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집회다. 정기국회 기간 동안에는 국회가 국정 전반에 대해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확정하며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대정부 질문 등을 행하며, 그해 연도 내에 처리해야 할 법안심사를 마무리 한다는 의미에서 제도적 의미가 있다.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행정부 또한 바빠진다. 국정감사 자료제출과 예산안 설명 등으로 여념이 없다.

▲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의 막이 올랐다. 이번 정기국회는 10.26재보선의 판이 커지면서 부실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기국회 집회일이 매년 9월 1일인 것은 우리나라의 회계연도가 매년 1월 1일부터 개시되므로 적어도 그 전에 예산안을 충분히 심의하여 확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기국회일이 지금처럼 9월 1일인 것은 제16대 국회 이후부터였고, 제헌국회때는 12월 30일, 제3대 국회는 2월 20일, 제5대 국회는 9월 1일, 제13대 국회는 9월 10일로 각각 날짜가 달랐다.

예산안 심의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미지수
정기국회는 집회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공고가 필요 없지만 국회의원과 국민에게 정기국회 집회를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제6대 국회부터 집회일 3일 전에 공고하는 것을 선례로 삼고 있다. 정기국회의 회기도 각 대별로 달랐는데 제헌국회부터 제4대 국회까지는 90일, 제5대 국회부터 8대 국회까지는 120일, 제9대 국회부터 제12대 국회까지는 90일이었고, 제13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100일이다. 이 100일간의 회기도 때에 따라서는 단축하기도 했다. 제9대 국회 정기국회 때는 제10대 국회 총선거(1978년 12월 12일) 준비를 위하여 법정일수 90일보다 31일을 단축하여 59일로 정한 때도 있었고, 제12대 국회 때는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 16일)와 관련하여 법정일수 90일보다 39일을 단축하여 51일로 정한 적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현안이 있어도 임시국회조차 열수 없어 야당은 정기국회를 대정부 투쟁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제5대 국회 때 윤보선 대통령은 정기국회에 출석하여 대통령의 국정에 관한 연설을 한 적도 있는 등 정기국회는 회기나 운영에 있어 변화를 겪어왔다. 지난 9월 1일에도 어김없이 정기국회가 개원됐으나 빠듯한 의사일정으로 졸속국회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국정감사가 지난 9월 19일부터 오는 10월 8일까지 열린다.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10월 10일부터 17일까지 대정부질문이 있다. 류우익 통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 임채민 보건복지, 김금래 여성가족 장관 등 8.30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도 열어야 한다. 국감, 대정 질문 이후 10월26일 재보궐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9월 정기국회는 개원 이전부터 10월 재보선으로 제대로 작동될까 하는 우려는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안철수-박원순 후보단일화가 이뤄지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야3당과 ‘혁신과 통합’이 투트랩 방식으로 단일후보를 뽑는 방안에 합의하면서 9월 국회는 사실상 10월 재보선의 전초전이 되고 있다. 야권이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대1 대결구도를 만들지에 정치권 안팎이 이목이 집중되면서 민생·서민 법안처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국회 계류돼 있는 법안만 6000여건이 넘는다. 의원들이 정기국회 회기 내내 법안 처리만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치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핵심법안에 대해 뚜렷한 합의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북한인권법, 반값 등록금, 전월세 상한제, 대중소기업 상생 관련 법안 등을 놓고 여야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명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는 쟁점 법안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쟁점이라고 말하는 순간 민주당이 협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무에 우리는 모든 법안을 처리대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정기국회 개원 이전 여야는 예년과는 달리 법정 기한 내에 예산안 심의를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마음이 표심에 쏠렸기 때문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해에는 4대강 예산 때문에 법정시한을 넘겼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예산안 심의는 예정대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총선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

▲ 박희태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국회가 법을 잘 만들 뿐만 아니라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정쟁보다 정책을 토론하는 장이 돼야 한다”면서 “타협문화가 꽃 피워야 한다. 타협은 패배나 굴종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올해 정기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라는 점에서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여야간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회기 중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어 정책보다는 정치 공방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국회가 법을 잘 만들 뿐만 아니라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정쟁보다 정책을 토론하는 장이 돼야 한다”면서 “타협문화가 꽃 피워야 한다. 타협은 패배나 굴종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박 의장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길은 산적한 민생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국회는 6700여건의 법안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책무를 다하자”고 당부했다. 이번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북한인권법 등 현안과 함께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법안, 전월세 대책 관련 법안 등 민생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당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생산적이고 품위 있게 18대 국회에 모자라고 미비했던 점을 보충하고 결실을 맺어 특별히 미제법안에 대한 정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예산도 작년에 이어 헌법이 정한 기간 내에 원만하게 정리해 국민들의 실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 민생추경 관철, 부자감세 철회, 전월세 안심대책 등 민생희망 만들기 △무상급식·보육·의료 등 보편적 복지기반 확립 △재벌개혁, 골목상권 강화, 한진중공업 2차청문회 및 국정조사 추진 등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3대 핵심 과제로 삼았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최근 당 워크숍에서 결정한 3대 핵심 과제 실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특히 이번 국정감사를 끝장 국정감사, 이명박 정권의 실패를 파헤치는 국정감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선진당은 9월 정기국회 주요 정책 과제로 △대학등록금 30％ 인하 △가사도우미 사회보험 적용 △자유무역협정(FTA) 대비 농업지원기본법 제정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 예산 확보 등을 제시했다.

정기국회 쟁점은 ‘민생·경제법안’의 심의·처리

▲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은 국토해양부에서 사업 안전성 등을 이유로 수직 증축을 반대하고 있는 데다 임대주택 비율을 놓고 여야 간 견해차가 커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아 10월 이후에나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18대 마지막 정기국회의 최대 관심 사안은 ‘민생·경제법안’의 심의·처리다. 박희태 국회의장도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중요한 길은 산적한 민생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라며 쌓여 있는 법안 처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부터 국정감사, 예산안까지 처리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민생·경제관련 법안이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전·월세 대책 등은 여야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최저가낙찰제 개선과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 등은 정부와 국회 간 힘겨루기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및 분양가공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처리가 요원해졌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에서도 민주당 등 야당에서 당론으로 폐지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처리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이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분양가상한제 폐지하는 절충안을 마련했지만, 사실상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안은 2년 넘도록 ‘집값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야당의 반대 의견으로 국토위에 계류된 상태다. 이와 함께 공공으로만 한정된 보금자리주택 사업자 범위를 공공이 출자해 설립한 법인과 민간 사업자까지 확대토록 한 ‘보금자리주택 등에 관한 특별법’도 민주당 등 야당에서 “민간의 그린벨트 개발사업 참여에 따른 공공성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 짙은 안갯속에 갇혔다. 전·월세 대책은 여야 모두 가을철 전세 대란을 예측, 주요 처리안건으로 내세운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전문임대주택관리회사(임대주택법)와 임대차분쟁조정위 도입(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추진, 전·월세 시장 안정화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에서 제시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과 관련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됐다. 특히 8·18 전·월세 대책에 제시된 임대사업자 세제지원 확대는 ‘부자 감세’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됐다. 정부와 국회 간 다툼으로 확대된 최저가낙찰제 개선 및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은 이견 조율에 따라 처리될 가능성이 큰 법안으로 관측됐다. 우선 최저가낙찰제 대상공사를 현행 300억원으로 유지하고, 최고가치낙찰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개정안’은 지난 9월 1일 기획재정위 경제소위에 회부, 이달 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해양위도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된 ‘최저가낙찰제 확대 철회 촉구 결의안’을 바탕으로 처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재정집행 효율성 등을 이유로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수하면서 보완방안을 발표했지만, 여야 모두 현실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9월 1일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 분임토의’에서 주요 쟁점 현안으로 최저가낙찰제 확대시행 철회 또는 유보 방안을 채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길부ㆍ현기환 한나라당 의원은 9월8일 국회에서 최저가낙찰제 개선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 증축을 허용토록 한 ‘주택법 개정안’도 처리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토위 간사인 최규성 민주당 의원은 분당 등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지난 4월 발의한 개정안 처리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국토위 소속 백성운 한나라당 의원은 오는 6일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지난 7월 발의한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토해양부에서 사업 안전성 등을 이유로 수직 증축을 반대하고 있는 데다 임대주택 비율을 놓고 여야 간 견해차가 커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은 10월 이후에나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다. 국토위 관계자는 “9월에 법안소위가 열리더라도 8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지 못한 교통ㆍ해양 법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라며 “리모델링 방안은 우선 정부와 국회가 수직증축 허용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는 데 주력하겠지만, 여야 의견이 절충되지 않으면 적지않은 진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안’과 부실ㆍ부적격 건설업자에 대한 행정처분 실효성 확보하기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등은 쟁점 법안에서 제외, 처리가 불투명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