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마을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장승은 규격화된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한국의 독창적이며 상징적인 문화양식으로 자리 잡아 왔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하거나 이정표의 구실을 하는가 하면,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신앙적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 장승조각 기능전승자 이가락(범형)선생은 국제화 시대 일수록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 처럼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선양하는 일이 우리 모두가 해야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장승은 민중의 생활에서 시작된 예술
지난 2001년 장승기능전승자로 지정된 이 선생은 프랑스 파리 개인전 외 국제전 3회, 국내 초대전 12회 등 다양한 국내외 문화전시회에 참가하였으며 세계박물관 총회(ICM)에서는 장승, 솟대 제작을 시연하였고, 국립민속박물관 강의, 청계천복원준공기념 특별전(세종문화회관)을 열면서 장승문화의 보존과 계승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장승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장승이 민중의 생활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예술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이가락 선생은 “피카소는 유명한 예술인이지만, 한국에는 피카소처럼 유명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국사람 대부분이 예술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장승”이라고 강조한다. 마을의 액땜이나 이정표 역할을 담당하는 장승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왔다. 장승의 3대 요소는 큰 눈, 큰 코, 큰 입이다. 귀가 없거나 눈썹이 없고 팔도 없는 장승이 있는 것처럼 과감한 생략법이 가능한 장승은 또 과장법, 회화법으로 구성된다. 이 선생은 “장승의 모습은 확정된 틀이 없이 제작자의 의도에 충실한 모양새로 탄생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공통적 특징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면서 “순박한 토속미와 멋 부리지 않는 단순성, 사상과 상징성의 은근한 반영, 자연주의적 감성, 양식화의 철저한 거부, 절제되고 정서된 詩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과감한 생략법, 또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는 듯 한 추상적 신비의 표현이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 프랑스 포도공원에 있는 장승

장승문화는 전승이 밑바탕 된 전통
2011학번으로 올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독학으로 장승을 공부해온 그는 프랑스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1800년대 말의 우리 장승문화의 역사적 자료를 취합하여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도 함께 수행하면서 잘못 알려진 장승문화를 바로 잡아가고 있다. 
이가락 선생은 특히 장승을 단순히 뿌리 없는 ‘전통’으로 보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전통은 전승을 바탕에 두고 시대의 흐름이나 필요에 의해 조금씩 변화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전승의 중요성이 전통으로 이어져야 진정한 전통의 계승이 된다는 의미다. 또 이러한 의미로 장승문화도 전승이 밑바탕 된 전통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가락 선생은 “예전부터 장승에게 호국, 액막이, 수해방지, 재앙을 쫓음, 질병을 막음, 잡귀방지, 풍년이나 풍어를 빌어 왔듯,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절실한 소원들을 장승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라면서 “어느 시대나 그 시대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가장 절박하게 느껴온 문제점을 장승을 빌어 표현하고, 하늘에 요구했듯, 현대의 삶 속에서도 우리가 절대 필요하다고 체험으로 느끼는 통일·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기능성을 부여한 장승을 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 장승과 솟대는 마을지킴이로서 마을신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우리의 전통문화이다

장승은 마을의 토속 문화
나무가 좋고, 나무가 주는 그 느낌이 아름다워 장승조각을 시작했다는 이가락 선생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그리고 민초들의 얼굴처럼 우직하고 익살스러운 무형식의 파격미를 지닌 장승은 마을 사람들의 화합과 단결을 의미하며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여하여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장승조각가일 뿐, 장승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며 “장승은 지역마다 마을주민의 삶과 애환, 정이 깃든 문화유산이기에 한 개인이 장승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역의 주민의 생활문화로 보존계승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