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체성은 국민의 국가에 대하여 갖는 심리적 유대감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충성심, 애국심과 같은 신념체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국가의 정치, 경제 등의 지배적 사회제도에 대하여 국가 구성원들이 지니는 믿음과 일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로 국가정체성은 문화와 생활방식 등 국가적 공동체가 지니는 삶의 양식이나 가치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과 관련되기도 한다. 또한 국가정체성은 사회통합 혹은 국민통합에 있어 가장 기초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전략 및 정책이 나무의 ‘가지’라면, 국가정체성은 ‘뿌리’에 해당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 유영옥 교수

  이러한 국가정체성은 국민의식의 단합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며, 이는 한 국가나 사회의 발전 정도를 측량·예측하는 사회적 자본의 하나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흔히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국가의 제도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든다. 따라서 국가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국민이 국가의 제도와 정책에 대해 그리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방향의 일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가라고 하는 커다란 공동체를 진두지휘해나갈 중심인물과 존경할만한 국가적 영웅이 빈약하다는 점이 국가정체성이 약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국론은 분열되고 국가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허약한 체제가 되어 외부의 충격이 없이도 스스로 와해되어 버리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구소련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시민들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도가 혁명 직후에 비해 현저히 낮아져 있었으며, 서구로부터 유입된 합리주의, 실용주의, 자유주의 사상의 확대로 인해 국가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을 거치면서 시대착오적이며 소모적인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첨예화되었고,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도 좌파와 우파로 나뉜 남·남 갈등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이로 인한 국론분열이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은 점점 더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실질적 행보에 있어서는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소신껏 행동하지 못하며, 지역주의와 이기적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하는 지도급 인사들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또 그 중 대다수는 결국 처벌을 받기도 하는 상황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불감증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고 무력감에 빠지게 만든다. 결국 이기주의와 기회주의는 더욱 확산되고, 국민통합과 대동단결은 점점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념 갈등으로 서로 흠집 내기에 바빠 국가를 대표할 만한 상징적 중심인물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은 자국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국민의식의 구심점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가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현시켰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현재의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가 보라. 현대사에서 그는 그저 ‘독재자’로서, 혹은 ‘남·북 분단의 원흉’으로서만 매도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무관심 속에 묻혀 가고 있어 우리나라 청소년 중에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은 열 중 한 둘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건국 63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 나라를 건국한 초대 대통령의 변변한 기념관이나 대표할 만한 동상 하나도 만들지 못한 채 족보 없는 콩가루 집안처럼 세대와 세대가 반목하고, 지역과 지역이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 확립에 있어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에 대한 기념관이나 동상 건립과 같은 상징화 작업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물이 지니는 상징성은 집단성원의 신념을 강화시키고, 공동체적 결속과 국민의식 통합을 강화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국가들은 자국의 역사에 있어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을 '국부(國父)'로 추앙하며, 그 인물이 지니는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성스러움을 내포한 신화가 된 그 인물의 활동을 강조한다. 인도의 간디와 베트남의 호치민의 경우는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즐겨 읽는 위인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미국은 초대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Founder of the Country)’라고 예우하여 매년 2월 22일을 ‘워싱턴 기념일(Washington Birth Day)’로 지키고 있으며, 그의 동상은 뉴욕 월스트리트를 비롯하여 미국 전역에 얼마나 세워져 있는지 한참 조사해 봐야 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와 우상화가 중심인물을 통해 국민의 신념이 어떻게 강화되고, 공동체적 결속이 어떻게 강력히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밖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도 우리에게 국가정체성 확립의 중요성을 검토하게 한다.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숨기지 못하고 무력도발을 일삼는 북한은 열외로 하더라도 비약적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 면에서 G2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군사대국주의, 또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늘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본을 좌우로 두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는 좌편향된 전교조 교육의 영향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안보의식, 애국심 및 공동체의식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역사관은 왜곡되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청소년의 약 10%만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과 싸우겠다는 응답을 한 것과 군 복무를 기피하는 사회현상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중·고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6·25를 북침으로, 또 북한은 우리민족이고 미국이 우리의 진짜 적이라고 알고 있은 상황은 지난 10여 년간의 좌편향적 역사교육이 끼친 해악의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미래 한국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낮은 출산율, 만혼,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인해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성장 동력이 약화된 점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이제 우리 사회 속에서는 노동 이민자 혹은 결혼 이민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예전과 같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의지한 국가정체성 확립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법과 제도에 의거한 국민통합을 추구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우려할 정도의 국가 위기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정체성 확립과 그것을 통한 국민통합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것을 위한 가능한 모든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헌법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에 있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좌편향적 역사교육으로 왜곡된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을 바로 잡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미래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현재 시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바르게 확립시키지 못한다면,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이 땅의 역사를 이끌어 갈 때,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 왔던, 그리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경우에서 보듯이, 민족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영토와 같은 물리적 요인보다 정체성이라는 정신적 요인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