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7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퇴임식을 하고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김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가 파기된데 따른 책임을 지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의 반려에도 지난 7월 4일 사직서를 제출, 이날 수리됐다.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책임론,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 사상 초유의 지휘부 공백사태를 돌파할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김 전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10번째 검찰 수장으로 기록됐다

김 총장은 임기만료가 오는 8월 19일로 이명박 대통령도 사의를 반려해 막판까지 사퇴를 두고 고심을 거듭해 왔다. 홍만표 기획조정부장 등 앞서 사의를 표명했던 검사장급 5명의 경우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이후 임기 채운 검찰총장은 고작 6명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7월 13일 퇴임했다. 물론 임기가 불과 얼마 남기지 않은 사퇴다. 그러나 그 역시 중도 사퇴라는 검찰의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대한민국 검찰총장의 애꿎은 운명이 새삼 관심이다. 1800여명의 검사를 총지휘하며, 대통령이 하달하는 수사, 총장 직권의 사정 수사를 전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그 어느 직(職)보다 많은 권력을 거머쥔 자리인 만큼 부침도 심했다.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임기를 채운 총장이 얼마였는지만 따져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김준규 총장(37대)을 포함해 1988년 이후 검찰총장 자리에 오른 인물 16명 가운데 임기 2년을 꽉 채운 총장은 불과 6명(37%)에 불과했다. 김기춘 전 총장(22대), 정구영 전 총장(23대), 김도언 전 총장(26대), 박순용 전 총장(29대), 송광수 전 총장(33대), 정상명 전 총장(35대) 등이다. 총장에 오르는 것도 천운(天運)이 있어야 하지만, 총장이 되고 나서도 임기 중 불명예 퇴진을 하지 않는 것도 여간한 관운이 아니고는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검찰총장 자리가 필연적으로 정치권·재계의 뿌리 깊은 부패를 파헤치는 데 주력해야 하는 만큼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재계 인사들에겐 저승사자 격으로 통하는 대검 중수부를 지휘하는 총장으로선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여론과 지루한 싸움을 해야 했다. 송광수 전 총장이 “중수부를 폐지하려면 내 목을 먼저 쳐라”고 맞섰고, 김준규 총장도 “상륙작전을 시도하는 데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채진 전 총장(36대)만 해도 임기 내내 매끄러운 수사로 무난하게 명예로운 퇴진을 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뜻하지 않게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까지 불거져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예상했던 대로 김준규 검찰총장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도 사퇴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국회에서 깨진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검찰 조직에 책임지는 모습일 뿐, 국민들 입장에선 무책임한 사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김 총장에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수사권 조정 파문과 관련해 대검찰청 검사장급 참모들까지 전원 사의를 밝히는 상황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겉으로는 “합의가 무시당한 현실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게 검사장들 줄사표의 이유였지만, 그 행간에는 김 총장의 사퇴 촉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김 총장이 7월 1일 제4차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 개막식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히면서 “이대로는 조직 관리가 어렵다”고 한 것은 궁지에 몰린 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김 총장은 7월 4일 “국회 법사위 수정 의결이 있었을 때 이미 (사퇴를) 결심했다”며 “후배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모든 책임은 검찰총장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문제는 과연 누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인가이다. 김 총장은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합의안을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서 일부 수정한 것을 두고 파기라고 볼 수 있는지, 게다가 큰 틀의 변화가 아니라 ‘법무부령→대통령령’ 정도만 바뀐 게 검찰총장이 ‘직을 걸어야 할’ 사유에 해당되는지 상당수 국민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령으로 수사지휘 사항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물러나도 될 일”이라며 “조직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국민들에겐 생색내기를 위해 던지는 사표를 책임지는 자세로 보긴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검찰 특유의 조직 문화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검찰 권력이 약화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자, 총장이 사표로써 저항하는 행태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재근 팀장은 “검찰 권한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며 어떠한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총장 사퇴는 국민들에겐 일종의 협박처럼 느껴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수사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조직 이기주의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향후 6개월 동안 검경의 협의 과정에서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기 못 채운 10번째 검찰 수장된 김준규 검찰총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책임론,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 사상 초유의 지휘부 공백사태를 돌파할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김 전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10번째 검찰 수장으로 기록됐다. 김 총장은 2009년 6월 임채전 전 검찰총장의 중도 사퇴로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총장 후보에 오르자 검찰을 떠났다가 25일만에 총장 후보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스폰서 논란’ 등으로 인해 천 전 지검장이 청문회에서 낙마, 사상 초유의 지휘부 공백사태가 빚어졌고 ‘야인’이 됐던 그가 ‘대안’으로 부각된 때문이다. 온화한 성품으로 ‘부드러운 검사’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천성관 후보자의 낙마로 인해 흐트러진 검찰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청문회는 수월치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23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위장전입에 요트와 승마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야당 의원들은 ‘귀족 검사’라고 비꼬았다. 게다가 미스코리아 대회 심사위원을 맡았던 전력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런 우여곡절에도 청문회를 무사통과한 김 총장은 본격적인 검찰 개혁에 나선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검사와 직원간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한 직원을 로스쿨로 진학시켜, 우수 직원을 검사로 임용하겠다던 약속도 일단은 지켰다.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서명까지 새기는 색다른 모습도 보여줬다. 학연과 지연을 타파하겠다던 다짐은 법조인 명부 등에서 출신학교 등을 삭제하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김 총장은 취임 직후 주요 수사 부서에 이른바 ‘기획통’들을 전면 배치하는 등 검찰 체질 개선에도 착수했다. “능력과 성실성 등을 인사의 기준으로 삼겠다”던 취임 당시 각오를 인사로 보여준 것.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주창(主唱)하며 별건수사 관행을 없애고 피의자의 자백을 강요하는 압박 수사도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숨은 비리, 신종 부패’를 검찰이 최우선적으로 수사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며 교육비리 수사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으며 신종 코스닥 비리를 다수 적발하는 성과도 거뒀다. 여기에 더해 서민피해를 야기한 불법대출은 물론, 재벌들의 경제범죄까지 경제·금융범죄와 전면전을 벌였다. 하지만 의욕이 넘쳐서일까, 아니면 검찰 조직에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은 맞지 않았던 것일까. 참고인 조사를 받은 임산부가 유산을 하는가하면 수사 중이던 피의자가 자살을 하는 등 강압수사 논란이 일면서 김 총장의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이 일선 수사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지난 5월에도 검찰 조사를 받았던 한 공무원이 검찰의 강압수사를 성토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 담당 검사가 수사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게다가 미네르바 무죄 판결,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 등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면서 “‘착한 수사’가 화를 불렀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침묵했던 대검 중앙수사부도 C&그룹 수사 재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고,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를 수사하고서야 겨우 체면을 세웠다. 차기 검찰총장이 김 총장의 ‘새로운 수사패러다임’ 기조를 이어나갈지는 미지수다.

경찰도 불씨 남은 내사 논란에 주목
경찰의 수사주체성을 명문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경찰은 반기면서도 내심 검찰과의 ‘치열한 2라운드’를 위해 신발 끈을 조이는 분위기다.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개정안이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향후 6개월 동안 검경의 협의 과정에서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개정안 가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경찰은 검찰과 상호 존중하며, 국민인권 보호와 바람직한 수사 구조를 만들기 위해 원만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면서도 향후 검찰과 수사권 조정 문제를 협의할 실무조직을 본청 수사국 산하 수사구조개혁팀에서 수사구조개력전략기획단으로 확대·격상했다. 청·차장 직보 체계를 갖추고, 인력을 충원하는 등 경찰의 대응력과 협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일선 경찰관들은 검사의 지휘권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될 지,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 내사 논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경정급 간부는 “검찰이 유치장 감찰을 나오면서 내사 기록을 보거나 112신고 처리상황을 확인하는 등 종합사무감사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경찰 길들이기식’ 검사의 지휘 남용에 대한 견제가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경정은 “검사의 범죄 혐의를 인지했을 때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기 위해선 수사 개시권 명문화와 함께 인적 제외 대상이 없도록 명확히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 총경급 간부는 “법죄에 공동 대응해야할 검경이 또다시 소모적인 갈등을 할 것이 아니라 경찰이 검찰에 적극 협조하는 만큼 검찰은 경찰을 동반자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 검찰과의 관계 설정에 골몰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촉발된 검찰의 집단 반발을 진정시키고, 조직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1순위다. 여기에 집권 말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김준규 전 검찰총장에게 “임기 중에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의를 반려했다. 7월 20일 전후로 후임 검찰총장 지명이 예정된 만큼 김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는 것 자체가 사실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7월 1일 “지금 김 총장이 물러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임기를 채우는 게 청와대와 검찰 모두에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권은 검찰과의 관계가 무난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2008년 집권 이후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천성관 후보자를 제외하면 김 총장 1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4명의 검찰총장이 임명됐다. 그만큼 권력과 검찰 간에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는 방증도 된다. 그런데 지난해 ‘공정사회론’이 본격 등장하면서 검찰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검찰조직 문화가 외부 변화에 느리게 적응한다”고 지적했고, 지난 6월 27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는 “(검찰의 저축은행 비리 중간수사 결과가) 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갈등과 같은 돌발변수가 생기면서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난기류가 형성된 셈이다. 청와대로서는 집권 후반기 검찰의 ‘반발’을 의식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역대 정권을 보면 검찰이 주로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 등을 수사하면서 청와대와의 관계가 악화됐다”며 “그러나 우리 정부는 현재 그런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의 힘이 빠지면 (검찰에서) 어떤 현상들이 생길지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때문에 후임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인선이 중요해졌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현재로선 바뀔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검찰 조직을 안정시킬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주변에서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를 주목하는 이유다.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도 수반돼야

▲ 조현오 경찰청장은 다양한 개혁안 마련으로 기존에 제기됐던 강압수사 등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반발, 무더기 사의를 밝힌 데 대해 “정도(正道)를 벗어난 집단 행동”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의 입장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검찰 지휘부가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자 ‘집단 사표’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 것은 결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음을 자인한 꼴이라는 지적이다. 사법개혁 논의에서 검찰 측 협상 창구였던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실무를 맡아 온 검사 3명이 지난 6월 29일 오전 사의를 표명할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외부 시각들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인 조직을 추스려야 할 대검의 검사장급 간부 4명이 오히려 사표 대열에 동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누가 보더라도 진정성 있는 사의라기보다는 6월 30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포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려는 항의성 시위의 성격이 강했다. 김갑배 변호사는 “사표는 자신의 과오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인데, 국민의 봉사자라는 검찰이 압박 수단으로 사표를 쓰는 게 검사의 본분에 맞는 것인가”라며 “국민들 눈에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으로만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조속한 결단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메시지였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유엔 세계검찰총장회의(6월30일~7월1일)의 ‘호스트’인 김 총장으로선 곧바로 거취 표명을 할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수사권 조정 논란에 대응하는 검찰의 논리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시각도 많다. 검찰이 ‘모든’ 수사를 지휘한다는 조항이 마련됐는데도, 오직 법무부령으로만 수사지휘 사항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욕이라는 얘기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3자가 볼 땐 독재를 하자는 말로 들린다”며 “대통령령으로 한다고 해서 정치권력이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조항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물론, “검찰의 권력 분산을 위해서는 경찰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는 검찰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국민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사기관인 경찰이 치안·정보 기능에다 독립적인 수사기능까지 확보한다면, 무분별한 내사나 사찰을 통해 검찰 대신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 될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 사법개혁 공청회 때 경찰관 2,000여명이 참석해 위세를 과시하고, 심지어 “내년 총선 때 전략 투표를 하자”며 정치권을 압박했던 경찰한테서도 국민 입장에서 수사권 문제에 접근하려는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검찰의 적절한 수사 지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령이든 법무부령이든 핵심은 사법개혁의 틀에서 옳은 방향이냐의 문제”라며 “그런데 인권 보장을 위한 수사 절차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기관끼리 세(勢)를 과시하는 싸움으로 변질됐다”고 검·경을 싸잡아 비판했다. 김 변호사도 “잘못된 수사 구조가 생성되면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며 “피의자 인권 보호나 예측 가능한 수사 절차, 수사 지휘의 타당성 등을 갖춘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진영 간사는 “장기적으로는 검찰에 집중돼 있는 권력 일부를 경찰에 넘겨야 하는데,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도 수반돼야 한다”며 “검찰이 향후 논의를 적극적으로 촉구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줄사표를 내버리기만 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나
반면 경찰은 웃었다. 60여년 숙원사업인 ‘수사권 독립’에 큰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6월 30일 본회의를 열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그동안 경찰이 요구해 온 수사권 개시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경찰의 수사권을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 이제까지 수사권과 경찰 수사에 대한 수사지휘권, 구속영장 등 각종 영장에 대한 영장청구권,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소권, 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된 형을 집행하는 형집행권이 모두 검찰에 집중돼 있었다. 또 경찰이 실질적으로 수사 개시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법적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해 왔다. 더 나아가 경찰에 대한 검찰 수사지휘의 범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왔다. 이 같은 요구는 1955년 경찰의 기구독립을 골자로 한 법무부의 경찰법안이 제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경찰의 ‘수사권 독립’ 염원은 정치적 변혁기 때마다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러나 검찰의 견제와 경찰 자질 논란 등으로 인해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경찰청장이 바뀔 때에도 수사권 독립 문제는 빠지지 않는 과제였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지난 5월 전국경찰 화상회의에서 “직위를 건다는 각오로 임하라”며 총력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다 올해 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자 경찰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정부 주도로 검·경 합의안이 나왔을 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통 끝에 절충안이 통과됐을 때 등 주요 시기마다 서울·대전·충북 등에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해 대응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수사개시권 명문화’와 ‘검찰 수사지휘 대상에서 내사 제외’ 등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마지막까지 쟁점이었던 검찰 지휘 관련 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한 것은 오랜 기다림에 대한 달콤한 보상이다. 서울 일선경찰서 모 경감은 “검찰 지휘권을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오히려 검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며 “경찰청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대통령령으로 수정 통과돼 검?경 권한에 균형이 잡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반겼다. 개정안 국회 통과 후 경찰의 ‘환영 기류’는 곧바로 조직 개편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지난 7월 1일 본청 수사국 산하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전략기획단’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는 실무부서가 기존 ‘팀’에서 ‘단’으로 격상된 것이다. 단장 역시 기존 총경급보다 한 단계 높은 경무관급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것이 검·경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은 경계했다. 오히려 강남권 형사직 5년 이하 근무제를 추진하는 등 자체 개혁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존에 제기됐던 강압수사 등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조 청장은 “경찰이 검찰과 싸워 이겼다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찰이 잘해서, 믿음직스러워서 국회가 그렇게 결정해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 주체권을 인정받는 인권문제, 수사 공정성 문제 등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우려하는 부분들을 불식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