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모두는 우리 조상과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켜내 온 이 나라 이 땅을 반만년 단일민족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비록 한 때 일본의 식민지로서 국권을 상실했던 경험은 있을지언정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 민족정기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이렇게 세계사에서도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흔치 않게 장대(長大)한 우리 민족과 국가의 역사는 결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역사의 순간순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해온 우리의 조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유영옥 교수

이러한 조국애와 국가를 위한 충성은 한 나라가 유지·발전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국민의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애국자 및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보훈제도이다. 즉 보훈제도란 국가의 존립과 안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예우와 보상을 부여해 그들이 영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보훈제도는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증가된 개인의 권리 확대와 공동체 의식 약화 현상 속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의 절대적 필요성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과거 국가와 민족이 개인보다 우선시되었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기에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국민 모두는 그것을 무엇보다 고귀한 정신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에 대한 충성의 개념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출현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국가는 자연발생적으로 유지되었던 애국심과 충성심을 전략적으로 확대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각 국가 간의 경제적, 문화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 속에도 국가보훈의 의미와 중요성은 결코 축소되지 않는다. 이는 인류가 이상적인 ‘세계평화’를 아무리 외치고 있다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속성상 전쟁의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단결과 국민화합을 유도할 수 있는 ‘국가보훈’은 국가경쟁력 향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방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훈제도는 짧은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빠른 성장을 거듭해왔다. 1961년 8월 ‘군사원호청’이라는 명칭으로 창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사업과 보훈선양에 관한 사무, 제대군인의 보상 및 보호를 주된 업무로 하고 있다. 규모도 처음 1961년 5지청 25 출장소에서 현재 1관 1국 16과 4담당관 2팀으로서 확대되어 보훈처 314명, 지방보훈청 5개, 보훈지청 19개, 보훈심사위원회, 국립묘지관리소 7개 등 소속기관에서 968명이 일하고 있다. 보훈병원, 양로시설 등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과 독립기념관을 포함한 소속공공기관에서 일하는 3500여명까지 합하면 4800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거대규모의 정부부처이다. 예산만 보더라도 2011년 총 4조 4259억원으로 일반회계 기준 정부 전체예산 210조의 1.7%에 해당된다. 이러한 보훈처 활동의 직접적 행정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사람만 2011년 9월 30일 기준으로 본인 706,143명과 유족 174,752명을 합해 모두 880,895명이다. 또한 보훈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수가 광복회, 6·25참전유공자회, 재향군인회 등 모두 19개로서 이들 단체의 회원 수만 9,234,212에 이른다. 여기에 국가보훈처 소관 비영리법인 107개까지 포함하면 보훈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국민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의 규모와 활동 내용에 비해 현재 그 위치는 매우 불합리하다. 위에서 언급한 국가보훈처의 수행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적어도 국무회의에 참석해서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부(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보훈처의 역할은 국무총리실 소속의 처(處)로서 국민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그저 행정기관 공통사무를 지원하거나 조정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88만이 넘는 보훈대상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훈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지난 번 “5000원 짜리 목숨값”과 같은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 보훈처는 각 정권에 따라 편의적으로 승격과 격하가 반복되어온 동네북 같은 부처로 존재해 왔다. 처음 1961년 차관급으로 창설되었던 국가보훈처의 전신 ‘원호처’는 1962년 장관급으로 승격되면서 ‘종합원호원’, ‘원호병원’, ‘직업보도원’을 설치하고 현 ‘보훈심사위원회’의 전신인 ‘원호정지심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1985년 ‘국가보훈처’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서 1998년 다시 차관급으로 격하되면서 5지방청, 20지청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후 2004년 다시 장관급으로 복원되어 제대군인국 3개과가 확대 개편되고, 독립기념관이 문화관광부에서 보훈처로, 국립대전현충원이 국방부에서 보훈처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2008년 국가보훈처는 다시 차관급을 격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마음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현상을 통해 볼 때 과연 우리나라 국가지도자들이 국가보훈의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훈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로 볼 때 이것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홀대이며, 모욕으로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순국한 자국 군인의 시신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 찬바람 속에서 예를 갖추는 모습이 그렇게 국민 모두에게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정부운영 면에서도 국가보훈처의 위상은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보훈대상은 1962년 15만 명에서 2011년 현재 88만 명으로 6배가량 증가되었다. 또한 예산만을 놓고 보더라도 1962년 18억 원에서 2011년 현재 4,259억 원으로 무려 237배나 증가했다. 반면 보훈처의 위상격하와 함께 조직은 35청에서 24청으로 인력도 1,729명에서 1,282명으로 오히려 축소된 형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가보훈처가 양질의 보훈서비스는커녕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업무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른 보훈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의 위상의 비합리성과 후진성은 더욱 명확해 진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미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의 보훈부처는 모두 장관급으로서 총예산 대비 보훈예산을 보면, 호주 5.3%,, 미국 2.7%, 우리나라 1.7%, 이스라엘 1.6%, 캐나다 1.4% 순이다. 또 보훈공무원 1명 당 담당 보훈대상자는 우리나라가 단연 선두로서 678명을, 그리고 이스라엘이 436명, 미국이 213명, 호주 173명, 캐나다 57명이다. 국가 총예산 대비 보훈예산에서 우리보다 훨씬 적은 규모를 지닌 이스라엘이나 캐나다도 장관급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의 차관급 지위가 매우 불합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보훈공무원 1명 당 담담 보훈대상자 면에서는 할 말을 잃을 정도이다. 어떻게 1명 당 57명에게 보훈서비스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국가보훈의 수준과 1명 당 678명을 담당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그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입법부와 행정부에서는 하루속히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현재 우리나라가 지니고 있는 국격과 보훈처가 수행하는 업무내용 및 규모에 걸맞게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국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국가유공자들과 순국선열들의 공헌에 의해 이룩된 것임을 국가보훈처가 국민 모두에게 보다 확실히 홍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보훈문화의 확대야말로 가장 확실한 애국심 고양과 국가정체성 확립의 길이며, 보훈의식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는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를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