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립중학교(경기고) 개교 / 1900년
대한제국 정부가 미국인 헐버트 등을 교사로 초빙, 근대식 관학교육기관 ‘육영공원’을 설립한 것은 1886년 9월이었다. 배재학당(1885년), 이화학당(1886년) 등 사학들은 이미 설립되어 있었다. ‘육영공원’은 정치 경제 수학 영어 등 근대학문을 가르쳤으나 학생들이 전통에 집착하자 외국 교사들이 이에 실망하고 자국으로 돌아가 개교 8년만인 1894년 문을 닫았다. 다시 근대화를 이끌 인재를 키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1895년 8월 지금의 국립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관립 소학교’를 세웠다. 이 소학교가 지금의 교동초등학교다. 대한제국 정부는 학교를 정부가 세운 관립학교, 관민이 공동으로 세운 공립학교, 100% 사립학교로 구분했다. 반상의 차별이 있던 탓인지 정부는 공립과 사립에는 ‘심상과’만 두고 관립학교에는 ‘심상과’와 더불어 ‘고등과’를 두었다. ‘심상(尋常)’은 ‘대수롭지 않다’ ‘보통이다’는 뜻이므로 심상과는 요즘 말로 하면 ‘보통과’를 뜻한다.
심상과는 3년 과정인 터라 졸업을 해도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으나 5년 과정인 고등과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관립 소학교 고등과는 1897년 7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그때까지도 중학교는 세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1899년 4월 4일 중학교 관제를 규정한 칙령 11호를 공포해 중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이때도 역시 공·사립 중학교는 심상과만 두고 관립중학교는 심상과와 고등과를 두도록 했다. 심상과는 4년 과정이었고 고등과는 심상과 4년에 고등과 3년을 추가했다.
이 칙령에 근거해 1900년 10월 3일 서울 종로구 화동 1번지에 개교한 것이 ‘관립 중학교’다. 이곳은 누대에 걸쳐 조선의 명문거족들이 몰려 살던 곳으로 ‘관립 중학교’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집터였다. 뒤이어 서재필의 집터도 교사 터로 흡수되었다. 4년제 심상과만 운영하고 7년제 고등과는 아직 설치하지 못한 10월 3일의 개교는 이필균 교장과 7명의 교사, 85명의 학생으로 출발했다. 이들이 졸업한 것은 1904년 7월로 20명만이 문을 나섰다. 다른 입학생은 보통학을 배워도 써먹을 분야가 없고 짧지 않은 4년의 수학기간 때문에 모두 중도에 포기했다.
‘관립 중학교’는 이후 관립한성고등학교(1906년), 경성고등보통학교(191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1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1925년)로 개칭되었다가 해방 후 경기공립중학교를 거쳐 경기중·고로 명칭이 정착되었다.

■한강 인도교 개통  / 1917년
수천 년 동안 민족의 애환을 말없이 지켜보며 묵묵히 흐르기만 하던 한강에 철교가 처음 놓인 것은 1900년 7월 5일이었다. 경인선은 물론 1905년 개통한 경부선도 이 한강철교 위를 달렸다. 그러나 1910년대로 접어들어 자동차가 도입되면서 한강을 배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1916년 4월 한강인도교 공사를 시작하고 1917년 10월 7일 개통식을 가졌다. 개통당시 이름은 한강 인도교였다. 중지도를 중심으로 노량진 쪽으로는 한껏 멋을 부린 아치교가, 용산 쪽으로는 목재로 만든 가교가 설치되고 중간에는 둑을 쌓아 다리를 연결했다. 폭은 중앙 차도 4.5m, 좌우보도 각각 1.6m를 합쳐 7.7m였다.
한강 인도교는 개통과 더불어 장안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떨어져 죽겠다는 사람들을 모두 막지는 못했다. 여름철만 되면 한강다리 밑은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려 최고의 피서지로 꼽혔다. 1925년 을축대홍수 때 중간둑이 유실되고 용산쪽 가교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다리운행이 한때 중단되었으나 용산쪽에서 원래 둑이 있는 곳까지 다리를 다시 놓아 1929년 9월 18일 두 번째 도교식을 가졌다.
자동차가 계속 증가하고 노량진·영등포 일대가 급격하게 발전하자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다리를 허물고 새 다리를 세워 1936년 10월 23일 세 번째 도교식을 가졌다. 다리 폭을 19.99m로 넓혀 좌우양측에 각각 차도와 인도를 설치하고 중앙에는 복선의 전차궤도를 신설, 노량진까지 전차노선을 연장했다. 그러나 6·25는 한강 인도교에 또 한번 상처를 안겼다. 우리 군의 폭파로 당시 정부 추산 약 800여명에 달하는 인명이 다리와 함께 강물 속에 수장된 것이다. 7년간 방치되다가 1957년 1월부터 복구공사에 들어가 1958년 5월 15일 다시 준공식을 가져 한강대교라는 새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1년 12월 24일 쌍둥이 다리를 개통한 것까지 포함하면 한강 인도교는 도교식을 5번 가진 셈이다.

■노수현, 한국신문 첫 연재만화 ‘멍텅구리-헛물켜기’연재 / 1924년
흔히 한국 신문만화의 효시를 말할 때 1909년 6월 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한 컷 만화를 꼽는다. 형식은 만평에 가깝지만 한국 신문만화사는 이 만평을 한국 신문만화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대한민보는 1910년 6월 5일부터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까지 실어 초기 한국 신문의 비주얼화를 선도했다. 초기의 신문만화는 ‘만화’로 불리지 않고 ‘그림이야기’라고 하거나 1913년 발간된 ‘붉은 저고리’에 ‘다음엇지’라고 소개한 것을 기점으로 한동안 “다음 그림 칸을 보아야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의 ‘다음엇지’라는 순수 우리말로 불렸다.
한국 신문사상 최초의 네 컷짜리 연재만화가 처음 시도된 것은 1924년 10월 13일자 조선일보였다. ‘멍텅구리-헛물켜기’라는 제목의 연재만화였는데, 멍청한 키다리 재산가 ‘최멍텅’과 그를 농락하는 재미로 사는 듯한 땅달보 친구 ‘윤바람’이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다. 첫 회는 주인공 최멍텅이 전차길 부근을 걸어가다가 기생 신옥매의 자태에 홀려 한 눈 팔다가 전차와 부딪치는 내용이고 2회는 최멍텅이 옥매 집까지 갔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개를 피하려다 개천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멍텅구리를 그린 사람은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노수현(1899~1978)이었다.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양친을 잃고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1914년 보성중학에 입학했다가 1학년 때 중퇴하고 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전통화법을 수학한 뒤 1918년 졸업했다. 이후 노수현은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해 도안과 삽화를 그렸다. 192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상협이 조선일보로 옮기자 그를 따라 조선일보로 옮겼다. 노수현이 최초로 연재만화를 시도하게 된 것도 이상협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상협은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에 연재되고 있던 ‘매기와 지그스’라는 만화에서 힌트를 얻어 노수현에게 작업을 맡겼다.
‘멍텅구리…’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멍텅구리-헛물켜기’는 11월 30일 48회까지 연재되다가 ‘멍텅구리-련애생활’로 제목을 바꾸어 이듬해 6월 13일까지 189회 연재되었다. 이후 ‘가뎡생활’ ‘세계일주’ ‘껏덕재기’ ‘가난사리’ ‘사회사업’ ‘학창시절’ 등의 시리즈로 연재되며 2년 5개월 동안 총 501회 연재되다 1927년 3월 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멍텅구리’는 만화 인기에 힘입어 반도키네마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1926년 1월 10일부터 조선극장과 우미관에서 상영되었다. 작품성과 흥행면에서는 실패하긴 했지만 신문 연재만화가 영화로 제작된 것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이었다.

■김산,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처형 /  1938년
본명이 장지락인 김산(1905~1938)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일제의 만행을 깨닫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뒤에는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1927년 12월 광동코뮌에 참가했다가 공산당이 패배하는 바람에 1928년 9월 천신만고 끝에 상해로 돌아왔다. 1930년 11월 북경에서 장개석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상해의 일본 영사관으로 압송되었다가 이듬해 4월 풀려나 북경으로 돌아왔다. 1933년 또다시 체포되었으나 역시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구금기간이 예상보다 짧은 탓에 중국의 공산당 간부들이 그를 일본 간첩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김산은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지만 당내 권력싸움에 빠져 있는 그들의 귀에 변방 출신 김산의 호소가 들릴 리 없었다. 결국 김산은 트로츠키파 축출을 위한 이른바 ‘서간공작’에 휘말리며 어이없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 1938년 10월 19일 김산의 행적을 심사한 중국 공산당은 “완전히 조사할 수 없는 형편에서 ‘일본간첩’으로 처형한다”고 결정했고 이 결정 후 김산은 전선으로 가는 도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처형되었다.
철저히 가려질 뻔 했던 항일영웅의 행적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김산이 연안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와 화학 등을 가르치던 1937년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의 부인이자 신문기자였던 님 웨일즈를 만나면서였다. 김산은 3개월 간 20회의 구술을 통해 신비와 고뇌에 찬 자신의 짧은 생애를 밝혔고, 님 웨일즈는 ‘아리랑(Song of Arirang)’이라는 제목의 책을 1941년 뉴욕서 출간했다. 간결하고 신념에 찬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84년 동녁출판사가 번역본을 내면서였다. 1983년 중국 공산당이 “김산에게 덮어씌운 누명을 벗기고 명예와 당적을 회복시킨다”고 선포함으로써 김산은 45년만에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고 복권되었다.

■‘세기의 스파이’ 조르게 체포 / 1941년
1941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리하르트 조르게(1895~1944)는  더욱 불안해졌다.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자신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고 조직원들도 속속 체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시바삐 일본을 벗어나야 했지만 1년 동안 정을 나누었던 무희(舞姬)를 생각하며 망설였다. 어느날 조르게는 마지막으로 무희의 집을 찾아갔다. 그 긴박한 순간, 조르게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결국 그날 밤 조르게는 여인의 품에 있다가 체포되었다. 1941년 10월 18일이었다.
그때까지도 일본 경찰은 조르게의 정확한 첩보활동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인이므로 당연히 독일을 위해 활동했으려니 생각했으나 취조결과는 뜻밖이었다. 독일의 적국 소련을 위해 활동한 것이 아닌가. 1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조르게는 고교를 중퇴하고 참전, 3번이나 부상당할 정도로 용감하게 싸운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난 의사를 통해 공산주의 사상에 빠지면서 그의 조국은 독일이 아니라 소련으로 바뀌었고 그는 골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미국의 헐리우드와 중국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던 조르게가 독일의 유력지 기자 신분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33년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소련에 보낸 정보는 ‘세기의 스파이’답게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큼 파괴력이 컸고 정확했다. 비록 스탈린이 무시해 대비는 못했지만 독일의 소련침공 일자(1941년 6월 20일)를 알려준 것도 조르게였고, 일본 관동군이 시베리아를 칠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소련이 시베리아 병력을 유럽으로 전격 이동시켜 대(對) 독일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도 조르게였다. 소련의 혁명기념일이었던 1944년 11월 7일 사형에 처해져 도쿄에 묻혔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및 한미합의의사록 체결 / 1953년
유엔군과 공산군간의 6·25휴전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즈음 한미 간에는 상호방위조약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을 앞세워 한국전쟁을 조속히 종결하려는 미국을 위협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확고한 안보공약을 얻어내려 했다. 이승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촉구한 배경에는 공산주의의 위협도 위협이었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적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계와 우려도 깔려있었다.
1953년 4월 21일 국회가 이승만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안을 가결시키자 이승만은 이에 힘을 얻어 4월 24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에게 “중공군이 북한에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휴전이 된다면 1950년 7월 대전협정으로 미국에 건네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되찾아 독자적인 작전을 단행하겠다”는 서한을 보내 아이젠하워를 곤혹스럽게 했다. 4월 27일 휴전 수락을 설득하기 위해 방문한 유엔군 사령관 마크 웨인 클라크 장군에게는 수락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소련이 침략할 경우 미국의 즉각적인 지원보장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미 해군과 공군의 지원 계속과 한국군의 증강을 계획대로 실현시킬 것을 제시했다.
미국 역시 안보공약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나 자칫하면 전쟁위험이 상존하는 한반도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그렇다고 반공의 최전선 보루인 남한의 적화를 팔짱끼고 볼 수만도 없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며 휴전이 성립되기 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이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허세라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한국군이 유엔군의 지휘체계에서 이탈해 발생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6월 6일 아이젠하워가 “한국이 휴전에 협조하고 유엔군의 지휘권 내에 남아 있겠다면 미국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승만에게 통보했으나 이승만은 제안이 충분치 않다고 거절하고는 6월 18일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반공포로석방은 이승만이 휴전을 거부하고 그것을 파기시킬 의사와 능력이 있음을 미국에 알린 경고 메시지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미국에 확실한 경고사인을 보냈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6월 22일 “휴전협정 서명에 앞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하고 한국에 적절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면 한국군을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휴전협정의 원활한 조인을 위해 마지막 정지작업을 위해 로버트슨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를 급파했다. 로버트슨은 6월 25일부터 16일동안 이승만과 14차례의 회담을 갖고 의견을 조율했다. 로버트슨이 상호방위협정 체결을 포함 5개항의 미국측 제안을 전달하고 이승만이 “유엔군이 한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한국군을 유엔군 휘하에 남겨둘 것이고 휴전에 서명은 않겠지만 그것을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휴전이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에 동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양국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이 제거되는 듯 했다.
7월 12일 이승만·로버트슨이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한국군 증강, 대규모 경제원조에 대한 미국 측의 약속 등 5개항에 합의함으로써 7월 27일의 휴전조약 조인이 성사될 수 있었다. 약속대로 휴전 후 내한한 덜레스 국무장관이 8월 8일 한국의 숙원이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한국 측과 가조인했다. 그러나 상호방위조약은 전쟁 발발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는 점에 안도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과 함께 유엔군과는 별개로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킬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 만족해 했다.
정식 조인은 1953년 10월 1일,  미 워싱턴에서 한국의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국무장관이 했다. 한미 양국 의회는 1954년 1월 15일과 1월 26일 각각 비준하고 발효의 기점이 되는 비준서 교환은 1954년 11월 17일 서울에서 이뤄졌다.

■밀사 간첩 황태성 검거 / 1963년
황태성 간첩 사건을 이해하려면 박정희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황태성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의 중매를 설 정도로 박상희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 한 동지였다. 어려서 박정희가 자신의 장래를 상의할 정도로 박정희와도 친분이 있었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 폭동을 주도한 황태성은 폭동 실패 후 월북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2개월 뒤인 8월 30일이었다. 9월 1일 고향의 한 친지 아들을 만난 황태성은 “나는 간첩으로 넘어온 게 아니라 김일성의 특명을 받아 밀사로 넘어온 것”이라며 박정희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도록 요청했다. 친지의 아들은 나중에 중앙대 총장에까지 오른 당시 중앙대 강사 김민하였다. 10월 5일 황태성은 남한에 살고 있는 자신의 질부를 통해 박상희의 처 조귀분(김종필의 장모)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편지를 받은 조귀분이 이 사실을 사위 김종필에게 신고하는 바람에 황태성은 10월 20일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황태성은 계속 박정희 의장이나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과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혁명공약 제1조로 ‘반공’을 내걸 만큼 용공성 해소에 안간힘을 쓰고 있던 박정희가 자칫 함정에 빠질지도 모를 황태성을 만나줄 리가 없었다. 쿠데타 후 박정희는 과거 남로당에 가입했다가 군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았던 자신의 과거를 불식시키기 위해, 또 자신에 대해 의혹의 눈총을 거두지 않고 있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반공을 최우선 기치로 내세우고 있었다. 결국 황태성은 박정희는커녕 김종필도 만나지 못한 채 비밀리에 육군 중앙고등군법회의에 송치되어 1961년 12월 27일 간첩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상고심을 기다리던 1963년 9월 25일 한 야당 집회장에 황태성에 대한 유인물이 뿌려지고 허정 국민의당 대통령후보가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황태성은 더 이상 익명의 존재가 아니었다. 중앙정보부가 황태성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9월 28일이었다. 더 이상 숨겼다가는 오히려 20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악재가 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정희도 10월 9일 기자회견을 자청, “중앙정보부가 나를 만나겠다는 황태성을 붙잡아 법에 의해 처리했다”며 “야당이 떠드는 이야기는 모두 허위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황태성은 1963년 10월 22일의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되어 1963년 12월 14일 인천의 한 군부대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중국의 4인방 체포 / 1976년
1976년 4월의 제1차 천안문 사태는 공산당 지도부의 권력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실무파의 대표격인 주은래가 죽은 데다 천안문 사태 이틀 후 등소평의 실각까지 더해져 실무파가 급속히 몰락한 반면 문화대혁명 후 한동안 주춤해있던 4인방은 다시 기세를 올렸다. 모택동의 처 강청, 당 부주석 왕홍문, 정치국 상무위원 장춘교, 정치국원 요문원 네 사람을 지칭하는 ‘4인방’은 이들이 체포된 후 당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4인방’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이들의 근거지가 상해라는 점 때문에 ‘상해방’으로 불렸다.
모택동은 제1차 천안문 사태 후 비교적 온건한 이미지의 화국봉을 기용해 주은래의 빈 자리를 메우도록 했다. 화국봉은 국무원 총리(대행) 겸 당 제1 부주석에 임명됨으로써 단숨에 당과 정부 양쪽에서 서열 제2위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천안문 사태를 통해 폭발한 민의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4인방은 화국봉의 기용이 장기적으로 그들의 권력장악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화국봉을 환영했다.
4인방은 신문·방송 등을 이용해 실무파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강화하면서 서서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 와중에 9월 9일 모택동이 죽어 중국의 권력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4인방은 버팀목을 잃은 화국봉을 압박하며 바지 저고리를 만들 생각이었으나 화국봉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4인방이 인민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모택동의 후원 외에는 권력투쟁에 필요한 조직기반이나 무력적 배경이 허약하며 가진 것이라고는 ‘펜과 큰 목소리뿐’이라는 그들의 약점을 화국봉이 모를 리 없었다. 더구나 당내에는 문화대혁명 초기, 문혁 세력에게 쓰라린 굴욕을 맛보았던 섭검영이 건재해 있었다. 섭검영은 공산당 부주석이면서 국방부장까지 겸하고 있었던 실세 중의 실세였고 4인방이 그토록 경계하는 등소평과도 코드가 맞았으며 1920년대 황포군관학교에서 알게 된 주은래의 소개로 공산당에 입당한 주은래의 맹우였다.
화국봉은 비밀리에 섭검영, 이선념 등 군·당 원로들과 반 4인방 구도를 형성한 뒤 모택동의 경호를 맡아오던 왕동흥까지 포섭함으로써 무력면에서는 4인방을 능가했다. 4인방도 군 기반이 취약한 걸 알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그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상해에 민병 10만명의 무장을 서둘렀다. 그러던 어느날 4인방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섭검영에게 4인방에 매수된 인민해방군 장갑부대가 북경으로 돌입할지 모른다는 급박한 보고가 전달되었다. 바야흐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긴박한 상황이었다.
4인방이 권력탈취를 위해 최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판단한 섭검영은 ‘선발제인’(先發制人·먼저 공격하면 뭇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을 주장하며 주저하고 있는 화국봉을 설득했다. 결국 10월 6일 오후 8시가 지난 시간에 강청은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화국봉과 섭검영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례로 검거되어 감옥에 갇혔다. 중국의 운명을 좌우한 역사적 체포극은 불과 1시간 30분 만에 막을 내렸고 역사의 물줄기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4인방 지지자들도 회유와 협박으로 무력화되는 가운데 10월 12일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모택동 미망인 체포되다’라는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실으면서 4인방 체포 사실이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1980년 11월 20일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강청과 장춘교는 사형(2년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왕홍문과 요문원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피살 /  1981년
제4차 중동전(1973.10) 개전 기념일인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북동부 ‘승리의 거리’에서는 안와르 엘 사다트(1918~1981) 이집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전승기념 군사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미라주 전투기 편대가 굉음을 울리며 저공으로 에어쇼를 펼치고 있었고 군중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느라 한눈을 팔고 있던 오후 1시쯤, 갑자기 요란한 기관총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열대 앞을 지나고 있던 장거리포 견인트럭에서 4명의 암살범이 뛰쳐나와 사열대의 사다트 대통령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사다트는 머리와 가슴 등에 5발의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심장박동이 멈춘 뒤였다. 불과 40초 만에 끝난 총격전으로 사다트를 포함 9명이 숨지고 38명이 부상했다. 범인들 중 3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1명은 현장을 빠져나갔다가 이틀 후 체포되었다.
사건 당일 밤 무바라크 부통령이 과격파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암살범이라고 발표하긴 했으나, 암살범의 모습만 TV 카메라에 잡혔을 뿐 사다트의 피격 순간이 TV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피살 순간을 보았다는 확실한 목격자도 없어 한동안 “사다트가 피격 전에 이미 살해되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었다.
사실이 무엇이든 국민들은 이미 암살 이유를 꿰뚫고 있었다. 1970년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 나세르 대통령이 죽고 그 후임으로 대통령에 오른 사다트는 나세르의 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외교적으로는 친소에서 친미로 바꾸었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기울어 있는 내정에는 자본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1977년 11월 적국인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한 그를 향해 세계는 ‘용기와 결단력있는 지도자’라는 찬사를 보냈지만 정작 아랍 국가들로부터는 ‘배신자’라는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1979년 3월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후 사다트는 반대파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왔다. 결국 ‘고독한 파라오’가 된 그는 반대세력의 탄압에 나섰고 피살 한달 전에는 3000명의 반대파를 체포·수감해 과격파의 맹렬한 증오를 불러 일으켰다.
사다트 암살 이틀 후 소총 등으로 무장한 이슬람 집단 100여명이 이집트 남부의 한 경찰서를 습격, 20명의 경찰관을 살해하며 봉기한 것으로 미루어 과격파 원리주의 세력의 목적이 단지 대통령 암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전국에서의 반란 확산을 노린 정부 전복 활동 곧 이슬람혁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무기를 제공한 범인을 포함 5명의 주범은 1982년 3월 사형을 선고받아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