쿠가 연설을 시작하자 군중들 틈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며칠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확성기가 고장 나 연설이 잠시 중단되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스피커를 타고 총성과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녹음된 소리를 틀은 것이었으나 군중들이 앞다퉈 자리를 피하는 통에 관제집회는 무산되었고 반정부 시위대가 광장을 메웠다. 밤 10시30분경 군 기관총이 불을 뿜으면서 시작된 학살극은 12월 22일 새벽에까지 이어져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쳤다. 아침이 되었을 때 발포명령을 거부한 군 장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평소 시큐리라테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온 정규군이 발포명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군 장갑차들이 포신의 방향을 바꾸고 각 군부대에는 “인민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날아들었다.
그 무렵 차우셰스크는 공산당 본부 건물 안에 있었다. 주변에는 시위대가 몇 겹의 인간 사슬을 쳤고 간간히 총을 든 사람도 보였다. 오후 12시쯤, 성난 군중들이 창문을 깨고 공산당 본부로 진입하는 순간 헬리콥터 1대가 옥상을 떠났다. 차우셰스쿠가 줄행랑을 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헬기 조종사의 의도적인 방해에 속아 루마니아를 탈출하지 못하고 그날 저녁 길거리에서 부인 엘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1명의 경호원도 없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3일 동안 군부대 장갑차에 수감되었다가 12월 25일 오후 4시경 군부대 안에서 총살되었다. 몇 시간 후 시신이 TV를 통해 방송되자 루마니아 전역에 “메리 크리스마스”가 울려 퍼졌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