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산수화는 ‘재미없고 심심해서’ 인기가 없는 그림이 돼 버렸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사람들의 눈을 끄는 화려한 미술품과 이미지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무조건 좋고, 예술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예술은 자연의 모방에서 비롯한다. 이에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그림에 태어남은 동서양 구별 없이 자명한 사실로 걸작 명화가 이를 증명한다. 20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양인들의 일상에 남아있는 전통적 삶의 모습이 거의 사라진 것과 같이 미술의 전통적 정신도 소멸되어가고 있다.

추상과 구상 뛰어넘어 자연의 아름다움 표현

▲ 한상봉 화백

청암 한상봉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지난 6월 8~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한상봉 화백은 실경산수와 관념산수를 비롯해 추상과 구상을 뛰어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6월의 개인전은 22년 만에 가진 그의 6번째 개인전으로 지난 50여 년의 작품들을 모아 소작에서 대작에 이르기까지 총 8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에 나오는 작품은 소재가 대부분 북한산, 설악산, 관악산, 마이산 등 명산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한 화백의 고향인 경북 울진의 자연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공개됐다.

청암 한상봉 화백은 “주로 실경산수, 관념산수를 비롯해 반추상화, 추상 모든 장르를 뛰어넘는 색과 먹의 번짐에서 오는 신비함을 표현했다”면서 “어느 화법에도 얽매이지 않은 독창적인 조형기법으로 색의 오묘한 자유로운 변화를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 화백은 “파묵에서 오는 번짐 형상들은 오묘한 자연의 신비 그대로였다”(설악산), “한국의 기상 백두산 천지의 위용을 붓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을 느낀다”(백두산 천지) 등 그림마다 자신의 단상을 붙여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로 화필을 잡은 지 50년을 맞이한 한 화백은 강화 고려산 능선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 도봉산 만장봉 주변을 붉게 물들인 단풍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아 왔다. 그

는 “자연은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답다. 기나긴 세월의 풍파를 견디면서 태고의 신비와 비밀을 감싸 안은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면서 “자연은 우선 당당하므로 아름다우며 시간의 격랑을 이겨낸 노고의 모습이 아름다우며 그 많은 흔적들을 가슴에 담고도 그 비밀들을 간직한 채 묵묵히 지킬 수 있음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끝 간 데 없이 편리함만 추구하는 오늘의 현상들은 문명이란 명분을 앞세워 첨단화된 구조들을 양산시키고, 인간 본질의 모습은 갈수록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에 한상봉 화백은 작품을 통해 그러한 인간 상실에 대한 항의와 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세월의 격변 속에서도 태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은 자연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마음으로 자연의 내면과 합일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신의 경지에 도달할 만큼 예술혼을 담다
“이제 서산으로 지는 석양 노을은 붉은색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신비의 자연 속으로 저물어간다. 자연과 더불어 온 한평생은 제 작품에 소재가 되었고 그 자연은 나에게 한없이 인자했고 또한 나를 사랑해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시를 할 때 유명 미술평론가들의 미사여구로 장식된 작품평론을 받아 전시도록에 게재하지만 한상봉 화백은 전시 때마다 미술평론가들의 작품평론을 거부해왔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미술평론가들의 과대평가는 받아드릴 수 없다.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사명감이 있어야 미술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일까. 한 화백은 때로는 봄의 기운이 싹트는 향리 들녘을 찾아 그 잔잔한 미소 같은 자연의 아름다운 내면을 화폭에 담기도 하고 실록의 여름과 완숙의 가을, 그리고 백설의 겨울 자연의 아름다운 소재를 찾아 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한 화백의 작품은 오늘날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심오한 예술세계의 경지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할 만큼 예술혼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로 붓을 잡고 화가로 살아온 삶도 어느새 50년이다. “지는 석양에 아름다운 노을빛처럼 가슴에 여운을 남기고 싶다”는 그의 말은 가슴에 또 하나의 울림을 남겼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