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보름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최고 화제의 인물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서울시장 보권선거 출마 선언에 정치권은 물론 전국이 술렁였다. ‘안철수 신드롬’이니 ‘안철수 태풍’이니 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언론이나,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목소리를 높이는 각종 지지율 조사기관들은 너나할 것이 없이 안철수와 그가 지지하고 있는 박원순를 전면에 내세워 가상 득표대결을 벌리는 등 마치 장날 소싸움 판처럼 소란하고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유영옥 경기대 국제대학 학장

불과 보름 사이에 대한민국 소통령이라고 불리는 서울 시장 후보뿐만 아니라 대권후보로까지 부상된 안철수 교수는 이미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굳히고 있는 박근혜 의원과의 가상 표대결의 맞수로 서기도 했다. 더욱이 그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나드는 이례적 현상을 자아내고 있어 그가 기존 정치계에 던진 충격과 도전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이미 아님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감출 수 없다. 화려한 원맨쇼와 흡사한 그의 행보를 보면서 대한민국 정치의 비상식적 일탈이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 우리 모두 깊은 성찰을 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면 이러한 소란의 원인제공자이자 주인공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무심한 태도이다. 게다가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달만 지나도 다 잊어버릴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을 중증 건망증 환자 취급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불과 며칠 전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검토 중”이다 혹은 “새로운 정치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 싶다”며 적극적인 정치활동 의지를 표명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요즘 기사를 보지 않고 살고 있어서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니 그를 지지하고자 했던 국민들에게는 이렇게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안철수 교수는 20여 년 전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던 인물이다. 그는 서울 의대 80학번으로서 의사로서의 보장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컴퓨터 보안 사업 분야에 뛰어 들어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의대 강사 시절 토종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 낸 천재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개발해 낸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으로 “특허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었으나 그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무료로 공개해 국민적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다가 CEO로서의 경영능력 뿐만 아니라 기업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회 전체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노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또 안철수 교수가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진행한 청춘콘서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대박 난 기획이었다. 특히 최근까지 청춘콘서트는 전국 32개 모든 도시에서 표가 매진되는 사태가 빚어지며 인기 절정을 달렸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 교수는 열정적인 강연을 통해 자신의 끊임없는 도전과 신념을 소개해 젊은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청춘콘서트는 아주 효과적으로 안철수라고 하는 인물을 홍보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또한 안철수 자신도 아주 노련하게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도전정신의 원동력이 ‘성취욕’과 ‘비전’을 찾아 이리 저리 옮겨 다닌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시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에 대한 환원 정신과 그것을 통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했음을 강조했다. 백신을 개발하게 된 것도 많은 이들이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니까 그것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것이고, 기업을 경영하다가 학생신분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벤처 기업들의 성공확률을 더 높여주고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으며, 청춘콘서트와 같은 장을 통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무료 강연을 하는 것도 모두 청년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전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표상이 되었다.
  그런 그가 서울시장 보권선거 출마를 시작으로 한 정치활동의 의지를 표명했을 때 국민들은 새로운 리더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환호해 마지않았다. 게다가 그는 우리 사회를 상식과 비상식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어느 파냐’고 묻는다면 ‘진보’ 혹은 ‘보수’가 아닌 ‘상식파’라고 하겠다고 말하기도 해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이념적, 지역적 갈등을 넘어선 새로운 국민화합을 가능케 할 도덕적 정치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의 안철수의 행보는 전혀 ‘상식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하다. 물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가벼운 인물로 여겨지는 불이익이 초래되므로 일반인들조차 꺼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공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거두어들여야 했다면 자신의 신중하지 못했음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조용히 물러나야만 했다. 그것은 그가 원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가히 신드롬이라는 명칭을 붙일 만큼 폭발적 인기와 함께 국민적 기대와 희망을 모은 장본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최소한의 상식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예의에 부합하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상식적 정치 행보는 이미 우리사회에서 의미도 가치도 없어진 모양이다. 한껏 사람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부풀려 놓았던 안철수 교수는 슬그머니 눈에 보이지도 않던 박원순 변호사를 앞세우고 자신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다며 무대에서 내려와 버렸다. 결국 자신이 지닌 인기를 이용해 박원순이라고 하는 인물을 띄워준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놓고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과정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노력해도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 이들의 모습에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신장개업을 하는 상점 앞에 요상한 치장과 요란스러운 춤과 음악으로 눈길을 모으는 천박한 상술이 오버랩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에 눈치 보기 바쁜 기존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안철수의 등장과 그의 거침없는 행보로 인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은 숨겨온 아킬레스건이 훤히 드러나는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특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여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은 안철수로부터 공개망신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항변 한 번 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제1야당이자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민주당은 이런 저런 상황이 어찌되었건 현재 안철수가 지원하는 박원순을 어떻게든 민주당으로 영입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미 우리는 기존 정치인들에게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사명과 자존심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이번 ‘안철수 바람’과 관련해 무엇이 이토록 우리나라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도록 만들었는가를 여·야를 막론하고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정치권이나 리더십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나라의 포퓰리즘 지향적 정치문화를 만든 중요한 요인이 우리의 한 표와 관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서울시장 후보건, 대통령 후보건 간에 안철수의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이나 정책적 지향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다. 그것은 아직 그것에 대해 그가 명확하게 밝힌 바도, 검증된 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해 마치 그가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진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다수의 의견’은 그저 단순히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과 같은 ‘인기’가 아니라 ‘공중(Public)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기만적 정치와 국가 발전을 위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을 정당과 정치인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