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65)이 1973년 문예중앙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9년, 39번째 신작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들고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사회적 폭력의 위태로운 재생산 구조, 인간 마성의 근원에 대해 묻고 있다.

박범신 신작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가 문예중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지난 2010년 11월 1일부터 2011년 4월 22일까지 여섯 달 동안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총 120회 연재되었던 작품.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박범신이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본격적으로 차용한 첫 번째 소설이며, 지금까지 집필했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하드고어(Hardgore)적 폭력 묘사로 인간 마성(魔性)의 근원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아울러 야수적 욕망의 난장(亂場)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신성한 순수와 불멸의 사랑에 바치는 우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올해로 등단 39년째를 맞은 박범신의 39번째 장편소설이다. 올 여름 25년간 몸담았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직을 떠나며 소설가로서의 새 출발을 앞두고 여섯 달간 치열하게 매달려 집필한 소설인 만큼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독자들의 오랜 지지를 받고 있는 박범신 특유의 흡입력과 앞으로 새롭게 펼쳐나가게 될 또 다른 문학적 편력의 예고 같은 변화들이 만나고 있다. 박범신 작가는 지난달 22일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올 여름이 지나면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논산으로 내려간다”며 “이제 작가로서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야겠다. 타협하지 않고 좋은 문학이라 믿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10년은 열심히 글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번듯하고 안락한 자본주의 사회는 겉구조이고 더 위험한 것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폭력성이라는 코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박범신의 속 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Q. 소설가 박범신을 소개할 때 마치 아호처럼 ‘청년작가’라는 말이 붙는다. 이 ‘아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 처음에는 굉장히 좋았는데 요즘에는 솔직히 좀 부담이다. 청년작가, 청년작가 하니까 그 말이 나를 자꾸 어떤 자리로 몰아가는 느낌이 든다. 원래 내 꿈은 언제까지나 현역작가로 남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현역성이 강한 작가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청년작가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감수성도 예민하고, 새로운 형식을 꿈꾸고, 발랄하고, 상상력도 남달라야 하고. 그런 점에서 청년작가라고 불리는 게 부담될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거라고 본다. 독자들의 판단에 나는 따를 수밖에.

Q.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보면 이사장의 입을 빌려 불교와 대체의학의 논리가 장황하게 소개된다. 그 논리가 꽤 설득력이 있는데, 문제는 그가 징치되어야 할 악인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이 있다면?
- 이 나라의 기득권자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명분과 욕망이 다른 이중주의. 원래의 이사장은 소설에서 부르닞는 그 논리대로 살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이건희도 되고 이명박도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해지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도 더 힘센 자들에게 억압당했고, 빼앗기고, 채이면서 산 사람이다. 그냥 어느 날 문득 폭력주의자가 되었겠는가? 배운 대로 살다가는 현실에서는 계속 당해야 되니까 변질될 수밖에. 소설 속의 이사장처럼 권력자들이나 재벌들이 내세우는 논리들도 굉장히 탁월하잖아. 명분과 욕망이 다른 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이사장이라는 인물을 설정했다. 이사장 캐릭터는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거라고 본다.

Q. 소설에서 시도한 마술적 장치는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경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마술적 리얼리즘의 모티브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소설을 쓴 것은 나로서는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가 처음이다. 독이 되고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엔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모든 소설적 장치가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적인 장치가 아니라 내적 개연성이다. 이 소설에서 손에 말굽이 생기는 마술적인 장치는 내적 필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라 리얼리즘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야만적 폭력사회를 넘어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이라도 들이대고 싶다.

Q. 이번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 나는 이번 소설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잔인하고 무참하게. 쓰면서 내가 왜 몸서리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가 배후에 거느리고 있는 가감 없는 현실이다. 폭력은 인간문명의 이중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예민한 키워드다. 잘 차려입고 고상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이대어 묻고 싶었다. 당신의 가슴속에 진짜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당신은 진짜 인간이냐고.

Q.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는 소녀시대의 ‘Gee’가 랩까지 완벽하게 실려 있다. 소녀시대 멤버 중 은교와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구인가?
- 한동안은 소녀시대를 자주 봐서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또 안 보니까 다 잊어버렸다. 윤아는 사랑스러운 아이지, 수영이는 발랄하고, 제시카는 얼굴이 홀쭉한 애? 그렇다면 별로 미모는 아닌 것 같고. 서현이 예쁘지. 은교도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지만, 내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느냐면 약간 중성적이고 장난기 많고 아름다운 소년 같은 여자애를 좋아해요. ‘Gee’ 그 노래가 어떻게 나오게 됐냐면, 대학원 제자들하고 노래방 갔더니 그 노래를 소녀시대하고 똑같이 하는 애들이 있는 거야. 예쁘더라고. 그래서 그 제자한테 그 노랫말하고 율동을 그대로 기록해서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지.

Q, 『은교』에서도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서도 한 남성이 다른 남성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성관계 장면을 훔쳐보는 부분이 있다. 삼각관계를 마치 정념의 서커스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 훔쳐보고 싶은 거는 원초적 욕망 아닌가. 질투심은 가장 아슬아슬하고 뜨거운 감정이다. 작가는 질투심이 많은 종자들이다. 내적 분열이 없으면 이미 죽은 작가야. 예술이라는 것은 내면의 불균형에서, 그 위험함 속에서 태어나는 거라고 봐. 질투는 사람을 불균형으로 몰아가는 굉장히 좋은 전략이야. 나는 사실 관념적인 사랑을 잘 안 믿어. 사랑한다고 백 번 말해도 그냥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걸 사랑이라고 말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의 피부를 손으로 만지고 있을 때, 껴안을 때, 빨고 핥을 때, 내가 야수적 동물에 불과하다고 느낄 때 훨씬 생생히 사랑을 느껴. 감각은 사랑을 관념으로부터 실체로 전환시켜. 결국 예술가라는 존재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온전히 살리고 싶고,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죽이고 싶은, 그런 내적 분열에 끼어 있는 자들이 아닌가.

Q, 라이벌 작가여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역사의 라이벌이라 생각되는 이가 있다면?
- 요즘의 나는 아무하고도 라이벌 의식을 안 느낀다. 내가 의식하는 것은 나의 지난 소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거다.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형식이 되었든, 문장이 되었든, 주제가 되었든, 새로 쓴 소설이 지난 번 쓴 소설과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면 그만 써야 한다고 본다. 다행히 나는 작가로서 내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효하다는 건 나의 지난번 소설을 나의 새로운 소설로 어쨌든 극복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지난번 쓴 소설을 이겨내기 위해, 계속, 끈질기게, 열렬히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지난번 쓴 내 소설이 새로 쓰는 내 소설의 라이벌이다.

Q.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제작되거나 아드님의 연출에 의해 몇 작품이 연극으로 상연된 적도 있다. 그중에서 자신의 소설보다 더 좋다고 느꼈던 작품이 있는지?
-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르를 통해서 내 소설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나 그런 것을 보는 게 궁금하긴 하다. 뭐 아들이 연극으로 연출한 것은 『촐라체』, 한 작품뿐이었고.

Q. 지금 작가가 아닌 평론가다.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독자에게 소개한다면?
- 낯간지러워서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못하겠다.(웃음)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전혀 없었고.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나에게 그냥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일 뿐이다. 끔찍 장면들이 더러 있지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그냥 충격적으로, 재미있게 읽히기를 바란다. 좋은 소설이라는 말도 아울러 듣기 바란다. 그게 내 소망의 전부다. 너무 큰 소망이었나. NM