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등장   / 1906년
‘전파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르코니는 1896년 무선전신기를 처음 발명하고, 1901년 영국과 캐나다 간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선전신을 성공시켜 이 분야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무선전신 체계를 자신의 무선전신기를 선적한 배에 한해 육지와 교신할 수 있도록 배타적으로 운영,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1906년 11월 22일 29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무선전신회의’는 국제적인 무선전신 규약을 제정해 해상에서 잇따르는 대형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마르코니에 대한 반발심도 일부 작용했다. 회의에서 상호통신 의무, 조난통신 절대 우선권 등의 무선조약이 채택되었고 기술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주파수 분배도 해결되어 500kHz와 1000kHz 2개 주파수는 해상의 공중통신용으로, 188∼500kHz는 군사용으로 결정되었다.
무엇보다 이 회의가 중요했던 것은 조난신호로 ‘SOS’가 채택되었다는 데 있다. 그전까지는 마르코니사가 정한 ‘CQD(come quick danger)’가 조난신호로 사용되었으나 기상이 나쁘면 수신이 불량했고, 모스 부호로 각각 세번씩 짧게, 길게, 짧게 보내는 ‘SOS’보다 전송과 해독이 어려웠다. ‘save our souls’ 혹은 ‘save our ship’의 약자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SOS 신호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1912년 침몰된 타니타닉호였다. 해운사상 전례없는 대참사에서 700명 이상의 생존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SOS 덕분이었다. SOS는 100년 가까이 조난신호의 대명사로 쓰여오다가 1999년 국제해사기구(IMO)가 모스 부호를 폐기하고 인공위성을 이용한 세계해상조난 안전체제(GMDSS)로 대체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646년 전통의 합스부르크가(家) 몰락   / 1919년
1차대전은 유럽 최고의 명가 합스부르크가(家)에도 치명타를 날렸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과 함께 같은 패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를1세가 왕위에서 물러남으로써 600여년 동안 유지해온 합스부르크가(家)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합국은 1919년 9월 10일 오스트리아와 체결한 ‘생 제르맹 조약’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합병을 불허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유고슬라비아의 독립을 허용함으로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를 확정지었다.
여기에 새로 수립된 오스트리아 공화국 의회가 1920년 4월 3일 ‘가계(家系)와 절연하고 왕권·재산권을 포기하는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합스부르크 일족의 입국은 허가하지 않는다’는 ‘황제일족 추방법(일명 합스부르크법)을 제정함으로써 646년간 유럽을 호령해온 거대 제국 해체에 쐐기를 박았다.
독일의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합스부르크 가문은 출범 당시 300여개의 영주 국가들로 이뤄진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여 알자스, 북스위스 등지에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게 되었고 신성로마제국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 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추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공위시대(1254~1273년)의 혼란기를 틈타 영토를 확장하고 힘을 길러 1273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첫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바로 루돌프 1세다.
그는 황제로 재위(1273~1291년)하면서 오스트리아를 본령으로 삼고 주로 정략결혼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이 정책은 이후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통이 되었다. 가문의 프리드리히 3세는 스위스에서 북해 연안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영토를 넓히고 145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까지 겸함으로써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우뚝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래도 합스부르크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황제는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였다. 그는 전쟁이 아닌 순전히 혼인정책으로 제국의 영토를 넓혀 나갔고 손자 카를 5세(재위 1519∼1556)에게 과실을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을 둘러싼 유명한 시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전쟁을 하게 만들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을 하라”. 피흘리는 전쟁 대신 결혼으로 영토를 접수하고 승리의 영광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막시밀리안 1세는 1477년 부르고뉴 공국(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와 프랑스 일부)의 상속녀와 결혼해 부르고뉴를 손에 넣었고 아들 필리프 1세를 1504년 스페인의 후아나 공주에게 장가보내 스페인과도 인연을 맺었다. 혜안인지 행운인지는 몰라도 후아나 공주의 형제들이 잇따라 죽고 후아나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스페인은 졸지에 필리페1세·후아나 공주의 아들이자 막시밀리안의 손자 카를 5세(스페인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의 차지가 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는 손녀의 혼인관계로 얻은 헝가리와 보헤미아(체코)까지 손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 카를 5세는 독일영방 외에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체코, 헝가리까지 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의 수장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항상 경쟁을 벌였던 프랑스에서만 유일하게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이 나오지 않았으나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도 합스부르크 왕조의 결혼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프랑수아 1세의 왕비를 비롯해 6명이 합스부르크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오스트리아 계열과 스페인 계열로 나누어 유럽을 지배했다. 그러던 중 1700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1661~1700)가 아무런 자식도 낳지 못하고 죽자 카를로스 2세의 후계자를 주장하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에 스페인 왕위계승을 둘러싼 14년 전쟁(1701~1714)이 일어났다. 결국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로 대체되었다. 이후에도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프랑스와 프로이센(독일) 등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가문의 쇠락은 불가피했다.
1740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카를 6세가 죽어 그의 유일한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후계자로 즉위했다. 그러자 테레지아의 즉위를 둘러싼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1748)이 일어났고, 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 패해 독일영방의 주도권을 프로이센에 넘겨줌으로써 영토는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로 축소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로렌의 공작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했는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요셉 2세가 오스트리아를 장악해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합스부르크·로렌 왕가로 바뀌어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1806년에는 나폴레옹에 힘의 열세를 느낀 프란츠 2세가 스스로 신성로마제국 해체를 선언하고 순수 오스트리아 왕국을 선포함으로써 과거의 영광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또다시 패해 독일영방 내 주도권이 완전히 프로이센에 넘어감으로써 이때부터 오스트리아는 독일제국의 비주류로 남게 되었다. 힘이 약화된 틈을 타 헝가리가 독립하려하자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오스트리아 왕 아래 대외정책과 전쟁만 공동대처하고 각각 독립된 헌법과 의회를 두는 절충안을 제시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 이때부터 이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으로 바뀌었다.

■가갸냘 제정   /  1926년
조선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 반포와 관련된 두개의 기록이 나온다.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조에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는 기록과 세종 28년(1446년) 9월 29일조에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두 기록을 놓고 일제 하 한글학자들이 다소 혼란에 빠지긴 했으나 곧 정리가 되었다. 1443년 12월에 한글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문제점이 많아 3년동안의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1446년 9월에 한글을 반포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1443년 12월보다는 1446년 9월을 한글이 만들어진 시기로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실록에 1446년 9월 며칠인지가 명시되지 않아 9월의 마지막 날인 9월 29일을 한글의 반포일로 간주했다.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여덟 번째 회갑이 되는 1926년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 1926년의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1월 4일 서울 식도원에서 조선어연구회와 신교사의 공동주최로 반포 48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날을 경절(慶節)로 하자”는 지석영의 제안을 받아들여 참석자들은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제정했다. 이듬해부터는 가갸날과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혼용했으나 1931년, 모든 생활이 양력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한글날만을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1446년 9월 29일을 양력(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한 10월 29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바꿔 기념했다.
1934년부터는 1582년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으로 바뀐 점을 감안해 음력 9월 29일을 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한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날자에 다시 변경이 가해진 것은 1940년 7월 경북의 한 고택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뒤였다. 정인지가 쓴 서문에는 ‘세종 28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1945년 해방 후부터는 상한 즉 상순(上旬)의 끝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바꿔 기념했다. 한글날을 10월 9일로 바꾸기 전 “1446년 9월조의 기록은 문자로서의 한글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책(해례본)이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 추수감사절 날짜 확정   / 1941년
1941년 11월 26일,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규정한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 날짜가 확정되었다. 이는 2년 전,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한다는 루스벨트 자신의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루스벨트는 1939년 이전까지 미국인들이 기념해오던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바로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대목기간을 늘리려는 상인들의 맹렬한 로비에 밀려 11월 셋째 주로 바꿨었다. 그러나 의무규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州)마다 추수감사절을 다르게 기념하면서 통일성이 없어지자 의회가 절충안을 냈다.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한 것이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여러 설들이 있지만 1620년 대륙으로 건너간 필그림들이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그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이듬해의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3일간 축제를 벌인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온다. 이후 불규칙적으로 이뤄지던 추수감사절은 1777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영국에 대한 승전을 축하하는 추수감사절 축제를 개최하고 1789년 전국적인 추수감사절을 선포하면서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던 추수감사절이 자리를 잡은 것은 1863년 10월,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면서였다. 여기에는 헤일이라는 한 언론인의 역할이 컸다. 그가 독자들에게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자며 호소하고 대통령과 주지사, 성직자 등에게 수백 통의 호소편지를 보냄으로써 추수감사절이 부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 연방대법원, 공공버스에서 인종차별 위헌 판결   / 1956년
1955년 12월 1일 오후 6시, 미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시의 한 흑인 여성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길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옷을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활동에도 적극적인 42세의 로사 파크스(1913~2005)였다. 당시 몽고메리 시는 버스에 흑백좌석을 분리하는 조례를 채택하고 있었다. 앞좌석 네 줄은 백인전용석이었고, 그 뒷자리는 흑인들을 위한 좌석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백인전용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앞줄의 백인전용석이 다 차고 2~3명의 백인이 서있게 되자 백인 기사는 팻말을 뒤로 옮기면서 흑인들에게 뒷자리로 갈 것을 요구했다. 파크스는 일어서지 않았다. 미 인종차별사의 한 획을 그은 ‘버스 보이콧 운동’이 발화하는 순간이었다. 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그녀는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파크스는 일단 보석금을 내고 다음날 석방되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NAACP의 몽고메리 지부장 에드거 닉슨은 동지들과 함께 이 사건을 계기로 버스 흑백분리 조례에 도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첫 단계로 로사 파크스의 재판이 열리는 12월 5일 ‘버스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흑인승객을 정중하게 대할 것’, ‘흑인들이 많이 타는 노선에는 흑인 운전기사를 배치할 것’ 등 요구조건은 온건했다.
당시 몽고메리 시의 12만명 주민 중 흑인은 5만명이었다. 시내버스 승객의 70%가 흑인이었으나 운전기사는 전부 백인이었다. 12월 5일, 90% 이상의 흑인들이 버스 보이콧에 참여한 가운데 열린 재판에서 파크스는 10달러의 벌금과 4달러의 재판비용을 물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파크스는 항소했다. 그날 밤 흑인운동가들은 ‘버스 보이콧 운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하고 ‘몽고메리지위향상협회(MIA)’를 발족시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킹은 1954년 보스턴대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그해 9월 몽고메리로 부임해온 26세의 풋내기 목사였으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성공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흑인이 운영하는 택시회사들은 버스 요금만을 받고 흑인들을 태우거나 카풀을 조직하여 흑인들을 목적지로 이동시켰다. 흑인들도 웬만하면 걷는 것으로 운동에 동참했다. 전국의 흑인 교회들도 보이콧을 지지하는 성금과 신발을 보내 격려했다. 흑인들이 매일 95%의 참여율을 보이고 이 때문에 버스 수입이 65%나 떨어지자 보이콧 운동을 저지하려는 백인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흑인 지도자들을 분열시키려고 하고 사소한 교통 법규 위반에도 흑인들을 체포하거나 엄벌에 처했다. 직장에서 쫓겨난 흑인도 있었으며 불에 탄 교회도 있었다. 킹목사와 닉슨 지부장의 집에서도 폭발물이 터졌다. 그래도 킹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버스 보이콧 운동은 활화산처럼 몽고메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몽고메리 지법이 항소심에서 파크스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몽고메리 시는 킹 목사 등 ‘몽고메리지위향상협회’ 간부들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흑인들의 카풀 운동은 불법이며 무허가 영업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반노동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킹 목사 등 ‘몽고메리지위향상협회’ 간부들을 제소한 것이다. 킹은 1956년 3월 22일의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바로 항소하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그 무렵 킹과는 별개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1956년 2월 1일 브라우더 등 4명의 흑인여성이 버스에서의 인종차별이 잘못되었다며 몽고메리시의 게일 시장을 연방재판소에 제소해 시작된 재판이었다. ‘브라우더 대 게일’로 불린 이 사건에 대해 연방지법은 6월 4일 “버스에서의 분리를 지속하려는 시당국의 태도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게일 시장은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고 선고는 11월 13일에 있을 예정이었다. 11월 13일은 공교롭게도 킹 등의 항소심 재판에 대한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킹은 그날 유죄선고를 받아 기분이 언짢았으나 곧 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연방대법원이 ‘브라우더 대 게일’ 사건에 대해 “버스에서의 인종차별을 규정한 앨라배마 주법 및 지방 조례를 위헌으로 판결한 연방 지법 판사의 판결을 지지한다”고 선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1956년 12월 20일 연방 대법원의 직무집행명령이 공식적으로 접수되었고, 이튿날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한지 382일 만에 버스 안에서의 흑백차별이 사라졌다.

■영친왕 56년만의 귀국   / 1963년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영친왕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를 받아야 하는 허울 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으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하는 삶을 살았다.
광복 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히 자기 몫으로 생각한 영친왕은 고국행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방자 여사는 조선의 정세불안을 이유로 귀국을 망설였고, 영친왕의 복벽(復?·퇴위한 왕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것)과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발목을 잡았다. 더욱이 연합군총사령부가 일본 황족의 모든 경제적 특권을 박탈하는 바람에 황족에 속했던 영친왕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과다한 재산세가 부과되었고 궁내성이 지급해준 세비도 중단되었다. 당시 영친왕은 도쿄저택과 4곳의 별장, 목장을 갖고 있었으나 재산세를 내고 생활을 유지하려면 이들 부동산을 팔아야 했다. 대지 2만평에 건평이 500평이나 되는 도쿄 저택은 요지 중의 요지였다. 일본 정부와 그곳에 대학을 설립하려는 측이 저택을 팔라고 요청했으나 영친왕은 그곳에 태극기 게양을 원하는 주일 한국대표부의 구매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돈을 입금하지 않아 거래가 무산되면서 도쿄 저택은 당시 중의원 의장이자 일본 세이브그룹 회장에 팔렸다. 싯가는 1억 수천만엔이었으나 사기꾼의 농간으로 4000만엔만 손에 쥐었다.
1950년 2월, 영친왕은 맥아더의 초청으로 일본에 온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귀국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며 고민하고 있던 그는 이승만과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었다. 종친인 대통령이 왕인 자신에게 상당한 예를 다할 것이고 어떤 형식이든 본국 귀환에 대해 언질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당시 많은 국민들도 영친왕에 대해서는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에게서 들은 얘기는 “귀국하고 싶으면 돌아오라”는 차갑고 모진 말 뿐이었다. 낙담한 영친왕은 귀국을 단념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1950년)을 떠난 아들의 MIT대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여권이 문제였다. 주일 한국대표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의식해 한국인 자격의 여권 발급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영친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본 정부에 여권 발급을 요청했다. 이는 조선의 왕손이 정식으로 일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영친왕은 일본인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실망한 국민들은 그에게서 동정심을 거두었다.
1960년, 이대통령이 하야한 뒤 귀국을 바라는 편지들이 국내에서 답지했으나 영친왕은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보류하며 사태를 주시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한국 대표부로부터 “박정희 의장이 용태를 걱정하고 있다”는 전화에 용기를 내 영친왕 부부와 아들은 1963년 11월 22일, 그의 조상이 묻혀있는 곳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1907년 그의 나이 10세 때 순종황제 앞에서 “훌륭히 공부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조국을 떠난 지 56년만의 환국이었다. 뇌혈전으로 쓰러져 불구의 몸으로 환국한 영친왕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으로 7년여 병상생활을 하다가 1970년 한 많은 생을 마쳤다.

■홍수환 4전 5기   / 1977년
1977년 11월 27일, 신설된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기 위해 파나마로 날아간 홍수환(1950~ )이 파나마시티의 뉴파나마체육관 링 한켠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는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11전 11KO승을 자랑하는 파나마의 신예복서 헥토르 카라스키야(17세)였다. 당시 파나마는 로베르토 두란 등 이미 3명의 세계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던 복싱 강국이었다.
홍수환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중앙고 2학년 때 복싱에 입문했다. 세계 정상을 노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은 군 일병 시절이던 1974년이었다. WBA 벤텀급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가 방어전 상대로 세계 랭킹 2위인 홍수환을 지명, 남아공까지 부른 것이다. 홍수환은 남아공까지의 직행 항공편이 없어 도쿄, 홍콩, 스리랑카 등을 경유하며 비행기를 6번이나 갈아타고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갔다. 7월 4일 홍수환은 상대를 4차례나 다운시킨 끝에 15회 판정승을 거둬 새 WBA 벤텀급 챔피언이 되었다. 챔피언에 오른 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민국 만세”라는 모자간의 대화는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을 만큼 감격적이다.
홍수환은 1974년 12월 1차 방어전에 성공했으나 2차 방어전(1975.3)에서 멕시코의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재대결(1976.10)에서도 또 패하는 바람에 방황기를 보내야 했다. 이런 홍수환에게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1회 난타전이 끝나고 2회가 시작되자 홍수환은 강펀치가 실린 카라스키야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연속적으로 고꾸라졌다. 두번 세번 거푸 네번이나 쓰러졌지만 홍수환은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집념을 보였다. 2회전이 끝난 후 경기장은 마치 파나마가 4번째 챔피언을 보유하기라도 한 듯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였기 때문에 일부 관중은 천장을 향해 총을 쏘며 기뻐했다.
3회전, 홍수환은 공이 울리자마자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카라스키야 쪽으로 돌진, 카라스키야를 로프 쪽으로 몰아 양훅과 어퍼컷으로 혼을 빼놓더니 커버없이 로프에 기댄 그의 오른쪽 옆구리에 레프트훅을 작렬시켰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있는 카라스키야의 턱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3회 48초.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계 복싱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4전 5기’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의 2체급 석권이었고 해외원정 타이틀전 첫 승리였다. 열광하던 2만여 파나마 관중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홍수환은 중계반과의 인터뷰에서 예의 입심을 또 한번 과시했다. “어머니 정말 대한국민 만세입니다.”

■언론 통·폐합   / 1980년
1980년 11월 14일, 한국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언론통폐합 조치가 이뤄졌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가 이날 임시총회를 열어 상업방송 체제를 공공방송으로 전환하고 지방주재기자를 철수하며 유일한 대형민간통신사를 신설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포장만 ‘자율’이었을 뿐 통폐합 언론사 사주들을 보안사로 끌고 가 도장을 찍게 한 사실상의 ‘강제’였다. 11월 12일 오후 6시쯤 전두환 대통령이 결재한 ‘언론창달 보고서’에 따라 보안사가 언론사 사주들을 소환, 이들로부터 통폐합에 이의가 없다는 각서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각서를 근거로 신군부는 28개 신문, 29개 방송, 7개 통신 등 전국의 64개 매체를 14개 신문, 3개 방송, 1개 통신 등 18개 매체로 통합했다. 11월 25일 그 첫 조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아일보, 서울경제신문, 내외경제신문이 이 날짜로 폐간되어 각각 경향신문, 한국일보, 코리아헤럴드에 흡수·통합되었고, 1도1사 원칙에 따라 지방지 중 국제신문, 영남일보, 경남일보가 폐간되었다.
기독교방송은 이 날짜로 보도방송과 작별을 고하고 복음방송에만 주력했다. 11월 30일에는 TBC와 동아방송이 종방하고 KBS로 통합되었으며 합동통신과 동양통신도 12월 31일부로 문을 닫고 신설된 연합통신에 통합되었다. 또한 지방주재 특파원 제도를 폐지해 신문이 발행되는 지역 밖의 뉴스는 정부지배하의 통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하는 한편 KBS와 KBS가 주식의 70%를 소유한 준(準)관영 MBC로 2원화함으로써 방송매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언론인 해직 조치도 단행되어 7월 933명의 언론인이 1차로 해직된데 이어 11월 중순에는 305명의 언론인이 추가로 해직되어 모두 1238명의 언론인이 언론사를 떠나야 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