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살아 있는 것은 벌어먹고 살기 위해 서로 다른 식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데, 노동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의 운명이다. 특히 인간의 경우 자신이 사회 속에서 자기의 기능, 기술을 발휘하는 것, 자신의 지위와 직위에 맞게 의무를 다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됨됨이, 자신이 가진 여러 모든 것이 자신 스스로의 노고, 수고, 일, 노동에서 비롯된다.

▲ 작가 박주현은 도구를 통해 꿈이 우리의 손안에 있음을 환기 시키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노고, 수고, 일, 노동으로 인해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있어 노동은 삶으로서의 노동이며, 삶 자체는 노동의 과정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노동은 소산, 창조, 생산을 전제로 하며, 그 소산은 유용해야 하며 또한 객관적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

망치 위에 우리가 담아야 할 이야기 구현하다
돈은 그 어떤 가치도 더 이상 자신과 상대가 되지 않도록 한다. 다른 가치들은 지불 행위를 위한 우연적인 근거들로 격하된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는 무소불위의 시장폭력에도 불구하고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작가 박주현의 손잡이 조각은 그것을 보여준다. 망치나 장도리, 톱이나 호미, 혹은 일상에 필요한 도구들은 손잡이를 필요로 하고 그 손잡이를 매개로 쇠의 날카롭고 무거움이 노동의 정교함으로 이어진다. 손잡이는 나와 노동, 도구를 잇는 매개자이자 한 몸이다. 그것은 돈의 창출이 아니라 꿈의 창출이다.작가 박주현은 문명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장도리를 이용해 보여준다. 그는 망치나 장도리의 손잡이에 노동자 자신의 모습, <낚시 하는 김씨>이거나 <실업자>를 새겨놓았다. 때로는 계단참에서 <기다림>에 설레거나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별>을 쥐어보겠다고 <사다리>를 오르는 인물을 새겼다. 망치를 쥔 손 안에 노동의 일상과 꿈이 새겨진다. 한 손에 쥐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그가 구현하는 것은 마치 연극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정황이다. 망치를 선호하는 이유는 망치가 도구를 만들기 위한 도구 중 태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작가는 망치의 목질부, 지지대 부분을 섬세하게 깎아내어 도구로서의 망치가 지향해야 할 세상을 정연하게 그려낸다. 원래 망치라는 도구를 보면, 태두인 머리 부분과 자루로 나뉘는데, 그는 머리 부분을 아래로 향하도록, 도구가 가진 역할적인 위계를 뒤집어, 장도리의 자리 위에 우리가 담아야 할 이야기를 구현한다. 망치 이외에도 다듬이 방망이를 깎아 그 위에 고독하게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형했다. 도구 위에 올려진 이야기들은 연극 무대 위 한 장면 같다. 이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자루는 인간의 손과 결합되는 부분이다. 물질문명을 창조해야 할 인간이, 잘못된 도구의 사용으로 빚어낸 ‘무서운 세계’를 뒤집어야 한다는 의지와 우리가 찾아야 할 이상향을 한 땀 한 땀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기술문명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아련한 초상을 떠올려본다.

▲ 대장장이 2010

 

노동의 곤고함과 삶에 대한 되새김 보여주는 작품
작가 박주현은 동아대학교 조각과를 졸업 후 부산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도구이야기’ 시리즈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4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WATAGATA 부산, 후코우카 아트네트워크, 지역네트워크전<비밀-오차의 범위>展 등 총 8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 과천 현대 미술관(미술은행)과 부산 중앙공원에 야외 작품이 선정되어 소장되어 있다.작가 박주현은 왜 하필 망치나 다듬이 방망이처럼 작은 공간에, 하필이면 손잡는 부분에다 조각할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아마도 모든 것을 손에 쥐려하지만 쥐고 있을 수만 없으며, 그 순리는 노동으로서 손의 생산이 우리를 떠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노동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품이 되고 노동 당사자인 자신을 소외시키듯, 그의 손잡이는 쥐고 있은 그 시간만큼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그 꿈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충족감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위화시킨다. 우리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미디어로서 망치와 장도리와 호미와 톱을 선택하고, 그 곳, 손잡이를 새로운 형상을 구상하는 터전으로 바라보는 의미는 그저 조각한 형상의 재미나 신기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에 있다.그의 시선이 형상화의 결과물보다 더 많은 의미와 해석을 안겨준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의 모습이 거기 있다. 조각된 손잡이는 이제 손잡이 역할을 못한다. 그 자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그 꿈이 우리의 손 안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손으로 쥔 것은 그 손을 펴야 무엇이 잡혔는지 보인다. 일상은 펴 보일 때 비로소 보인다. 쥐고 있을 때 노동은 도구일 뿐이다. 손 안에 가득 잡히는 것은 조각이 아니라 노동의 곤고함과 삶에 대한 되새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가 박주현. 그가 또 어떠한 작품으로 삶에 대한 긍정을 깨닫게 해줄기 사뭇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