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기증’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문화임에 틀림이 없다. 최근 이러한 ‘미술품 기증 문화에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광주 시립미술관의 하정웅 명예관장.

▲ 하정웅 명예관장은 1939년 일본 히가시오사 카시(東大阪市)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재일 기업가다

하정웅 명예관장은 1939년 일본 히가시오사 카시(東大阪市)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재일 기업가다. 재일한국인문화예술협회 고문, 미술품 컬렉터이자 맹인복지사업가인 하 명예관장. 그는 재일 한국인 문화예술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일 문화 교류에 있어 민간 외교 활동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과 관련된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을 수집해온 그는 특히 이우환, 곽덕준, 손아유 등 재일교포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서구 유명작가들의 미술품 소장 애호가다.

우리나라 미술품 기증 문화에 롤 모델 제시
하정웅 명예관장은 사재로 평생 모은 전 세계 미술작품을 지난 93년부터 3차례에 걸쳐 광주 시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을 사사받았다. 고 오승윤 화백의 간곡한 부탁과 당시 시립미술관이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은 하 명예관장은 광주와 인연을 맺고 이후 1999년 471점, 2003년 1천182점을 비롯해 이번 기증까지 모두 2천222점을 기증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4번째로 손아유 등 43명의 작품 357점을 또다시 기증했다. 그의 뜨거운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조국사랑 덕분에 광주시립미술관은 ‘하정웅컬렉션’이라는 세계적인 작품을 보유하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하 관장의 시대정신과 기증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정웅 관장은 지금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영암군립 河미술관, 조선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을 기증해, 우리나라 미술품 기증 문화에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의 기증이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로서 개인 소장품을 사회에 기증한다는 사실보다는 타국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미술품을 개인의 사유 재산에 국한시키지 않고 기증을 통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재일교포 2세의 멸시와 설움, 혹독한 가난 속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학창시절, 실명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북송선을 기웃거렸던 아픔의 시간, 그리고 성공의 길과 컬렉터로의 변신, 미술관 설립 계획과 좌절 등, 파란의 생애를 헤쳐 온 하정웅 박사의 이번 작품 기증은 아름다운 기부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더욱 각별하다. 하정웅 컬렉션 작품의 핵심은 한일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형성된 재일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재일동포들이 경험한 민족적 한이나 고통, 절망, 죽음 그리고 이들의 간절한 희망을 갈구하는 염원과 이들에 대한 기도, 위령, 진혼의 의미를 포함하거나 이를 실천하는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서 재일교포들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에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작가들을 알리고,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10주년기념촬영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선구자이자 표상
“작품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면 기증하기 어렵다. 미술품은 많은 사람과 공유해아 한다. 미술품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다. 한 점의 미술품이 사람들을 사색하게 하고 감동시키며 마음을 움직인다. 이처럼 미술품은 공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나눠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돈을 벌고 그림을 소장한 것은 결국 사회에서 받은 것이므로 이 사회에 깨끗이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하정웅 명예관장은 예술품을 컬렉션하여 조국의 미술관에 기증하고 청년작가들을 양성하며, 고통 받고 있는 맹인들을 위해 맹인복지회관을 건립해준 사회사업가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여러 가지 사회복지 활동을 하면서,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한국인 위령비를 건립하는 등 현대사의 그늘에서 이름 없이 고통 받았던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왔다. 또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비엔날레 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일본에 광주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과 광주비엔날레에 전시기획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일본의 예술단체와 사회단체 관계자들을 행사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내년이면 그의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도 2007년부터 총 2천500여 점을 기증해 전시관이 완공된다. 군서면 구림마을에 건립되고 있는 ‘영암군립 河미술관’은 샤갈, 미로, 헨리 밀러와 전화황(全和凰), 손아유(孫雅由) 등 재일교포 작가들의 작품 등 시공을 초월한 인류 전체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구성된다. 이는 군(郡) 단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술관으로, 군민의 여가 선용과 문화예술 향유 공간의 역할은 물론이려니와 왕인박사유적지, 도기박물관, 도갑사 성보박물관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관광 시너지를 흠뻑 누릴 수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갈등의 현장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해온 하정웅 명예관장. 그것이 바로 하정웅 명예관장이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선구자이자 표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